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이예지 정신여고 3학년

장애를 ‘특별함’으로 바꾼 긍정녀

지역내일 2014-04-23

피아노, 바이올린 연주 솜씨가 빼어나며 감성과 논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분명한 메시지로 담아내는 글쓰기 실력 역시 수준급이다. 학생회 임원을 맡아 전교생이 들썩거리는 학교 축제를 매끄럽게 마무리할 만큼 리더십, 기획력, 추진력을 두루 갖췄다. 이번 빛날인의 주인공은 팔방미인 이예지양이다.

이예지


약이 된 한 마디 ‘너는 특별하단다’
“너는 특별하단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예지양에게 들려주던 달콤한 말이다. “또래들에 비해 자존감이 남다르게 클 수 있었던 건 다 부모님 덕분”이라며 그는 빙긋 웃는다.
이양이 내보이는 왼손은 엄지와 새끼손가락 뿐 나머지 손가락은 흔적만 있다. “부모님이 독일 유학중 태어난 나는 몸의 좌우골격이 불균형인데다 왼쪽 어깨와 팔이 가느다랗고 손가락이 기형인 지체장애아였어요.”
신앙심 강한 그의 부모님은 막내딸의 장애를 ‘신이 주신 특별함’이라는 신념으로 극복했고 강인한 사랑으로 꿋꿋하게 키웠다.
네 살 무렵 이양의 엄마는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힘이 없는 왼손 팔 근육과 손가락 힘을 길러주는데 건반 연습이 좋았어요. 엄한 피아노 선생님은 장애아라고 봐주는 법 없이 혼을 많이 내며 가르쳤죠.”


피아노 통해 얻은 자신감
초등학교 내내 꾸준히 배운 덕분에 피아노 연주 솜씨는 또래들 가운데 도드라졌다. “부모님은 늘 ‘피아노 잘 치는 예쁜 막내딸’이라며 다른 사람에게 날 소개하셨죠. 특별한 왼손을 지닌 내가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의미였죠.”
피아니스트를 꿈꿀 만큼 음악에 푹 빠져 살던 그는 초등 6학년 무렵 바이올린에 도전한다. 왼손가락 운지가 불가능한 딸을 위해 엄마는 좌우 구조를 바꾼 바이올린까지 특별히 주문 제작할 만큼 정성을 쏟았고 그런 엄마를 위해 딸은 끈질기게 연습해 중학교 때는 학교 관현악단 바이올린 주자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음악은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이에요. 괴물 손이라고 놀림 받던 내게 자신감을 심어줬고 학교 행사 때마다 피아노 반주도 늘 도맡아 했죠. 또 바이올린을 통해서 몽골로 음악 봉사를 다니며 배운 게 많아요.” 쏟아내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긍정의 언어며 ‘애 어른’처럼 생각이 깊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었다. 학교 관현악부 활동을 할 즈음 혼자서만 바이올린 방향이 다르다보니 오케스트라에서 튀는 존재였다. 음색도 고르지 못했고 옆 연주자와 자주 부딪히다 보니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 “관현악부에 폐를 끼치는 것 같은 심리적으로 위축됐어요. 어렵게 미안한 속내를 털어놓았는데 도리어 친구들에게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괜한 나의 자격지심이었던 거죠.” 이양 스스로 장애가 가져다 준 심리적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춘기 무렵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 장애를 극복하고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가수 레나 마리아 등 장애 극복 스토리를 읽거나 갖가지 자기개발서를 읽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주문을 늘 외면서.”
가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었던 그는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며 경험의 폭을 넓혀 나갔다. 교내 영자지 기자, 학급 임원, 학생회 활동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고교 입학을 앞두고 ‘영어의 달인’인 친언니가 영작을 가르쳐줬어요. 우리말 지문을 영어로 표현하면 어색한 부분을 언니가 수정해 주는 식으로. 그러면서 영어 글쓰기의 묘미를 처음 맛보았고 영자지 기자 활동까지 하게 됐지요.”
학생회 활동 중에서는 특히 탈북 학생들과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고. 가락동에 있는 탈북청소년 대안학교 학생들과 요리대회에 참여하고 영화를 함께 보거나 박물관 견학에 나서면서 1년 동안 꾸준한 만나며 친해졌다.
“통일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인데 나는 왜 통일이 돼야 하는 지 그 이유를 내 또래 탈북 청소년을 통해 조금씩 터득할 수 있었어요. 탈북 과정에서의 아픔, 한국 생활 정착의 어려움, 딱한 현실을 내 눈으로 지켜보면서요.” 탈북학생과의 교류과정을 자료집으로 묶어내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Now or Never! 뭐든 열심히
꼼꼼히 계획하고 진행 과정을 세밀하게 기록하며 완벽하게 일을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은 다양한 학교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학생회 활동을 하며 빛을 발한다.
“내게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뭐든 더 열심히 더 잘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어요. 친구들, 부모님, 선생님께 내가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죠. 도가 지나쳐 가끔 건강까지 해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러저러한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하는 중입니다. 특히 많은 활동을 통해 내 진로를 구체화할 수 있었고요.”
우리 사회 현상, 인권에 관심 많은 그는 대학에서 사회학이나 정치외교학 쪽으로 전공 진로를 정하고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자투리 시간까지 최대한 활용중입니다. ‘누적 복습’의 양 만큼 성적을 오르니까요.”
‘Now or Never''.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이 양은 고3의 긴 터널을 씩씩하게 건너는 중이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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