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사는 법-
사람들은 나이 40을 중년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자들은 중년에 찾아오는 위기를 인생 두 번째 여행의 시작이라고 한다. 두 번째 여행은 예기치 못한 가운데 시작한다. 회사퇴직, 사업실패, 외로움, 질병 등이 불쑥 찾아오기 때문이다. 중년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며 자신들의 일을 찾게 된 요양보호사 부부. 가족이자 부부, 동료로서 한 길을 걷는 그들이 전하는 인생 이야기.
유석인 리포터 indy0206@naver.com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고 지혜롭게 걸어 온 길
모든 것이 달라도 한 가지 공통분모만으로도 깊이 소통할 수 있는 관계. 그것이야말로 많은 부부들의 진짜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효나눔 방문요양센터’의 박숭우 소장과 이원향 센터장은 ‘나눔’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부부의 연을 맺은 후 요양보호사로서 지금까지 같은 길을 걸어왔다. 누구의 아내나 남편이기 이전에 각자의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해온 덕분에 두 사람은 함께 센터를 운영하지만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상대를 언급할 때도 ‘남편’이나 ‘아내’ 같은 호칭이 아니라 서로의 직책인 ‘소장님’ ‘센터장’으로 부른다.
몸이 성하지 않는 노인을 돌보는 일은 가족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해마다 치매나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을 방치하거나 유기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갈수록 노령인구는 많아지는데 이들을 돌볼 손길이 부족한 현실 속에서 부부는 ‘효나눔 방문요양센터’의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무렵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었고, 무엇을 할까 고민 끝에 독서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일터로 엄마 아빠를 찾아왔을 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독서실은 늘 학생들이 공부하니까 좋은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죠.”
독서실 총무부터 차량 운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부부가 다 맡아서 했다. 인수했을 당시 평판이 안 좋던 독서실은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덧 대기자가 생길 정도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저는 아침마다 학생들 책상 130개를 일일이 닦으면서 기원했어요. 이 학생이 잘 되게 해달라고, 훌륭한 인재로 자라나게 해달라고. 남편은 겨울이 되면 책상마다 귤을 하나씩 나눠주고 행여 학생들이 감기에라도 걸리면 손수 유자차를 타주었죠. 가족같이 따뜻한 독서실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만든 가족같은 센터
이원향씨는 늘 아이들과 함께 공부했다. 아이들이 유치원 때는 어린이 프로그램 강사로, 초등학교 때는 아동지도사로, 청소년기에는 교육학 석사와 청소년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러면서 ‘전문인으로서 미래지향적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대학생이 됐고 독서실을 정리한 후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
‘효나눔 방문요양센터’는 보호대상자와 요양보호사와의 유대관계를 중요시 한다. 단순히 시간을 채우고 보수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직업의식을 가지고 내 가족처럼 보살피는 요양보호사들의 마음이 노인들에게 활력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부는 틈나는 대로 요양보호사들과 이야기하며 그들의 고충을 듣고 나눈다. 둘 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어 그들의 어려움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바로 해결해 주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들도 센터를 가족처럼 여기고 좋아한다.
“저희 센터에서 케어를 받는 어르신들 중에는 혼자 사시는 독거 어르신들이 있어요. 그어르신들은 저를 자식처럼 생각해주세요. 병원진료를 가야 할 때나 개인적인 일이 있으실 때, 자식들보다 저를 먼저 찾으세요. 보호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면 자신들을 대신해서 고생한다며 고마워하죠. 그럴 때 마다 참 뿌듯한 마음이 들고 ‘이 일을 하길 잘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숭우 소장은 “인생의 황금기인 노년을 보살피는 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그 분들의 눈빛을 보면 보람과 함께 더욱 사명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부부는 동반자이자 스승
이처럼 한 분야에 종사하는 부부라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서로가 상대의 다른 점을 인정하면 모든 게 편해진단다. 함께 일을 하며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맞춰온 덕분에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무르익었다.
“공통의 화제가 생겼다고 할까요? 아이들까지도 저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도와줘요. 홈페이지 개편이나 센터관리 등을 아이들이 먼저 제안했죠. 저희 부부는 이 일을 하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매일매일 대화꺼리가 있어 좋아요.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에 만나면 한 아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죠. 하루 종일 어르신들하고 지낸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두 사람은 추구하는 스타일도 같다. 가끔 요양센터를 방문하는 이들 중에는 부부인 두 사람을 하나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내의 존재감을 더 드러내주기 위해 애쓴다. “아내 경력 정도면 엄연한 전문가인데, 부부 요양보호사로 알려지다 보니 ‘누구의 아내’가 되는 일이 종종 있어요. 일할 때만큼은 각자의 분야를 인정해줘야죠.”
요양보호사는 대상자 본인뿐만 아니라 대상자 가족과도 소통해야 한다. 때문에 서로가 옆에서 조언하고 짚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가 서로의 돌보미이자 좋은 게 있으면 가르쳐주는 스승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인생을 함께 설계하는 부부로서도 말이다. “앞으로 결혼할 분들에게 ‘세상의 속도보다 조금은 느리게 살아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너무 화가 날 때에도 바로 흥분하지 말고 조금 천천히, 정말 기쁠 때도 너무 들떠서 방방 뛰지 말고 조금 천천히. 기다려준다는 건 절대 손해 보는 일이 아니랍니다.”
효나눔방문요양센터 www.ilsanca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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