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안산지역 고등학생들의 ‘촛불문화제’에 ‘어른’으로 서다

“잊지말아주세요! 잊지말아주세요! 잊지말아주세요!”

지역내일 2014-05-15

지난 5월 9일 안산에서는 2000여명의 고등학생들이 주최가 된 대규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촛불문화제는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을 애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나는 이날 부모 중 한사람이 되어서 그 자리에 함께 했고, 이 사회에 ‘어른’ 중 한사람이 되어서 촛불문화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학생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는데 주력했다. 이날 행사는 1부는 화랑유원지에서 2부는 안산문화광장에서 진행됐다. 

촛불


오후 6시30분 제1부 ‘동행’
200여명의 ‘안산시학생연합회’ 임원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합동분양소가 마련된 화랑유원지에서부터 고잔동 문화광장까지 침묵행진을 하는 것으로 1부의 시작을 알렸다. 학생들은 이 침묵행진이 단원고 학생들과 함께 하는 ‘동행’이라고 이름 붙였다.
행진대열은 안산문화광장에 모여 있던 지역내 고등학생들과 합류했다.
오후 7시40분 안산문화광장에서 진행된 2부. 2000여명의 학생들은 어른들처럼 우왕좌왕하지 않았다.
미리 와 있던 학생들은 스텐드에 자리를 잡았고 화랑유원지에서 도착한 학생들은 광장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진행을 돕는 몇몇 학생들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후 8시, 촛불이 연이어 점화됐다. 그리고 잠시 묵념했다. 그 순간 ‘이토록 진지하게, 이토록 일사분란하게’라는 말이 학생들 모습위에 오버랩 됐다. 

“우리의 가슴속 슬픔을 세상을 향해 표출하겠습니다”
“촛불문화제를 왜곡하지 말아주세요. 이념대립도, 세대 갈등도, 다른 목적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순수함을 진실하게 취재해주세요”
사회를 맡은 학생연합의장 성포고 최선우 군이 마이크를 들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친구이자 동생이자 누나이자 형입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 사건에 동요하지 말고 공부에 집중하라’,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라는 게 가만히 방치할수록, 가슴속에 묵히면 묵힐수록 썩어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희는 가슴 한켠에 감춰두었던 울분을 터드리고자 합니다. 더 이상 침묵하지 마세요. 감정을 표출하세요. 그리고 보고 싶은 친구들을 잊지 말아주세요.”
그랬다. 학생들은 지난 한달 간 슬펐고 맘껏 슬퍼하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만들었다. 그들의 슬픔과 애도 속에는 정치적 이념대립이 없다고 했고, 그 어떤 다른 목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직접 만든 동영상에 마음을 담았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이러한 비극, 이러한 아픔이 잊혀질까봐 두렵다고, 그래서 용기를 냈다고, 앞으로는 본인들의 작은 변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친구들의 죽음이 하나의 이슈거리로만 지나갈까봐 두렵습니다”
“우리는 모두 경악했고, 사회 모습에 분노했고, 침묵하던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동산고 배창현군은 말했다.
“우리는 사건이 나고 지금까지 마음껏 슬퍼하지 못합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저희에게 ‘학업에 전념하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뜻인가요? 학교가 단지 상급학교로 진학하기위해 거치는 수단일 뿐인가요? 이 사건이 단순히 이슈로만 지나갈 것이 두렵습니다.”
성안고 김성현 학생의 말은 보다 단호했다.
“우리는 친구들이 어떻게 희생되었는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고 직후 우왕좌왕한 해경, 진실을 침묵한 앵무새언론, 책임만 떠넘기는 정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가 납니다. 우리의 친구들을 죽게 만든 사회가, 그 사회에서 방관하던 국민이 그 사회 일원으로 침묵하던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미안합니다. 친구들의 죽음을 가슴에 새겨 진정으로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유가족을 헐뜯고 정치색을 입히는 행위는 그만해 주십시오.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학생들은 조용히 울고 있었다. 사회를 향해 화내고 있었다. 그리고 희생된 친구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것뿐이었다. 이날의 촛불문화제를 집회로 알고 서 있었던 ‘어른’이라서 더욱 부끄러웠다.

“저희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들이 되어주세요”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미래의 부모로써 우리방식대로 이 사건을 기억하겠습니다”
양지고 서아연 양은 울먹였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러 나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겠다고 약속한 어른들이 약속을 어긴 것을 압니다. 안녕, 얘들아. 너희를 잊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였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울면서 좋은 곳으로 가길 기도해 주는 것뿐이라 미안해.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단원고 7회 졸업생이고 지난해 학생회장을 맡았던 임보석 군이 마이크를 이어받아 다시 한번 세월호 사건을 기억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임 군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꽃다운 나이에 활짝 피지 못한 우리의 천사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합니다. 우리는 어른들의 정치에 연류 되고 싶지 않고 언론의 보도에도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학생의 본분에 맞게 이 사건을 기약하며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바랄뿐입니다.”
이것이 그 자리에 모인 모두의 마음이었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올 미래에 희망 한 줄을 보았다. 학생들의 자유발언은 그렇게 마무리 됐다.


“미안했고, 미안했고, 정말 미안했다”
마지막 순서는 노란리본카드섹션이었다. 카드섹션은 “잊지말아주세요!”라고 삼창을 한 후에 진행됐다. 그리고 학생들은 단원고학생들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썼다. 2000여명이 모인 광장은 여전히 침묵이 흘렀고 숙연했다. 학생들은 광장바닥에 종이를 놓고 조심조심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썼다. 그렇게 써진 많은 편지들은 광장에 꽃잎처럼 달렸다. 촛불문화제는 입을 모아 “잊지말아주세요” 라고 힘주어 말한 후 마무리했다. 사회자는 “잊지말아달라는 바람은 너무도 당연한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제가 끝나자 단상위로 단원고학생의 삼촌 되는 유가족 한 사람이 올라와 그 자리에 모인 많은 학생,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날의 문화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의 손에 의해서 진행됐다. 주변에서 바라보는 어른 그 누구도 관여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질서는 마지막까지 지켜졌고 그들이 가고 난 자리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고 깨끗했다. 학생들은 경건했고, 진지했으며, 성숙했다.
그것을 지켜 본 어른의 한사람으로 학생들 모두에게 “미안했고, 미안했고, 앞으로도 미안할 각오가 되었다.”


한윤희 리포터 hjyu6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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