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의 민족, 예부터 우리민족은 ‘동이(東夷)족’이라 불릴 정도로 활쏘기로 유명한 민족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올림픽 종목인 양궁이 전세계를 제패하는 것은 이런 피가 흐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양궁은 서양에서 들어 온 스포츠로 실제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는 ‘국궁(國弓)’이라고 한다. 조금은 낯설지만 친숙한, 국궁을 즐길 수 있는 곳이 가까이에 있다. 바로 자유공원 배수지위에 자리 잡은 안양시의 유일한 활터 ‘안양정’. 안양정을 찾았다.
탁 틔인 활터에 서면 몸도 마음도 정화 됩니다
호계동 자유공원 주차장입구 옆 언덕길에는 ‘궁도장’으로 가는 길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도심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호젓한 산책길, 오르막길을 따라 200미터쯤 가니 안양정 건물과 사방이 탁 틔인 넓은 평지가 모습을 드러내고 서쪽 끝에 있는 과녁판이 활터임을 확인시켜 준다. 활터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틔이는 기분이다. 상상했던 것 보다 과녁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 보인다. 양궁이 최대 90m의 거리인데 비해 국궁의 과녁 거리는 145m로 꽤나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과녁의 어느 부분을 맞춰도 명중이라고. 활을 쏘아 과녁까지 날아간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도 활을 쏘자 어느새 과녁에 불이 들어온다. 명중이다.
안양정은 2001년 국내 최초로 배수지위에 건설된 국궁 장으로, 현재는 회원수 90여명에 이르는 안양시 궁도인의 활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양정은 설립된 이래 2002년 제48회 백제문화제 전국남여궁도대회전국대회 우승부터 2011년 9.15인천상륙작전기념 전국남여 궁도대회 우승까지 5차례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그 실력 면에서도 손색이 없다.
현재 안양정 사두(대표)를 맡고 있는 김기천(갈산동, 75) 씨는 “안양정이 세워지고 난 다음해인 2002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국궁을 즐기고 있다”며 “산책하듯이 안양정에 나와 활을 쏘며 심신을 수련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은퇴이후 생활의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안양정 회원들은 적게는 고등학생부터 80대까지 그 연령대도 다양하다. 움직임이 크지 않고, 격렬한 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나이가 드신 어르신이나 여성들이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고.
집중력도 기르고, 전신운동까지
고등학교 때부터 국궁을 시작해 군대를 다녀온 지금까지도 계속 활터에 나온다는 정지두 (24)씨는 “고등학교 때 처음 활을 접하고 국궁의 매력에 빠졌다”며 “무엇보다 집중력을 기르고,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해준다는데 국궁의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10대시절 가장 잘 한 일이 국궁을 배운 것이라고 말하는 정 씨. 국궁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어르신들이 자식처럼 대해주시고, 챙겨주시는 것도 안양정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점 중의 하나라고. 국궁을 시작한지 6년 되었다는 정융화(갈산동) 씨는 “활을 쏘아보면, 현재 나의 컨디션이나 마음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며 “내 마음 상태에 따라 활이 잘 쏘아질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사대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고 활을 당길 때 느끼는 그 마음은 활을 쏘아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고. 또한 국궁은 하체의 힘을 키우고 등, 척추의 자세를 바로 잡고 복식호흡을 하는 등 전신운동 효과도 있다. 실제, 정 씨의 도움을 받아 활을 당겨보았다. 생각보다 활 당기기가 쉽지 않다. 자세 잡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바른 자세로 제대로 활을 쏜다면 충분히 운동이 될법하다. 화살을 수거하기 위해 145m의 거리를 왕복 걸어다니는 것도 적지 않은 운동이 됨은 물론이다.
3개월 정도면 활 쏠 수 있어, 5단 이상 명궁도 5명
그렇다면 국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국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장비는 활과 화살이다. 활은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개량궁을 구입하고, 화살은 15대를 준비한다. 활과 화살이 준비되었다고 무조건 과녁을 향해 활을 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활을 당기는 연습만 수없이 반복한다. 또한 국궁은 무기를 다루는 전통 무술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예절과 안전교육이 필수다. 안양정에서는 새로 국궁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15만원의 강습료를 받고 약 3개월간의 국궁의 예절과 안전교육, 활쏘는 자세부터 활 당기는 법 등 교육을 해주고 있다. 이후에는 어느 때나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활터에 나와 활을 자유롭게 쏘면 된다. 3개월 정도면 누구나 국궁을 즐길 수 있다고. 국궁은 하나의 무술로 대한궁도협의의 규정에 따라 입단, 승단의 절차를 걸쳐 자격에 맞는 품계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보통 9순(45시)의 화살을 쏘아 25중 이상이면 초단 자격을 얻을 수 있으면 5단 이상은 명궁으로 대우한다. 현재 안양정에는 5단 이상의 명궁이 5명 있다.
안양정에서는 매월 월례회를 통해 회원간 활 대회를 갖고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선발전을 통해 안양시 대표선수로 전국체전을 비롯한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도 한다. 전국적으로는 약300여개의 활터가 있다고 하니, 생각보다 국궁이 생활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는 듯 했다.
심신수양이나 체력단련이 아니라 넓은 활터에서 계절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국궁은 한번 배워볼 만하지 않을까?
신현주 리포터 nashu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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