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였던가? 지인을 통해 물이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가 안양천은 물론이고 수암천에도 분포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회색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인 도심지 한 복판에 맑은 물이 흐르고, 또 그 물에 물고기가 산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공업도시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안양시가 이젠 자연생태계가 꿈틀대는 녹색 웰빙 도시로 거듭나려는 현실은 반가움 그 자체였다.
하루가 다르게 봄의 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진다. 카메라를 챙겨들고 얼마 전에 완공되었다는 수암천으로 나갔다. 봄을 느끼고 싶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났던 탓이다.
병의 목처럼 생긴 병목안 풍경
수암천을 거닐기 위해 차를 세운 곳은 다름 아닌 병목안.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곳은 안양9동 새마을교에서 안양 채석장에 이르는 곳이다.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입구는 좁지만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해 이름이 붙여졌다. 조선시대에는 수리산 뒤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뒤띠미라고 칭했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마을에 진주 류씨가 부자로 살았는데 날마다 찾아오는 식객으로 고민하던 차, 하루는 시주하러 온 스님에게 그 방법을 물었다. 스님은 마을 입구 산밑에 묘를 쓰고 탑을 세우라고 했고 그대로 했더니 식객의 발길은 끊겼으나 진주 류씨가 일거에 패가했다는 것이다. 이는 병목안 동쪽에 있는 산이 풍수로 보아 배형국이므로 산 끝에다 묘와 돌탑 등 무거운 것을 쌓았으니 배가 뒤집혀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 새마을교 옆에 있던 돌탑은 한국전쟁 때 미군들에 의해 없어졌고 이젠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복개천에서 다시 자연형 하천으로 변신
수암천은 수리산의 연봉인 수암봉에서 발원하여 안양3동과 안양2동을 거쳐 안양대교에서 안양천과 합류되는 하천이다. 총 연장 5.5km에 폭은 20m에 이른다. 이 하천은 지난 1986년 천변에 공장과 민가가 밀집돼 있어 각종 생활폐수가 흘러 심한 악취를 풍기고 해충의 서식지로 알려지면서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여론에 따라 양지교에서 부터 안양교에 이르는 구간을 복개했다. 이번에 완공된 수암천은 학의천, 안양천, 삼성천에 이어 네 번째이다. 수리산 공군부대 입구까지 4.53km구간에서 정비된 수암천은 복개주차장으로 활용되던 하천이 복원되었고 산책로를 겸한 자전거도로가 있다. 그렇게 복개한 지 28년 만에 다시 세상 속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수암천. 안양9동 새마을 입구 양지교에 다다르자 아직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저기 공사의 흔적이 보였다. 가뭄이 심해 하천의 바닥이 보이고 아직 날씨가 풀리지 않은 탓에 인적도 드물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하천을 지나는 사람도 있고,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답답하게 느껴졌던 하천이 이렇게 탈바꿈하고 보니 시원한 느낌도 들었다.
“예전에는 공장이 많았을 때 하천에서 심한 냄새가 났지. 생활폐수나 공장폐수를 여기다 버린 탓인지 지나가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졌어. 여름엔 더했으니까 말이야. 이젠 이렇게 해놓으니 냄새도 안 나고 보기에도 좋아. 서울에도 청계천이 멋있게 조성되어 시민들의 쉼터 역할을 하잖아. 수암천도 얼마 있으면 그렇게 될거야.”
안양3동에서 50년 이상을 살아왔다는 한 주민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리포터에게 슬그머니 다가와 한 마디 건네고 지나간다.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 삼덕공원
하천을 따라 걷다보니 삼덕공원이 보인다. 포근한 날씨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공원으로 향했는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2003년 삼덕제지 전재준 회장이 안양시에 부지를 기증하면서 조성된 삼덕공원은 수암천의 자연형 하천과 연계해 자연친화적 공원으로 만들어져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쉼터이다. 이날도 삼삼오오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부터 젊은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는 연로하신 어르신들도 많았다.
“여기 삼덕공원? 얼마나 좋은지 몰라. 평촌에는 중앙공원이 있지만 만안구에는 제대로 된 공원이 없었잖아. 젊은 사람들도 그렇고 우리 같은 노인네들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친구들 만나 중앙시장에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다시 공원으로 와 얘기도 하고 깨끗하고 좋아.”
길 건너 중앙시장에서 몰려나오는 사람들도 저마다 손에 장바구니가 들려져 있고, 쉬었다 가자며 공원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가한 주말의 한 낮. 따사로운 햇살이 좋고, 귓가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정겹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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