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글을 읽게 되면 많은 엄마들은 ‘책 읽어 주기’를 그만 둔다. 혼자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에게 굳이 책을 읽어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초등학생 고학년 아이들에게도 기꺼이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이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기본, 다양한 ‘이야기 극’까지 무대에 올리는 서정초 스토리텔러단을 만났다.
유광은 리포터 (lamina2@naver.com)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 전달, 아이들의 책에 대한 흥미 높여
“떡이 다 떨어졌어요.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그럼, 어쩔 수 없구나! 내가 너를 잡아먹겠다!”
호랑이의 ‘잡아먹겠다’는 고함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러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객석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소리가 새어 나온다.
양천구 목동 8단지 서정초등학교 강당에서 전래동화 ‘해님 달님’ 그림자극이 공연 중이다. 이 학교 병설유치원 어린이 80여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스크린에 나타나는 그림자에 눈을 떼지 못한다. 아이들을 웃고 울리는 건 ‘엄마들의 목소리’다. 스크린 뒤에 등장인물 흉내를 내고 그림자를 움직이느라 바쁜 엄마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정초 스토리텔러단 엄마들이다. 아마추어 엄마들이라고 믿기에는 목소리도 손놀림도 능숙하다.
스토리텔러단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책 내용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극을 기획했다. 작년에 저학년 대상 ‘아씨방 일곱 동무’ 인형극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야기극을 무대에 올렸다. 올 초에는 고학년 대상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림자극도 공연했다. 스토리텔러단 단장을 맡고 있는 이영주씨는 고학년 대상 그림자극을 올릴 때는 망설임도 있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이라 그림자극이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하는 염려도 있었어요. 그런데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감동을 받더군요. 재미있었다는 말을 주고받는 아이들 모습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도서관 책 정리봉사에서 시작해서 전문성을 갖춘 스토리텔러로
이영주씨는 아이들에게 독서를 강요하거나 억지로 독서록을 쓰게 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한다며 놀이처럼 즐거운 책읽기를 강조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혼자 읽을 때 무슨 말인지 몰라 재미없던 내용도 누가 읽어주면 더 잘 이해가 돼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죠. 자연스럽게 책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서정초 스토리텔러단의 창단 이유다. 스토리텔러단은 도서명예어머니회에서 시작됐다. 다른 학교 도서명예어머니회와 마찬가지로 도서관 책 정리, 학교 권장도서 선정 등이 주요 역할이었다. 자연스레 도서관을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게 됐고 그러다가 좀 더 효과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은 엄마들이 뜻을 모아 작년 초에 ‘스토리텔러단’을 구성했다.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책놀이, 동화구연, 북아트, 독서논술 등 강의를 듣고 자격증도 땄다. 관련 과정이 끝난 후에도 손유희나 교육 마술 등 스토리텔링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고 배워두고 있다. 이렇게 쌓은 전문적인 스토리텔링 기술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책읽기로 전달된다. 아파트가 배경인 ‘달샤베트’를 읽은 후에는 아이들이 직접 미니어쳐 아파트 만들기를 하고 미국 인종차별을 그린 ‘사라, 버스를 타다’는 독후 활동으로 역할극을 했다. 모든 아이디어가 스토리텔러단 엄마들에게서 나왔다.
‘스토리 텔러단’의 적극적인 활동은 서정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학교 돌봄교실은 물론 학교 담장을 넘어 다문화 아동들, ‘스토리텔링’을 막 시작하는 주변 학교 어머니들에게 따뜻한 나눔으로 전해진다.
미술전공을 살려 막대 인형을 직접 만든 정현정씨는 스토리텔러단 활동이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우리 아이는 물론 다른 아이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무엇보다 엄마에게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
미니인터뷰
서정초 스토리텔러단 단장 이영주씨
스토리텔러로 제2의 인생 시작해요
스토리텔러로 활동하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어요. 처음에는 아이 학교 도서관 봉사로 단순히 시작했다가 스토리텔러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죠. 저에게 꼭 맞는 일을 찾아 행복해요. 예전 직장 다닐 때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스토리텔러 활동은 즐겁고 보람있어요.
스토리텔러단 한미미씨
아이들과 함께 상상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어 기뻐요
집에서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많이 들려줘요. 아이에게 이야기 들려주기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실감나게 읽어주기 위해 제가 등장인물이 된 듯 상상에 빠져들죠.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속 상상의 세계를 공유한다는 것이 제일 기뻐요.
스토리텔러단 김영순씨
호랑이역은 제가 자신이 있어요
해님 달님에서 호랑이역을 맡았어요. 둘째 아이가 병설 유치원에 다니는데 유치원 아이들을 위한 그림자극을 준비한다는 말에 기꺼이 참여했죠. 호랑이역이 왠지 끌려 호랑이역을 맡겠다고 제일 먼저 손을 들었어요. 제 목소리에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보람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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