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은 다양하건만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길은 하나인 듯 보였다. 바로 대학으로 가는 길. 하지만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 믿었던 이 길에 빨간불이 커졌다. 대졸 백수 300만 시대, 고교 졸업자의 80%가 대학에 진학하는 이상 현상 속에, 일찌감치 진로 적성을 찾아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입학을 결심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 간판을 뒤로 하기엔 뭔가 모를 미련과 불안감이 밀려온다. 왜 그런 것일까? 대학 진학에 대한 인식과 사회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위권 중학생들의 진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특성화고의 힘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아이들을 위한 선택, 현실에 눈을 떠라!
서울, 경기권을 중심으로 중학교 진로, 진학 상담 교사 중 상당수는 내신 성적이 20% 밖일 경우 특성화고 진학을 권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능 응시 인원과 대학 정원을 비교해보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대학의 문이 넓어졌지만, in서울로 표현되는 서울 소재 대학은 수능 응시자 가운데 12.8%만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 일반고에서 대학 입시만을 준비하는 것이 과연 경쟁력이 있는가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 조종찬 교무부장은 “일반고에 다니는데 전학이 가능하냐는 문의 전화가 지속적으로 오고 있다”며 무조건 대학을 보내기 위해 진학시켜 놓고 뒤늦게 후회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기 있는 특성화고의 경우 정원 초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2,3년전 까지만 해도 미달되기가 일쑤였던 특성화고의 모습과 달리, 춘천과 원주권의 일부 특성화 고등학교는 초과된 인원이 일반고로 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중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특성화고 진학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
그래서일까. 최근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꼼꼼히 비교 분석에 나선 학부모들도 늘고 있다. “며칠 전 중학교 내신 18%정도가 된다는 쌍둥이 자녀들 둔 학부모님이 학교를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이 자동차와 전기에 관심이 많다면서 학교에서 어떤 교육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정확히 물으시더군요.” 조 교무부장은 사회적인 인식과 분위기가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며, 학교 역시 진로와 연계해 관심 있는 학생들을 우선 선발할 계획임을 밝혔다.
진로 경쟁력으로 취업률 Up, 취업의 질 Up
특성화고에 대한 이러한 인식 변화에는 높은 취업률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졸 백수 300만 시대, 특히 현대경제연구원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전체 비경제활동인구 중 고학력자가 18.4%를 차지, 고학력 백수 숫자가 역대 최고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의 경우 취업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특성화고 졸업 생 중 취업자는 77.8%로 전년대비 9.6%나 늘어났다. 도내 특성화고 중에서는 ‘원주의료마이스터고’가 90%의 취업률을 자랑하며, ‘홍천강원생활과학고등학교’가 75%로 1,2위를 차지. 4년 동안 수천만 원을 쏟아 부어도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가 된 상황에서, 일찌감치 특성화 된 진로를 탐색해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의 변화는 당연한 듯 보인다.
특성화고 취업의 또 다른 변화는 지자체와 공기업, 대기업 등에서 고졸자 채용이 확대되면서 취업의 질이 높아졌다는것. 특히, 강원도의 경우 도교육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도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특성화고 졸업자 취업할당제를 추진, 올해 도교육청과 지방공무원 임용시험으로 총 17명이 채용되었다. 그 외에도 도내 2012년도 특성화고 졸업생 중 대기업과 은행, 공공기관 취업에 성공한 학생은 총 232명이다.
이제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이 필요한 시점. 9.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춘천교육지원청 시설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권정원씨는 “춘천기공의 경우 공부방을 따로 만들어주면서까지 지원해주었다”며 자신이 노력할 의지만 있다면, 확실한 지원 속에 취업을 준비할 수 있는 곳이 특성화고 라고 말했다.
선취업 후진학, 대학 교육 기회 다양해
학부모나 학생 모두 특성화고 선택의 최대 갈림돌은 ‘그래도 아직까지 대학 간판은 필요하다’는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특성화고라고 해서 대학과는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특성화고 특별 전형이 축소되고는 있지만, 취업희망자가 월등히 많아짐에 따라 같은 전형에서 경쟁 인원이 줄어드는 추세. 실질적으로 내신 우위에 서서 대입을 공략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특성화고는 ‘선취업, 후진학’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우선 취업을 하고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대학에 입학하는 시스템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에 가야한다는 편견만 깬다면, 자신의 진로를 살핀 후 경력을 쌓고 대학에서 하는 공부는 더 큰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더욱이 반가운 일은 2012년 20개교 865명이었던 특성화고 졸업 재직자 특별전형 실시 대학이 2014년 59개교 3,788명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 고려대, 연세대, 한양대, 중앙대, 건국대, 국민대 등 국내 유수의 대학이 이 전형을 실시하고 있으며, 등록금 자비부담이 10~20%밖에 되지 않아, 경제적 부담까지 덜 수 있다.
특성화고 입시에 관심이 있다면
2014학년도 도내 특성화고 원서접수는 12월 3일부터 5일까지 진행된다. 관심이 있다면 먼저 각 학교에 배치된 진로진학상담교사와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교육부에서 운영하는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포털’ 사이트에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거주 지역 혹은 관심 계열 중심으로 특성화고를 검색할 수 있으며, 각 학교에 대한 세부 정보도 잘 구성되어 열람하기 편리하다. 특히, 재직자 특별 전형 개설 대학교에 대한 소개가 자세하며, 기업 연계 특수 대학 정보도 유용하다. 무엇보다 특성화고 입학을 고민 중인 학생을 위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은 평소 몰랐던 자신의 적성이나 계열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놓치지 말 것!
특성화고에서 만난 사람들- 춘천기계공고
지난 7일 막을 내린 제 48회 전국기능경기 대회에서 ‘춘천기계공업고등학교’는 입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단체에 수여하는 금탑 트로피를 수상했다. 입상 선수들은 내년도 전국대회 입상선수와 평가전을 거쳐 2015년 국제 기능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삼성그룹, 현대그룹 등 대기업 취업이 확정되고 있는 상황. 새벽 2시까지 연습실 매트리스를 위에서 새우잠을 자며 주말도 없이 훈련한 학생들과 사생활을 반납하고 학생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교사들의 이야기는 특성화고, 진로 교육의 힘을 보여준다.
동력제어 부문에 금메달을 획득한 김인규(전기시스템제어과3)군은 현재 삼성전기 입사가 확정된 상황. 하지만 입학 당시는 그저 성적에 맞춰 온 학교였다. “솔직히 공부를 못해서 특성화고에 왔죠. 하지만 면접을 보고 학교를 다니면서 저의 가능성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반면, 건축설계 캐드 부문에 은메달을 획득한 함태훈(건축토목과3)군은 입학 전부터 진로에 대한 계획이 확고했다. “건축사이신 고모부가 입학 전부터 조언을 해주셨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가족들도 응원해주었습니다.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우명식 지도교사는 “전공분야에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끼는 학생들은 동기부여가 되고 목표 의식을 갖게 된다”며 꿈을 갖고 열심히 하는 제자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진로 교육의 중요성과 교사로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또, 이고은 지도교사는 “수상한 기쁨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특성화고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정희 리포터 imh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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