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영화제, 마라케시 국제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도빌 아시아영화제 등 영화제마다 주요 상을 석권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 ‘한공주’가 지난 17일 드디어 개봉했다. ‘한공주’는 신인 감독의 영화지만 치밀하고 섬세한 연출로 강렬한 메시지와 굵직한 울림을 전한다.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뜨겁고 먹먹해진 가슴을 시원한 음료로 식혀야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차가운 세상과 마주한 소녀
가정환경은 어렵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평범한 열일곱 살 소녀 한공주(천우희)는 어느 날 끔찍한 사건을 겪고 좋아하는 음악과 친구를 잃고 쫓기듯이 고향을 떠나게 된다. 낯선 환경과 깊은 상처로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다행히 새로운 학교에서 밝고 활기찬 성격의 친구 은희(정인선)를 만난다. 은희는 단번에 공주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봐주고 꽁꽁 닫혀있던 공주의 마음을 서서히 열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 학교의 학부모들이 공주를 찾아 학교로 들이닥치면서 잠깐의 행복은 깨지고 공주는 다시 차가운 세상과 마주한다.
영화 ‘한공주’는 예기치 못한 지독한 사건을 겪은 한 소녀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유사한 사건을 소재로 한 기존의 다른 영화들이 사건 이후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치상황이나 복수를 그려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냈다면, ‘한공주’는 사건 이후 겪는 한 소녀의 삶과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담담하게 그려내 보다 리얼하게 다가온다.
포기하지 않는 소녀, 외면하는 세상
영화 ''한공주''는 사건 이전의 과거와 사건 이후의 현재를 오가며 퍼즐을 맞춰나가듯이 스토리를 풀어간다. 그리고 결국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는 지점에서는 먹먹함과 함께 소녀가 겪었을 아픔과 고통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잔잔한 전개로 관객들에게 애써 감정을 강요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담담한 시선이 더욱 강렬한 감정의 파장을 일으킨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도망 다녀야했던 소녀는 친구와 음악을 통해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 열심히 수영을 배운다. 수영은 최악의 순간에도 스스로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소녀의 절규에 가깝다. 영화 ‘써니’에서 본드 걸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천우희는 악역 이미지를 벗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한공주 역을 너무나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소녀의 노력에 비해 세상의 시선은 차갑다. 이전 학교의 담임선생님이 신경을 써주지만 선생님으로서의 책임 범주 이상의 깊이는 없다. 따뜻한 손길, 다정한 말 한 마디가 그리워 찾아간 엄마는 새로 꾸린 가정의 평화가 우선이다. 무식한 아버지는 딸의 보호와 치유보다는 사건을 빌미로 한 몫 단단히 챙기길 바란다. 더구나 소녀의 장점을 보고 따뜻하게 다가갔던 친구와 아주머니조차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자 돕기를 주저하고 외면해버린다.
여운이 남는 차갑고 강렬한 엔딩 신
하고 싶은 일은 너무도 많은데 사회의 외면으로 아무 죄 없이 고립되고 움츠려야만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한공주’는 너무나 가슴 아픈 우리사회의 진실을 담고 있어서 보고나서도 한동안 먹먹함과 불편함이 남는다.
특히, 사회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여린 몸짓으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소녀를 대변하는 듯한 엔딩 신은 강렬한 여운을 남긴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피하고 싶을 만큼 가슴 저린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답다. 부디 차가운 강물과 같은 세상이 이 땅의 여린 공주들을 집어삼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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