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부탁을 했다.
4억원에 대한 은행 잔고증명서가 필요한데 돈을 빌려주면 은행에 예치한 후 예금통장과 도장을 보관시키겠다고 하였다.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있고, 주민등록증, 위임장까지 교부받아 보관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믿고 돈을 빌려주었다.
또 돈을 빌린 친구는 각서도 써주었다.
“자신은 예금계좌에 입금된 금원에 관하여 어떠한 권리도 없고 예금통장, 도장에 대한 분실ㆍ도난신고도 하지 않는다. 현금카드 등을 이용한 현금인출도 하지 않는다. 비밀번호 등 예금계좌의 모든 정보를 임의로 변경하지 아니한다.”
이에 추가하여 돈을 빌려준 사람이 나중에 직접 예금계좌에서 4억 원을 인출할 수 있도록 하여 출금전표도 미리 작성해 주었다.
이 정도면 모든 것이 안전하다고 믿었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친구는 예금잔액증명서를 발급받은 다음 즉시 은행 지점에서 인터넷뱅킹을 신청하고, 그 다음 날 인터넷뱅킹으로 3회에 걸쳐 임의의 비밀번호를 입력하여 비밀번호 오류입력 제한 횟수를 초과시켰다. 이렇게 되면 원래 최초의 비밀번호에 의하더라도 예금인출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 다음 은행 지점에서 예금주 자격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해 버렸다.
돈은 빌려준 사람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하려 하였으나 비밀번호 입력 오류로 인출에 실패하였다. 즉시 친구에게 전화하여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 친구는 거짓말을 하였다. ‘비밀번호가 맞을 텐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하였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즉시 예금계좌에 대한 지급정지를 요청하였으나 은행 지점은 예금계좌의 예금주가 따로 있으므로 지급정지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친구는 예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한 후 인출하여 사용하고 미안하다고 하면서 곧 해결해 주겠다는 말만 하고 잠적해 버렸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예금명의자 이외에 돈을 실제 빌려준 사람이 예금계약의 당사자가 되려면 금융기관과 차명계좌 내용에 대하여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돈을 빌려준 사람은 여러 가지 안전장치에도 불구하고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이재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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