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양념인 된장, 고추장, 간장을 직접 담가 먹는 주부가 얼마나 될까? 리포터의 친정엄마도 집에서 직접 메주를 쑤어 장을 담그던 일을 몇 년 전 이사 후 장독 둘 곳이 마땅치 않다며 그만둔 후 해마다 된장과 간장을 어디에서 사야할 지 고민이다. 아마 노인정에서 소일하시며 간장을 직접 담그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신 후면 장을 직접 담그는 가정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건강을 위해 집에서 담아 먹고 싶어도 아파트 살이에 보관 장소도 마땅하지 않고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에 지레 포기하게 되는 장 담그기.
전문가와 함께 장을 담그고 우리집 장독대를 만들어 보관까지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수인산업도로변 안산 초입에 위치한 ‘상록수 된장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장 담그기 장인에게 잊혀진 장 담그는 법을 배워봤다.
집집마다 다른 장 맛 정성이 우선
우리 전통장의 종류는 크게 세 가지다. 가을철 메주를 쑤어 겨울 온돌방에서 발효를 시킨 후 정월 소금과 물을 넣고 우려내는 간장과, 간장을 빼낸 메주를 으깨어 만든 된장, 메주가루와 고춧가루 찹쌀가루, 간장을 넣어 만든 고추장이 바로 그것이다. 장류는 발효음식으로 간을 맞추는 데 사용하며 감칠맛으로 음식의 맛을 살리는 우리 전통 양념. 장 담그는 방법은 집집마다 달라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각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레시피, 혹은 옆집 장맛이 맛있어 슬그머니 따라해 보는 어깨 너머로 전해지는 노하우까지 집집마다 장맛이 달라지는 이유다.
상록수 된장마을 김영석 대표는 “장 담그는 법은 딱 정해진 것이 없어요. 그래서 장 담글 때는 겸손해야 해요. ‘이 방법은 틀렸다’라는게 없어요. 집안에 전해진 비법이기 때문에 ‘우리집은 이렇게 만드는데 저 집은 저렇게 만들기도 하는구나’하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장 담글 때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만큼 하지 말아야 하는 금기도 많았다. 장제조법이 담긴 옛 서적에 따르면 장 담그기 좋은 날을 특별히 정했고 피해야 하는 날도 정해져 있다. 뿐만 아니라 장독대의 방향과 장 담그고 세이레 즉 21일 안에는 아기 낳은 곳과 초상난 집에 가는 것도 금하고 있다. 장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숯과 솔가지를 얹기도 하고 장독대 주변엔 부정을 막아주는 버선을 메달기도 했다. 그 만큼 장을 대하는 조상들의 태도는 매우 엄격하고 조심스러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가을에 만든 메주로 정월에 장 담기
집안살림의 중심 담기의 시작은 가을철 잘 익은 콩을 쑤어 메주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곳 상록수 된장마을은 직접 기른 콩과 국산콩 100%만을 골라 메주를 만든다. 잘 불린 콩을 푹 삶아 으깨 메주를 만든다. 볏짚위에 잘 말린 메주를 짚에 메달아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걸어두면 겨우네 메주가 완성된다.
김영석 대표는 “우리네 조상님들은 장을 담그는 날을 아주 까다롭게 골랐어요. 너무 추워 물이 얼면 안 되고 너무 더우면 장이 상할 수 있기 때문에 정월에 담가 삼월까지 장이 우러나도록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월안에 장을 담궈야한다”고 말한다.
상록수된장마을도 음력으로 정월이 지나기 전인 지난 2월 말에 장을 담궜다. 장 담그는 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금물에 깨끗이 씻은 메주와 쓴맛을 뺀 소금, 깨끗한 물을 준비한 후 간장독에 메주를 넣고 염도를 맞춘 물을 부으면 된다.
“요즘 사람들은 짜게 먹지 않기 때문에 염도는 18~19도에 맞춘다. 60일 숙성기간이 지나면 메주를 건져내고 잘 다려서 보관하면 된다”
장은 갓 담은 맑은 장과 오랫동안 숙성할수록 색깔이 진해지고 맛이 강한 진간장으로 익어간다.
직접 담아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가져갈 수 있어
간장을 걸러낸 메주를 으깬 된장은 예전엔 그냥 먹었지만 지금은 맛을 더 좋게 하기 위해 간장을 빼지 않은 메주와 섞어서 된장을 만든다.
“간장을 만들며 감칠맛이 간장으로 다 빠져 나갔기 때문에 건져낸 메주로만 된장을 만들면 맛이 덜하다. 간장을 빼낸 메주와 그냥 메주를 1:1 비율로 섞어서 된장을 담그면 영양가도 높고 맛있는 된장이 완성된다”
된장이 단순하고 우직한 양념이라면 고추장은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양념이다. 기본적으로 찹쌀로 쑨 풀에 메주가루와 고춧가루 엿기름 소금을 섞어 만들지만 지역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넣어 향과 맛이 다양하다.
상록수된장마을에서는 찹쌀 대신 보리쌀을 사용한다. “보리쌀로 만든 고추장은 찹쌀로 만든것보다 감칠맛이 강하고 윤기가 있다. 된장마을을 시작한 계기도 어머니에게 배운 고추장이 맛있어 여기 저기 담궈 주다보니 된장마을까지 만들게 되었다”는 김영석 대표.
얼마 전엔 대부도 포도즙을 넣은 대부포도 고추장을 개발해 특허출원까지 했단다.
상록수된장마을에서는 전통방식으로 담은 간장과 된장 고추장 구입은 물론 직접 재료를 가져오면 담는 법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김 대표는 전통음식을 만드는 노하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농업기술센터에서 장만들기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고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장 담는 체험행사도 진행했다.
“여기 항아리마다 담근 사람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어요. 장독대가 없으니 이곳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한 통씩 가져다 드시는 분들도 많다”는 것이다.
귀찮고 힘든 일이라 생각했던 장 담기. 누군가 옆에서 지도해주는 사람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싶다. 올해부터는 우리 집 장 담기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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