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 새로운 전기 마련해야
또 시작이다. 올 해 첫 중간고사가 코앞이라 학생도 학부형도 마음이 급한 시기이다. 원칙은 간단하다. 성적을 얼마나 올리느냐는 얼마나 철저하게 시험을 염두에 두고 공부하며, 연필을 잡고 자고, 엄마보다 먼저 일어나서 전날 다 못한 공부에 얼마나 의욕을 보이느냐이다. 대개의 학부형이나 교사, 그리고 당사자인 학생들이 시험범위에 맞춰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은 기본내용과 기출문제간의 상호 피드백과정에서 나오는 학습내용에 대한 형성감(formation)과 입체감을 갖지 못한다. 그냥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그리고 헷갈리는 것 사이를 오갈 뿐이다. 또한 부진한 성적에 대한 간절한 내적 동기도 없이 학원일정이나 부모가 시키는 하루의 일과로서 내신준비기간을 보낼 뿐, 꾸준한 제2의 자기공부일정을 갖지 못한다.
‘왜 그럴까, 난 학생 때 안 그랬는데…, 이 학생은 왜 이러지? 몇 번이고 열심히 하라 했는데…’라며 갸우뚱한다. 우리 교사와 학부모는 스스로 아이를 위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그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때의 거리감은 학생과 자녀 중심적인 상대적 느낌이다. 성적이 저조한 학생은 기초력이 약하다는 평가는 누구나 쉽게 내린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해당과목에 진입조차 되지 않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즉, 그 과목의 기본적 문리가 트이지 않아 단 한 페이지도 혼자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럴 경우엔 전체를 아우르려 하지 말고 성적을 핑계 삼아 일부분이라도 진입장벽을 깨뜨려 그 과목에 대한 정서적 불안감을 없애주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바늘, 허리에 메어 쓰랴
영어의 경우, 중2 이상부터는 준동사 부분이 문법의 핵심을 이루고 독해수준도 거기에 맞춰 편성된다. 따라서 준동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선생님의 1독후에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자습형 문제풀이 양과 교과서 본문암기테스트는 성적향상은 고사하고 학생의 인내력조차 뭉개버릴 수 있다. 부정사 용법만 하더라도 문장5형식을 몰라서는 따져낼 수 없다. 그냥 임시방편적인 해석의 감으로 ‘~하는 것’이나 명사적용법 ‘~하기위하여’로 해석하면서 ‘부사적용법이야’ 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이를 더 큰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명사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어떤 것들을 형용사라 하는가’ 부터 시작하여 그 용례를 대화식으로 충분히 확인한 후에 그놈들이 문장5형식을 어떻게 이루는지를 연습하게 하고 그 풀이과정을 지켜보고 대화해야 한다. 그러면 열에 아홉 이상은‘아~ 이제 알겠어요!’ 한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 이들에겐 시스템과 커리큘럼이 획일적 고정적인 형식주의 교육은 독이지 도움이 아니다. 학/습을 선생님 옆에서 같이하는 밀착형 나선형 교육만이 아이의 얼굴을 펴게 하는 길인 것이다. 물론 덩달아 저하된 집중력을 키울 교사의 생활지도와 이를 지지해주는 학부형의 진지함은 기본요건이다.
중위권이나 중상위권의 학생들은 이와는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이들의 특징은 대개 ‘말대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자기 할 말을 하는데, 그 ‘할 말’이라는 것은 대개 ‘나를 바꾸기 두렵다’는 ‘방어기제’적인 요소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이들은 ‘자기착오’적인 학생층이다. 즉, 내가 스스로 언제부터 어떻게 얼마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시험이 지나보면 과목별로 점수가 약간 오르내리던지 아니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일 뿐, 자신과 자신에서 나오는 성적이 변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학생은 자신의 위선을 발가벗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카리스마를 가진 선생이 새롭고 깊은 강의로 대학생을 가르치듯 지도하여 2차적인 응용심화의 문리를 독한 집중력으로 겸손하게 트이게 해야 한다. 이런 학생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가정적 역학관계의 고리를 카리스마 있는 선생이 끊어내어 앞을 향해 몇 걸음만 띠게 해준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새로운 들판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이들에겐 생활지도가 더욱 절실하며 부모의 진지한 도움도 더욱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부모는 소위 ‘공부방법’을 바꾼다는 명목으로 이 학원 저 학원을 아이와 다투며 전전한다. 선생 또한 아이가 머리는 있는데 하려고 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아이가 기본적인 것은 잘 하니까 더 이상의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부모나 선생이나 아이와 끝까지 같이 갈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신은 학업수행의 징검다리다. 그 징검다리 없이 그 위에 탄탄대로를 깔 수 없는 것이다. 유아상의 부모와 분리시키는 교사, 전담형 생활지도와 수면위로 나올 때까지의 밀착관리, 그리고 지평이 다른 지도와 가르침의 이데올로기, 이것들이 ‘성실성’으로 표현되는 것이 내신이다. 무수히 봐온 것처럼 수많은 특목고 지망생들과 조기 선행학습 경험자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룸펜’화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순원 원장
에듀맥스 종합학원
2653-2428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