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선 ssam'' Top + 고교 수학 특강(9)

수학 선행학습

지역내일 2013-12-20

사교육을 받는 학생의 열에 일곱은 그 시간에 선행학습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행학습 과목은 주로 수학과 영어였다. -중략- 선행학습 과목으로는 수학이 41.4%로 가장 많았고 영어(31.9%), 국어(13.0%), 사회·과학(7.7%)이 뒤를 이었다.
선행학습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미리 배워두면 학교수업을 받는 데 유리할 것 같아서’(42.2%), ‘학교수업과 시험이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쫓아가기 어려워서’(24.4%), ‘다른 아이들이 다 하니까 안 하면 성적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16.3%), ‘특목고·대학 진학준비를 위해서’(13.2%) 등으로 답했다.
       -2013년 9월 2일 한겨레신문 기사 중에서


이제 곧 겨울 방학이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학습 계획을 세울 것이다. 필자는 방학 중 학습계획을 짜는 학생들에게 항상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한다.
“방학 기간 중에 절대로 선행학습 계획을 세우지 말아라. 일반계 고교에서 수학 선행학습이 필요한 학생은 정말 극소수이다. 그러니 지난 학기에 학습한 부분을 충실하게 복습하는 시간을 가져라. 너희들이 수학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배운 내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해서 성적이 저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기 중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많으므로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과 용어를 복습하고, 배운 문제들을 다시 풀어보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심화 학습을 해야 한다. 수학은 반복학습 과정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낼 때 깊은 맛을 느끼게 되고 성적도 향상되는 과목이다. 그러니 제발 부탁인데 선행 학습 절대로 하지 마라.”
이런 당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한다. 하지만 수학 성적이 향상된 학생들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성적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며, 어느 대학 출신인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와 수학이 학교 성적과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남보다 앞서가지는 못할지언정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수학 선행학습은 필수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다보니 남들은 다하는데 나만 안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효과와는 상관없이 선행학습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학 선행학습은 필수라는 잘못된 흐름 속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학생들은 학습 의욕과 자신감이 뚝 떨어지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한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은 원하지 않는 덤이다.
어린아이는 뒤집고, 기고, 일어서기의 단계를 밟아야만 걷게 된다. 수학도 단계별로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목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배운 내용을 충실히 이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지난 단계의 학습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선행 학습은 간단한 개념설명과 기본 유형에 해당되는 문제들만 풀어보는 수업이 되고 만다. 그렇지만 선행학습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맞물려 이런 유형의 학습이 효과적이라는 그릇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설픈 선행학습은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심리적 안정을 줄지는 몰라도 학교 수업에 몰입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수학 성적의 향상은 학교 수업에 집중하는 정도와 비례함에도, 사람들이 수학 선행학습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맹목적이고도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다음 기사가 잘 나타내주고 있다.


‘만 5세 유아들에게 제공되는 유치원 누리과정에서 초등학교 수준의 수학을 가르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방과후 특별활동에서 심각한 선행이 이뤄지고 있어 문제로 지목됐다.’-중략- 최 대표에 따르면 만 5세 유아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나오는 삼각형, 꼭짓점, 변 등과 정육면체(5학년 과정)라는 용어를 통해 입체도형을 배우고 있다. 또 초 1, 2학년 과정에서 손뼘이나 손가락 길이 등을 활용해 배우는 길이 개념을 누리과정에서는 센티미터(㎝) 등 단위로 가르치고 있다.
            - 2013년 9월 24일자 한국일보 기사 중에서 


그릇된 선행학습으로 인한 폐혜 때문에 정부에서는 선행학습금지법으로 대표되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에 관한 특별법안'' 제정을 추진 중이며,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경기도내 일부 학교의 선행학습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선행학습 방지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선행 학습을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떨어진다는 불안함, 공부를 등수와 일류대학 합격으로 동일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거둘지 의문스럽다. 자칫 의도되지 않은 범법자만 양산하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도 앞선다. 
남들보다 먼저 새로운 제품을 사서 사용해 보는 사람들을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유난히 얼리 어답터가 많다고 한다.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수학 선행 학습은 얼리 어답터가 아니다. 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서, 튀어 보이고 싶어서,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서, 배운 내용은 다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같은 내용을 두 번 배우기 싫어서 하는 게 선행학습이 아니다.
쉽지 않겠지만 과감하게 선행학습의 유혹에서 벗어나자. 소가 풀만 먹으면서도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는 비결은 4개의 위로 되새김질 하면서 영양분을 최대한 흡수하기 때문이다. 수학 공부도 마찬가지다. 곱씹어 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배운 내용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흥미도 생기고 성적도 향상된다.
호시우행(虎視牛行), 수학 공부와 아주 잘 어울리는 고사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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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광고등학교 신인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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