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길을 가다보면 오르락 내리락 고갯길이 정말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기계가 발달하여 웬만한 언덕이나 고개는 중장비로 밀어붙이고 농경지로 또는 주택지로 개발하지만 옛날에는 생활의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개는 자연스럽게 구역을 나누는 경계 역할을 하게 되고 지역 위치를 말할 때에는 고개를 중심으로 방향을 말하게 되므로 지명으로 정착된 곳이 많은데 문제는 고개라는 말이 생긴 지가 오래지 않고 아주 옛날에는 다른 말로 쓰였기에 구전되면서 다양하게 표기된 것이다.
원래 고개를 뜻하는 말은 ‘잣’이었다. 꽃작골(내수 주중), 부처작골(오창 탑리), 황새적골(옥산 장동), 부처직골(현도 시동), 복숭아나무직골(현도 시동), 황청이직골(현도 시동), 새작골(오창 성산) 등에서 보이는 ‘작’ ‘적’ ‘직’은 ‘잣’이며 일반적으로 고개를 ‘잣’으로 불러온 것이다.
그런데 지명에서 끝말을 ‘잣, 작, 적, 직’으로 부르기에는 불편하고 실제 지명에서 그런 예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명의 끝말에서는 자연적으로 음운변이가 일어나 ‘잣’이 ‘재’로 쓰이지 않았는가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청주시 가경동의 ‘꽃재’와 주성동의 ‘수름재’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유명한 ‘문경 새재’, ‘박달재’를 비롯하여 전국의 지명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
‘잣’과 ‘재’가 혼용되어 쓰여 오다가 한자가 들어오면서 ‘성(城)’의 훈(訓)을 ‘재’ 또는 ‘잣’으로 설명하다 보니 의미상의 혼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적을 막기 위하여 인간이 쌓은 큰 규모의 건축물을 성(城)이라 하게 되어 지명에서의 ‘잣’과 ‘재’는 ‘고개’의 의미가 점차 소멸되면서 의미 전달이 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고개’라는 말을 첨가해야 할 필요성이 생기게 되어 ‘잣’+‘고개’ > ‘잣고개’, ‘재’+‘고개’ > ‘재고개’라는 지명 형태소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잣고개’(보은 내송 백현, 진천 사석), ‘매작고개’(옥산 후기), ‘꽃재고개’(보은 회북 부수)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특히 ‘잣고개’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잣’이 ‘고개’라는 의미를 상실하였으므로 ‘잣나무’를 의미하는 ‘백(栢)’으로 표기하고 보니 지명의 의미를 잣나무가 많은 고개로 만들어 갈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청원 옥산 장남리의 ‘잣고개’가 백현(栢峴-잣나무고개)으로 표기된 것이 그 예라고 할 것이다.
청원군에 인접해 있는 보은 내북 산성리(山城里)의 ‘잣미’는 ‘재미’라고도 하고, 영동 용산 천작리의 ‘자작동’을 ‘재재기’라고도 하는 것은 ‘잣’과 ‘재’가 혼용되고 있는 예이며, 보은 내북 산성리(山城里)의 ‘잣미’는 이곳 지명이 원래 성산(城山)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어 1914년 행정구역 폐합시에 ‘산성리’라고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상준
지명연구가, 수필가, 음성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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