창말, 삼천리, 남산뜰, 능골을 아시나요? 지금 반월동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던 자연마을 이름입니다. 가장 큰 마을이었던 창말 마을에는 대림아파트가 들어섰고 남산뜰 마을 위에는 고속철도가 쌩쌩 지나다닙니다. 인근 사람들이 장날이면 모여 들어 세상소식도 나누고 필요한 물품도 구입했던 장터마을은 반월초등학교와 반월중학교 반월동 주민센터가 들어서 반월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같은 성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 남아있는 곳. 아파트가 숲을 이룬 안산 시가지와 달리 나지막한 주택들 사이 몇 몇 아파트 단지가 우람한 나무처럼 불쑥불쑥 솟아있는 곳, 넓은 본오동 들녘엔 모내기가 한창인 반월동에 다녀왔습니다.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수원에서 안산으로 들어오다 가장 먼저 만나는 동네가 반월동입니다. 수원과 인근 화성으로 연결된 길 초입에 있어 동헌이 있던 안산동에 이어 안산에서 두 번째로 큰 장이 열리던 곳입니다. 그러나 동네 면적의 90%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이 더딥니다. 다른 동네는 길이 닦이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갈 때도 반월동은 옛 모습을 지키며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지역 토박이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삼천리 마을 출신인 장동호 전 시의원은 “아마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동네가 안산에서는 유일하게 우리 삼천리 마을일 것”이라며 동네자랑을 시작하십니다. 반월동에는 유난히 집성촌이 많았습니다. 지금 대림아파트가 들어선 ‘창말’은 청주 한씨들이 모여 살았고 창말에서 4호선 전철 건너편 삼천리 마을엔 창녕 조씨와 안동 장씨 집성촌입니다. 반월 농협에서 반월 저수지로 넘어가는 길가 남산뜰은 여흥 민씨 일가가 모여 산 동네였습니다. 남산뜰 여흥 민씨는 세조시대 책략가인 한명회의 처가동네였습니다. 한명회는 장인 민대생의 묘를 임금 능처럼 크게 만들어 ‘능앞’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전해집니다.
반월동에는 초등학교 2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 1개가 있습니다. 1923년 개교해 90년 전통을 자랑하는 반월초등학교는 주로 이 동네 토박이들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입니다. 반월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개교한 창촌초등학교는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다닙니다. 두 학교 간 은근히 경쟁도 했지만 지난해 어린이날 8m 김밥을 함께 만들며 서먹함이 없어지고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1954년 개교한 반월중학교와 경기모바일과학고등학교가 반월동 교육을 책임지고 있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반월동 곳곳엔 숨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한명회와 민대감의 만남을 윤색한 민대감과 소년 한명회의 이야기도 전해지고 칠보산 정상에 모든 것을 다 가진 ‘갖은 바위’의 전설도 있습니다. 또 팔곡리에는 멋진 향나무가 마을의 오랜 역사를 알려줍니다.
지난해 부임한 반월동 양영철 동장은 “반월동은 정이 살아있는 동네”라고 칭찬합니다. “다만 외곽이다 보니 문화 교육시설이 부족한 점이 아쉽다”며 “주민들 체육시설과 도서관 등 문화시설이 들어온다면 더 살기 좋은 동네가 될 것”이라고 주문합니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인터뷰. 들을수록 재밌는 안산 땅이야기
“산은 수암산이 명산이지. 반월동엔 수암산과 칠보산이 있는데 칠보산 아래서 태어난 사람들은 다 고만고만해. 성격들이야 다 유순하고 좋지. 그래도 산 기운으로 따지면 수암산이 한 수 위야. 수암산 자락인 삼천리마을엔 유명한 사람들이 많아”라며 만나자 마자 반월동 산세부터 일러 주시는 배호순 어르신. 정작 본인은 칠보산 아래 마을에서 태어나셨단다.
지금은 드문 풍수지리를 공부한 배호순 선생님은 안산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풍수가이시다. 그것도 반월동에서 대대로 살고 계신 토박이 풍수전문가.
“옛날엔 이삿날, 혼삿날, 잔치날도 다 길일을 택해서 했지. 안 그럼 동티난다고 생각했어. 날을 정하는 것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다는 말이지”라며 쉽게 대강대강 일하는 요즘 사람들도 배워야 하는 지혜라고 말씀하신다.
철들면서 좋아진 풍수지리 공부. 산세를 보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 재미난 직업이라고 자부하시는 배호순 어르신.
“지금은 땅 하면 돈만 생각나지? 옛날엔 안 그랬어. 이야기가 없는 땅이 없었어. 그만큼 사람들이 자연에 겸손했다는 이야기야” 삼 천명이 느끈하게 살 수 있다고 해서 삼천리라는 이름이 지어졌고 일곱가지 보물을 품은 산이라는 뜻으로 칠보산이라고 부른단다.
“산을 함부로 훼손하면 동네가 모두 재앙을 얻기도 하고 나무 한그루 큰 바위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았는데 지금은 개발을 위해 걸리적거리면 싹 밀어버지자나. 참 아쉬워”라는 배호순 어르신. 반월동엔 아직 옛 땅이 많이 남아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반월동은 내일이 더 재밌을 거에요
반월사랑 정재훈 회장
“굴러온 돌, 박힌 돌 모두 오순도순 정답게 살면 좋겠어요”라는 반월사랑 모임 정재훈 회장. 반월사랑 모임은 반월동에 대대로 살아온 주민들과 아파트 입주민들이 만든 모임이다. 지난해 어린이날 아이들에게 작은 추억을 만들어 주자고 기획한 행사가 점점 커져서 동네 왠만한 단체가 다 가입한 네트워크가 된 것. 그 후 마을 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거나 마을 축제를 기획할 때마다 모여 서로가 할 일을 논의하는 자리가 됐다.
“사실 반월이 안산의 중심은 아니죠. 지리적으로 군포와 수원 중간에 있어서 여러 가지 생활이 불편한 점이 많아요.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는 걱정이 크죠”
반월사랑의 첫 번째 고민은 교육이다. “교육여건이 부족한 대신 자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우고 싶어요. 어린이날 축제와 한 여름밤의 음악회를 기획했고요. 올 가을엔 대규모 마을잔치도 열 계획이에요”
반월동 터줏대감인 원주민들과 새롭게 둥지를 마련한 아파트 입주민들과의 화합도 큰 과제다. “반월동의 전통을 찾아서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반월동은 계속 이어져서 좋고 아이들은 고향이 생겨서 좋지 않을까요?”
반월사랑은 올 가을 도토리 줍기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인근 야산의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묵도 만들어 잔치도 벌인단다. 반월동의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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