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1등. 모든 학생들이 선망하는 꿈의 등수를 줄곧 유지하는 비밀병기는 무엇일까? 궁금증을 잔뜩 안고 나재민군을 만났다.
“단언컨대 단 한번도 내 실력이 뛰어나다거나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다만 시험 운이 따랐을 뿐이죠. 실력과 성적은 분명 다릅니다.” 나군의 첫 마디가 의외였다.
미드 보며 공부스트레스 훌훌 날려
부끄러움이 많아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 말 보다 글쓰기가 편하다는 그는 취미가 미드 보기라며 수줍게 웃는다.
“빅뱅이론, 모던패밀리 같은 미국 드라마를 한 편당 7~8번씩 반복해서 봐도 질리지 않아요. 나중에는 배우 보다도 먼저 대사를 읊을 만큼이요. 치밀한 기승전결 구성이 자꾸 빠져들게 만들죠. 고3인 내게 손쉬운 스트레스 해소법이고요.” 듣기, 어법, 문장구조 익히기를 미드로 해결한 덕분에 따로 영어공부하지 않아도 돼 일석이조라며 싱긋 웃는다.
내친김에 그만의 과목별 공부법을 물었다. “수학은 자기 스스로 문제를 풀어야만 실력이 쌓이는 과목입니다. 원래 노트 정리를 따로 안하는 편인데 유독 수학만은 깔끔하게 수식을 정리해 가며 풉니다. 그래야만 계산 실수를 줄이고 논리적으로 식이 전개됐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문제, 틀린 문제는 형광펜으로 표시해 반복해서 이해될 때까지 재차 풀어봅니다.”
수학은 그가 중학교 때부터 애착이 컸던 과목. 고난이도 문제를 끙끙거리며 풀면서 수학의 묘미에 눈 떴고 덕분에 점수 따기용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중학교 시절 올림피아드대회를 준비하면서 ‘천재적인 두뇌 회전’을 보이는 또래들을 여럿 만났어요. 나는 1박2일 씨름해야 하는 문제를 단 10분 만에 뚝딱 풀어내는 실력자들이지요. 그들을 선망하는 마음 한켠에 나의 부족함이 뭔지 냉정히 깨달았고 그 때의 아픈 경험이 지금까지도 ‘약’이 되고 있습니다.”
국어는 흥미가 없는 과목이라 소홀히 하다 고2 겨울방학 때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파고들었단다. 우선 좋아하는 과학과 관련된 국어지문부터 분석해 나가는 한편 수능 기출문제를 다양하게 풀면서 출제의 방향성을 익혔다.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답 찾기 훈련을 계속하자 원하는 점수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공부는 마라톤’ 꾸준한 집중력에서 판가름
특히 그는 충분한 수면을 강조했다. “학력고사 세대는 암기식 공부라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식의 ‘사당오락’이 통했어요. 하지만 수능은 지식을 통합적으로 응용하는 시험이라 두뇌를 늘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낮잠도 꼬박꼬박 자면서 하루 6~7시간씩 자요. 대신 공부할 때는 최대한 몰입합니다.”
나군의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종합해 보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집중력이 그의 공부 무기였다. “3월의 고3 교실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아요. 다들 열심히 하죠. 하지만 한 달, 두 달 지날수록 느슨해지더군요. 공부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고 마라톤이라고 늘 속으로 다짐해요.”
병원에서 귀인 만나며 얻은 깨달음
그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변함없이 의사.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아버지는 의사로서 사명감이 대단하세요. 환자를 대하는 태도, 의사로서 투철한 윤리의식을 갖추고 있는 나의 롤모델이죠. 영상의학과 의사인 엄마도 분초를 쪼개가며 아들 둘을 키우고 계세요. 단 한 번도 도우미 아주머니 없이 네 식구 식사를 직접 챙기셨고 나를 살뜰하게 보살펴 주세요. 엄마가 근무하는 병원의 수간호사 등 다양한 의료인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도 놓아주셨죠. 주위에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엄마를 뒀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자란 나군은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있다. “병원에서 봉사하며 귀인들을 여럿 만났어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남을 배려하며 성실하게 환자를 돌보며 내게도 인생 조언을 많이 해준 공익근무요원 형, 죽음을 앞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 그리고 분노와 절망이 교차하는 말기 암환자들의 마지막을 성심껏 돌보는 의료진과 봉사자들.... 내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데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학교 생활이 재미있다는 그는 친구들과 적정기술 논문을 완성해 본 것을 최고의 기억으로 꼽는다. “제3세계 봉제공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노동자를 위해 얇은 보호 장갑을 만들어보자고 넷이 아이디어를 짜냈어요. 수소문 끝에 봉제공장 찾아가 자문 구하고 자료 찾으며 논문을 썼지요.” 이 논문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으며 장려상까지 수상했다.
“정답을 찾는 시험공부가 아니라 우리들끼리 주제를 정해 갑론을박하며 결론을 도출해 가는 서너 달의 여정이 즐거웠어요. 난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할 만한 경험이 없었는데 논문 쓰면서 처음 ‘그 맛’을 맛보았어요. 아마도 이 경험이 고3의 버팀목이 될 듯해요.”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나?’ 자문하며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나군은 각오를 다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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