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샘] 심형철 창덕여고 중국어교사

월인천강(月印千江) 꿈꾸는 욕심쟁이 선생님

지역내일 2014-01-24

심형철, 그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중국어 교사로서의 삶, 중국민속학자로서의 인생을 같은 시공간 안에서 동시에 살 줄 아는 재주 많은 사람이다. 신이 공평하게 선물한 하루 24시간을 쪼개가며 사느라 몸은 비쩍 말랐지만 눈빛은 깊고 툭툭 던지는 말 속에는 위트가 넘쳤다.

심형철


 ‘나는 아빠 선생님’ 담임 맡은 아이들과의 약속
 먼저 학교에서 인기 만점인 ‘27년차 선생님’의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봤다. ‘나는 너희들 아빠다’ 그가 담임을 맡은 3월의 첫 만남에서 반 아이들에게 던지는 공약이다. 그리고는 단 이틀 만에 학생들 이름 몽땅 외워 아빠처럼 다정하게 이름 불러주고 생일 맞은 아이에게는 꼬박꼬박 진심 담은 축하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선생님, 선생님하고 따르는 아이들 보면 참 예쁘고 뿌듯하죠. 상호 믿음이 쌓이면 눈빛만 봐도 마음 속 시그널을 읽어낼 수 있어요.”
 연거푸 고3 담임을 맡은 그는 진학 실적도 빼어나다. 44명 반 학생 중 37명을 합격시킨 해도 있을 만큼 내공이 탄탄하다.
 ‘인 서울 대학’은 모든 고3의 로망. 하지만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성적 간극’에서 갈팡질팡하는 아이들 한명 한명의 성적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제자의 숨은 재능을 끄집어 내 입시를 가이드한다. “비결요? 공부는 얘들이 하는 거고 내 몫은 격려하고 밀어주는 거죠. 하지만 대학원서 쓸 때는 눈높이를 현실에 맞게 낮춰줍니다. 물론 자존심 상하지 않게.” 의미심장하게 툭 던지는 한마디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공부 DNA가 탁월한 소수의 아이들에겐 ‘재수’라는 히든카드가 유효할 수 있지만 사실 상당수 학생들은 재수를 해도 크게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걸 수십 년 교단경험에서 배웠죠.” 대학에 ‘배팅’하느라 시간 허비하지 말고 적성에 맞춰 합격 가능한 곳에 지원해 착실하게 제 인생 살라는 게 제자에게 간곡하게 전하는 메시지다. 
 특히 2013년은 그에게 특별한 1년이었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대수술을 받고 병상에 눕자 자신의 건강보다도 담임을 맡은 고3 아이들이 동요하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빠 선생님’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눈에 밟혀 서둘러 목발을 짚고 교실로 복귀한 첫날, 아이들은 그를 위해 촛불 레드카펫을 깔고 감격스런 깜짝 환영파티를 열어주었다. 사제지간의 끈끈함을 온몸으로 느낀 그날을 그는 교사 인생의 잊지 못할 한 순간으로 꼽는다.


직접 집필한 교과서로 중국어 가르쳐
 역사 선생인 부친을 늘 곁에서 보고 자란 그는 큰 고민 없이 대를 이어 교사란 직업을 택했다. “학창 시절 도연명과 이백 시를 멋들어지게 읊어주고 재미난 무협지처럼 중국 역사를 입담 좋게 풀어내는 괴짜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중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국내에 중국어 붐이 일기 한참 전인 81년에 중국어교육학과에 진학했고 졸업 후 곧바로 교사가 됐다. “딱딱하고 어려운 중국어 교과서를 볼 때마다 ‘왜 교과서 대표저자가 대학교수일까? 현장에서 가르치는 중고교 교사가 쓰면 학생 눈높이에 잘 맞출 텐데’라는 의문이 들었죠.”
 이런 문제의식이 자신의 전공 분야를 깊이 파고들게 했고 의기투합한 동료 교사들과 힘을 합쳐 여러 권의 중국어 교과서와 EBS 교재를 썼다. 그리고 지금 그는 자신이 직접 쓴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흔치 않는 교사 중 한 명이 됐다.


중국소수민족에 빠져 박사 공부
 교사에서 ‘중국소수민족, 실크로드 전문가 심형철’로 외연을 넓힌 과정이 궁금했다. 중국어를 무기로 청나라의 교육철학까지 공부했던 그는 2000년 우연히 북경중앙민족대학의 소수민족 연구에 대한 TV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순간 전율이 일었다”는 그는 곧바로 휴직계를 내고 집까지 팔아 학비를 마련해 3개월 뒤 중국의 북경중앙민족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 소수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파고드는 나를 중국인들조차 의아해 했어요. 돈벌이가 안되는 분야니까요.(웃음) 하지만 박사과정 내내 행복했어요.” 유학 생활 중 서북 소수민족에 매료돼 실크로드를 샅샅이 훑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고 파미르 고원을 돌아 알타이 산맥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답사 다니며 그네들의 삶을 치열하게 연구했다.
 4년간의 대장정은 박사 논문으로 사진과 영상자료로 그리고 <신장을 알아야 중국이 보인다>, <실크로드 여행기> 등 여러 권의 책에 차곡차곡 담았다.
 중국 소수민족과 실크로드 관련 해박한 지식에다 입담까지 갖춘 그는 전국 각지에서 강의 요청을 받는 인문학 명강사이기도 하다.
 “교실 안에서 또 교실 밖에서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요. 중국 관련 책도 여러 권 더 내고 싶고 재미있는 인문학 강의도 꾸준히 열고 싶고. 내 좌우명이 천 개의 강을 고루 비추는 달빛이란 뜻의 ‘월인천강(月印千江)’입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심 교사의 청년 정신은 학생들에게는 ‘인생 교과서’ 그 자체인 모양이다. 그의 삶에서 힌트를 얻어 중국어 교사가 된 제자도 있다고 그는 수줍게 자랑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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