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깨트린 세월호 트라우마 사회 치유적 회복 필요
학원, 교회 친구 희생된 아이 기억하는 편지쓰기 유족에게 도움
정혜신 박사에게 듣는 세월호 트라우마 치유법
세월호가 삼켜버린 도시 안산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기가 버거운 시기다. 여전히 팽목항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이웃이 있고 생살을 찢는 고통으로 아이를 보내는 장례식장에 선 이웃을 위로해야 하고,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갈 생존자들의 부모들과 마주해야 한다. 이들의 고통에 비하면 이웃이 겪는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세월호의 슬픔은 숨 쉬는 공기에 스며들어 하루하루를 우울하게 만든다. 잊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좋으련만 돌아온 일상에는 언제 내가 세월호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숨어있다. 세월호 직접 피해자들과 안산시민들까지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생된 아이들에게도 더 이상 미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지난 18일 심리치유 전문가 정혜신 박사가 안산지역 시민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집단상담(?)을 진행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들고 안산 지역사회가 세월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정 박사의 조언을 들었다. 세월호 참사후 진도와 안산을 오가며 상처입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는 정 혜신 박사. 한 바탕 눈물로 진을 다 빼고 온 듯 낮게 갈라진 목소리를 추슬러 조근 조근 집단 상담이 시작됐다.
세월호 사건 이후 너무 힘든데 이제 그만 슬퍼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던지, 사건을 일부러 외면하려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속상하고 힘이 든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사건에 대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느끼는 것은 아니에요. 개인마다 슬픔의 강도는 다 다를 수 있죠. 인정해 줘야 합니다. 너무 슬퍼서 일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것도 인간의 당연한 심리이고 개인마다 온도차가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죠. 세월호 사건은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총을 맞은 것과 같은 상황이다. 아프고 슬픈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 때 슬픔을 못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혹시 ‘권위에 의한 관계’에서 상처받은 일은 없었는지 떠올려보고 스스로 되짚어 볼 필요는 있어요. 우리나라는 가부장적인 가족 내에서 권위에 의해 상처받은 경우가 많아요.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 때의 무력감 분노 억울함이 되살아나는 것이 싫어서 이 사건을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혹시 이 분들 앞에서 피해야 하는 것은 없는가?
그들 앞에서 특별히 안 해야 하는 것은 없다. 사람들이 너무 고민하고 너무 조심하다 보니 아무것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는 일부러 피하려 하지만 그런 조심성이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해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면 그 분들은 오히려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장 하고 싶을 거 에요. 얼마나 예쁜 아이였는지 아이를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좋아요. 우리 모두 상처가 무엇인지 다 아는데 에둘러 표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직접 희생자 가족을 만나면 ‘00엄마. 00이 너무 그리우시죠’라며 마음을 알아주고 보듬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친하지 않지만 유가족을 만날 때도 있죠. 표현을 하고 싶은데 선뜻 나서기 주저될 때 있죠. 그 때는 ‘힘 내세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같은 계몽적인 말 보다는 ‘밥은 드셨어요’라고 말을 걸어 보세요. 이미 그 사람의 상황이 짐작 되시자나요. 식사를 안 하셨으면 ‘따뜻한 밥 제가 사 드릴 까요’한다면 그 분은 정말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거에요.
유족들 내부에서도 서로 의견이 안 맞아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가 봐요. 이런 문제로 힘들어 하는 유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요?
5.18이나,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 제주 강정마을과 같이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경우 그 내부에서 의견 충돌과 갈등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때 입은 상처가 국가로부터 받은 상처보다 훨씬 깊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죠. 세월호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사건에서도 일어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걸 알려줄 필요는 있어요. 그러면 심리적으로 미리 대비할 수 있겠죠. 생존자 가족들도 마찬가지에요. 지금은 ‘너무 다행이다’라며 안심하고 아직은 그 문제가 눈에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상황을 너무나 많이 겪어봤기 때문에 생존자들의 삶이 어떨지 짐작이 돼요.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이라는 ‘PTSD’는 심하게 표현하면 ‘천형’이에요. 벌써부터 생존 학생들에게 ‘감정마비’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요. 너무 두렵고 무섭고 슬프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닫는 행동이죠. 그래서 표면적으로 보면 지나치게 발랄할 수 있어요. 희노애락 모든 감정의 마비가 일어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힘이 없어지죠. 생존자들도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알아야 대비하고 치러야 하는 대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설거지를 하다가도 희생된 아이들이 떠올라 침울해 져요. 안산사람들이 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일상이 유지되면서 일부분의 문제가 발생한 것은 심리 상담으로 치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은 일상 자체가 무너진 경우죠. 아이를 잃은 한 엄마는 둘째가 학교를 학교 보낸 후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습니다. 남들 시선이 무서워 밖에 나갈 수가 없대요. 엄마가 울지 않는 모습을 보고 ‘계모 아냐?’라는 소리를 들었대요. 이 분이 가정에서 일상이 지켜지고 있을까요? 아이를 챙기는 거며, 식사를 챙기는 일이 가능할까요? 이런 분에게 심리상담은 의미가 없죠. 트라우마 치료는 일상이 더 이상 깨지지 않도록 돕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원하는 사람. 가령 친정엄마나 이모, 마음을 터놓는 이웃이 될 수도 있죠. 이들이 집안일을 돕도록 해야 하고 이들에게 지원금을 줘야합니다.
그리고 희생된 아이를 기억하는 학원 친구나 교회 친구들이 부모에게 편지쓰기도 좋은 방법이에요. 육체적으로 아이를 떠나보냈지만 아직 모든 것이 생생하죠. 유가족들이 두려운 것은 이 아이를 잊는 것이에요. 잊으면 진짜 죽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아이들의 편지가 도움이 될 거에요. 그 아이가 살아있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친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살아있는지 느끼게 되면 치유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이에요.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일일이 찾아내는 것. 그리고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이 치유의 근원입니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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