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쯤 그곳에 가면 늘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를 닮은 볕 따스한 계절이 뜨락에 걸터앉아 밭에 나갈 씨앗을 고르고 있었다.” 오래 된 낙서장을 뒤지다 만난 글이다. 어느 해 봄날 고향과 어머님을 생각하며 끄적였던 기억이 난다.
참 좋은 계절이다. 치악산 자락서 산수유 꽃을 보는가 싶었는데 도심의 도로변은 벚꽃이 한창이다. 길을 걷다보면 시멘트 틈에서도 제비꽃 민들레를 흔하게 본다. 눈이 호사로운 봄날이다.
이맘때면 고향마을이 그립다. 그곳의 봄은 소리로부터 왔다. 유독 긴 겨울을 보내며 얼었던 계곡은 봄볕에 풀리고 얼음장 밑에서 물소리가 났다. 봄이 오는 신호였다. 앙상하게 말라있던 시냇물은 녹은 얼음물이 모여들어 여울물 소리를 내며 흘렀다. 움도 트지 않은 냇가의 버들개지와 산비탈 진달래 가지를 꺾어 방안 화병에 꽂았다. 빠른 봄을 보고 싶어 조급증이 난 젊은 어머니는 훔쳐온 봄으로 방안 가득 치장했다. 밖은 아직 한기가 채 가시지 않았는데 방안은 벌써 버들개지와 진달래가 피는 한창의 봄이었다. 그리워지는 정경이다.
복수초는 겨울의 끄트머리 눈 속에서 피는 꽃이라 경이로웠다. 봄꽃들은 소리 소문 없이 폈다. 할미꽃이 그랬다. 잎이 나고 꽃망울이 맺히고 피고 하는, 꽃이 되는 과정 없이 어느 날 벌써 피어있었다. 숲을 들추면 괭이눈이나 별꽃, 노루귀, 동의나물, 피나물 등 풀꽃들도 그렇게 펴 있었다. 산길을 따라 생강나무나 산수유도 노란 꽃잎을 열었다. 그 쯤 꿈길처럼 느릿느릿 날개짓을 하는 나비를 보는가 싶었는데, 앞산은 벚꽃과 진달래가 가득한 화원으로 변했다. 마을 집들은 복숭아와 살구, 자두꽃이 지붕을 덮었고 울을 넘었다. 말 그대로 꽃대궐로 변했다.
참꽃, 진달래를 고향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참꽃 무더기에 문둥이들이 숨어있다 애들을 잡아간다고 하여 늘 조심스러웠다. 멀리서만 보는 붉은 꽃무리였다. 참꽃을 따서 먹으면 입술은 붉다 못해 파랗게 물들었다. 지금도 진달래에는 입술 붉게 물들었던 나의 유년이 문신처럼 남아있다. 실개천이 온전히 풀리면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고 풀피리 소리가 들렸다. 아득하고 혹은 애잔하던 풀피리 소리 따라 아지랑이가 오르면 겨우내 잠들어있던 아버지의 지게에서 두엄냄새가 나고 이내 풀내음도 났다.
오늘 아침 거실 창은 유난히 봄볕 가득하다. 이런 날, 아직도 부모님들이 뜨락에 앉아 밭에 낼 봄볕을 고르고 계실 ‘꽃내마을’이나 훌쩍 다녀와야겠다.
김경래 리포터 oksigol@oksig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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