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시간 내내 환자로 북적이던 중구 오류동의 한 비뇨기과병원. 이곳은 매주 월요일 밤이면 경쾌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남성 특유의 중후하고 우렁찬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현직 전문의로 구성된 남성 중창단 ‘디하모니’의 회원들이다. 환자 대기실 소파에 파트별로 앉아 끼를 발산하는 이들은 더 이상 진료실에서 만난 예리하고 과묵한 의사선생님들이 아니다. 노래로 뭉친 반전 있는 의사들, 그들을 만나봤다.
노래가 좋아 의기투합한 의사들
2005년 결성된 디하모니는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모인 대전지역 현역 의사들로 구성된 아마추어중창단이다. 회원 대다수가 충남대 의대 합창단 출신들이라 좀 더 쉽게 의기투합이 됐다.
“대학 선후배이면서 학창시절에 같이 합창을 했던 터라 중창단 결성 얘기가 여러 번 나왔었죠. 모두들 음악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사회에 나가서도 교회성가대 활동이나 개인 레슨 등 늘 음악과 함께 했죠. 그러다 KBS 방송에 출연한 것이 중창단 창단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외모에서부터 예술가 포스가 잔뜩 묻어나는 윤율로 단장의 설명이다.
회원은 14명. 내과, 일반외과,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피부과, 비뇨기과, 신경외과, 정신과 전문의들로 3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아마추어중창단이지만 지금까지 정기연주회를 포함해 100여 차례나 무대에 오르며 음악적인 관록을 쌓아와 이미 의사총연합회나 대전지역에선 유명 인사들이다.
창단 때부터 디하모니 중창단을 지도하고 있는 테너 강연종 교수는 이들을 대단한 의사들이라고 표현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열정만큼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음악전공자 못지않다. 그 열정을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죄송스러운 마음도 많다”고 전했다.
실제로 연습이 시작되자 피아노 선율에 맞춰 진지한 모습으로 각자 파트를 소화하는 그들을 보다보니 그 뜨거운 열기가 전염이라도 되는 듯하다.
파워풀한 남성 중창의 매력
음악이 좋아 모였지만 사실 과정이 녹록치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꾸준한 연습이 필수라서 정기적으로 시간을 할애해야하고 무엇보다 가정의 이해가 필수이다. 때문에 서로들 우스갯소리로 ‘회원이 되려면 아내와 아이들의 허락을 먼저 받고 오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막상 회원이 되어 시작하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많은 곡들을 소화해야 해서 자리를 잡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았다. 의사가 되기 위해 투자한 시간처럼 성실성은 필수 요소다.
“우리가 연습하는 곡이 100여곡쯤 되는데 모두 외우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아요. 연습만이 살 길이기에 틈틈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이 다반사죠. 각자의 장점을 모아 멋진 화음을 만들어가니까 음악에 빠져들게 되고 점점 음악 골수들이 되는 거죠.” 테너 이희만씨가 웃으며 밝히는 중창단 활동의 명과 암이다.
바리톤 유지만씨는 “연습하는 월요일이 기다려진다”고 노래하는 기쁨을 표현했다. 2년차 늦깎이 회원인 그는 “서로의 화음이 맞춰졌을 때 웅장하고, 합창과 다르게 남성 중창의 매력이 있다. 공연 기회가 자꾸 주어지다보니 더 신나게 노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바리톤 권오균씨도 “의사 가운을 벗고 무대에 서는 시간만큼은 어느 순간보다 가슴 두근거리고 흥에 겨워 노래한다”고 밝혔다.
탄탄한 실력으로 웃음 넘치는 무대 만들어
“저희 공연의 모토는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즐겁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도록 재밌는 공연을 만들려고 노력하죠.” 중창단 홍보를 맡고 있는 이영호 부단장의 설명이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스마트폰으로 기록한 공연 영상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옆에 있던 베이스 전재유씨도 태블릿 PC에 모아둔 공연 포스터 사진을 보여주며 디하모니 중창단의 전문성과 열정을 얘기했다.
이들은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민요, 동요, 팝송, 영화음악, 뮤지컬, 성가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해 무대에선 팔색조 매력을 뽐낸다. 점잖은 의사 이미지 그대로 폼 잡고 서서 노래만 부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뮤지컬 요소를 가미해 연기를 하기도 하고 선글라스, 부채 등 소품을 활용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공연 중에 가수 싸이의 말춤을 추며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때문에 공연장에서 그들을 본 환자나 장애인들이 받는 감흥은 더 특별해질 수밖에 없다.
“실력을 좀 더 갖춰서 원숙한 음악을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고 싶고 우리도 음악을 통해 정신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죠.” 윤 단장은 향후 계획을 밝히며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무보수로 지도하고 있는 강연종 교수에 대한 감사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김소정 리포터 bee4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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