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제주도 가족여행

제주의 돌, 바람, 꽃의 향기에 취하다

지역내일 2014-04-16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三多島)인 제주도. 흔히 여자를 꽃에 비유하니 여기서 여자를 꽃으로 살짝 바꿔보면 어떨까. 다시 고개를 내민 꽃샘추위와 함께 3대 9명의 대가족이 떠난 봄날의 제주도는 벚꽃과 유채꽃을 비롯한 온갖 봄꽃이 만발해 있었다. 돌, 바람, 꽃의 삼다(三多)를 한껏 보고 느끼면서 유유자적(悠悠自適),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사이 새삼 가족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깊어진 듯 했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벚꽃

혼잡한 축제 현장 피해 찾아간 제주대학교 벚꽃 길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 마침 여행기간이 ‘제주왕벚꽃축제’ 기간(4월 4일~6일)과 겹쳐 우리의 첫 번째 일정은 축제 장소인 제주종합경기장 일대에서 벚꽃축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한 앞뱅디식당 주인에게 그곳 사정을 물으니 꽃은 별로 없고 혼잡하니 차라리 제주대학교 쪽으로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혼잡함을 피하고자 했던 우리는 주저 없이 제주대학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제주대학교 진입로에서 정문까지 이어지는 한적한 벚꽃 길은 환상 그 자체였다. 하얗게 만개한 꽃가지 사이로 비치는 푸른 하늘과 바람을 타고 막 떨구기 시작한 꽃눈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갓길에 띄엄띄엄 주차된 차들과 가끔씩 스치는 사람들도 정겹게 느껴진다. 어찌 인파에 떠밀리고 가판대에 포위되는 축제 현장에 비하랴.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한가롭게 산책한 우리 일행은 식당 주인의 살뜰한 조언에 감사했다.


용두암 해안에서 맛본 바다의 홍삼
벚꽃에 취해 한참을 걷다보니 우리는 다시 출출해진데다 시원한 바닷바람도 쐬고 싶었다. 해안에서 홍삼에 소주 한 잔 기울이자는 동생의 제안으로 가까운 용두암으로 향했다. 용두암 해안은 신혼여행 객인지 단체로 여행 온 대학생들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청춘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차가운 바닷바람이 무색했다.
굴곡진 돌 해안의 편평한 구석 한편에 자리 잡은 노년의 해녀상인들은 잇따라 주문하는 홍삼을 손질하느라 바빴다. 인고의 세월을 버티며 거센 바람과 차가운 물에 익숙해진 여인들의 맨손에는 거친 노동의 흔적이 역력했다. 인삼에 버금가는 효능이 있다고 해서 해삼(海蔘), 그중에서도 제주도의 해삼은 붉은 색이 강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홍삼(紅蔘)이다.
큰놈 한 마리에 5만 원. 어머니뻘 되는 해녀들의 노동을 목격한데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꼬들꼬들한 식감을 맛본 터라 아깝지 않은 가격이다. 한두 점 맛본 후 치아가 좋지 않아 자식들이 먹는 모습만 지켜보며 흐뭇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가슴 속 깊은 곳이 살짝 아려왔다.


제주의 역사와 생태를 엿볼 수 있는 ‘제주돌문화공원’
이튿날 아침 우리가 서둘러 향한 곳은 제주의 역사와 생태를 엿볼 수 있는 ‘제주돌문화공원’. 1999년 북제주군과 탐라목석원의 돌문화공원 조성 협약에 의해 민관 공동 작업으로 100만 평의 광활한 대지에 2020년까지 조성하고 있는 돌문화공원에는 제주의 신화와 돌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한라산 영실에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설화를 주제로 하여 제주의 형성과정과 제주민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돌문화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공원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면서 생태공원이었다.
한라산 백록담과 영실의 죽솥을 상징하는 돌박물관 옥상의 ‘하늘연못’, 한라산의 화산활동으로 빚어진 희귀한 화산석을 감상할 수 있는 돌박물관, 제주도 기념물 조록나무뿌리 형상물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 전설 속 오백장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거대한 석상들, 제주의 전통초가마을을 재현한 ‘돌한마을’ 등 꼼꼼히 감상하면 하루 종일도 모자란 규모였다. 제주 전역에서 수집한 수많은 수석과 화산석, 돌하르방과 옹기에 감탄이 절로 났다.
북적거리는 중문관광단지에 비해 제주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세계적인 규모의 ‘제주돌문화공원’은 의아할 정도로 너무나 한적했다. 여유를 갖고 꼭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제주의 명소였다.


소박한 집과 소박한 그림 ‘이중섭 미술관’
지난달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만난 이중섭의 ‘황소’에서 힘찬 기운과 투지를 느꼈다면,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서 만난 은지화에서는 소박한 행복이 묻어났다. 미술관 초입에 있는 초가는 1951년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피난 와서 부산으로 떠나기 전까지 1년간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했던 곳으로 방과 부엌을 합해 세 평 남짓한 소박함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 근심을 덜었을 예술가의 애환이 느껴졌다.
올해 말까지 이중섭 미술관에 전시되는 은지화 실물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또 다른 행운이다. 전쟁 중 미술재료를 구할 길이 없어 미국 담뱃갑의 은박지를 궁여지책으로 사용해 송곳 같은 날카로운 것으로 선을 그어 그린 그림에는 재료만큼이나 소박한 가족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 여백에 그려진 해학적인 그림을 보며 미소 짓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궁핍함 가운데서 피어나는 소박한 사랑을 공감하는 어머니의 소녀 감성을 엿볼 수 있었다. 

주상


물빛이 아름다운 ‘쇠소깍’, 관광명소 ‘주상절리’
효돈천을 흐르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 깊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쇠소깍’의 지명은 쇠는 소, 소는 웅덩이, 깍은 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굳어져 형성된 골짜기계곡은 이름만큼이나 재미나고 독특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서귀포의 숨은 비경 중 하나로 깊은 수심, 용암으로 이루어진 기암괴석, 그리고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이곳의 명물인 테우(뗏목)나 투명 카약을 타고 좀 더 가까이서 구석구석 감상하고 싶었지만 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매표소 직원의 말에 우리는 아쉬움을 남기고 대포 주상절리로 향했다.
부서지는 파도가 만난 절벽에 펼쳐진 육각형 돌기둥이 장관을 이루는 중문관광단지 해안가의 주상절리대는 제주도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곳. 바람이 제법 거셌지만 시원한 풍광에 각박한 도시생활로 막혔던 가슴이 시원하게 트였다. 

유채


바람을 피해 들어선 곳에서 만난 유채꽃과 차밭
산방산에 도착하자 거센 바람으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최근 급격히 야위신 부모님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다. 부모님과 아직 어린 일곱 살 조카를 생각해 산방산 올레 길과 송악산의 풍광을 포기하고 바람을 피해 ‘오설록 티 뮤지엄’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샛노랗게 펼쳐진 유채꽃밭을 만났다. 예기치 않은 우연함이 선사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유채꽃에 묻혀 3대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은 적어도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족이 함께한 추억을 간직해줄 것이다. ‘오설록 티 뮤지엄’에서의 넓게 펼쳐진 차밭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 뒤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식도락(食道樂), 제주 음식에 한껏 취하다
오랜만에 3대가 떠난 가족여행인데 볼거리 즐길 거리가 아무리 좋다 해도 먹을거리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여행의 흥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출발 전 현지 토박이의 정보를 얻어 믿을 만한 식단을 준비했다. 어디를 가나 입맛을 돋우는 제주의 맛에 푹 빠져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토박이가 추천한 제주도 맛집>
* 앞뱅디식당: 현지인이 많이 찾는 제주 향토음식점으로 각재기국(전갱이국)과 멜국(생멸치국)이 주 메뉴이며 멜 튀김도 별미.  (제주시 연동 314-90, 064-744-7942)
* 산지물식당: 횟집이 즐비한 골목에 유독 붐비는 식당. 활어회, 생선조림과 구이,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으며, 시원한 물회와 회무침이 별미. 테이크아웃 가능. (제주시 건입동 1388-1, 064-752-5599)
* 안거리 밖거리: 이중섭 거리 인근에 있는 향토음식점. 옥돔구이, 돔베고기, 된장찌개, 계란찜 등 푸짐한 제주 한정식이 1인분에 8천 원. 가격도 착하지만 맛도 대만족. (서귀포시 서귀동 584-3, 064-763-2552)
* 제주 흑돼지 생구이 삼다가: 가정집을 개조해 운영하는 제주 흑돼지 생고기 구이 전문점. 두툼하게 썰어 나오는 생고기를 숯불에 구워 멸치젓 소스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 (제주시 연동 311-58, 064-747-4711)
* 삼보식당: 뚝배기, 자리물회, 옥돔구이를 제주 맛의 세 가지 보물이라고 해서 삼보식당. 푸짐한 해물뚝배기가 인기 메뉴. (서귀포시 천지동 319-8, 064-762-3620)
* 중앙식당: ‘보말’이라는 고둥과 성게를 넣고 끓인 ‘성게보말국’이 유명한 집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1077-1, 064-794-9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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