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풀어가는 수학세상 (39)

박사가 사랑한 수식

지역내일 2013-10-11 (수정 2013-10-11 오후 12:48:53)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책을 점점 더 멀리한다.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회의 분위기와는 반대되는 상황이 학생들에게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독서는 다양한 창(窓)으로 세상을 보면서 깨달아가는 즐거운 과정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보다는 독서를 성적, 입시와 관련시키다 보니 지겨운 일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마치 호기심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으로의 공부보다는, 몇 점인지 몇 등인지가 더 중요해지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듯이. 그러다보니 독서와 공부는 스스로 즐기면서 하는 게 아니라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일로 되어 버렸다. 

나름대로 독서를 꾸준히 한다는 학생들조차도 수학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학생들은 수학은 이해되지도 않는 수식과 기호로 이루어져 머리만 아픈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학생들은 수학에 관한 책들도 수학교과서처럼 틀에 박힌 내용과 공식만 가득해 재미가 없을뿐더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읽어 볼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신선하게 바꾸어주는 책이 오가와 요코의 소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교통사고로 시간이 17년 전에 머물러 있으며 기억력이라고는 80분간만 지속되는 희귀병에 걸린 64살의 수학 천재인 박사, 박사를 보살피는 스물여덟 살의 미혼모 파출부인 ‘나’, 한신 타이거스의 열렬한 팬인 ‘나’의 열 살짜리 아들 루트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박사는 80분마다 기억이 새롭게 시작되기 때문에 지난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양복 옷깃에 메모지를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게다가 박사는 항상 숫자와 연관 지어 이야기하므로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파출부들이 9명이나 된다. 10번째 파출부로 주인공인 ‘나’가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자네 신발 사이즈가 몇이지?”
새로 온 파출부라고 말하는 내게 박사가 제일 먼저 물은 것은 이름이 아니라 신발 사이즈였다. 한마디 인사도 없고, 고개도 숙이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든 고용주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서는 안 된다는 파출부의 철칙을 지키기 위해 나는 물음에 답했다.
“24인데요.”
“오오, 실로 청결한 숫자로군. 4의 계승이야.”
박사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계승이 뭐죠?”




세상의 모든 연결 고리를 숫자로 풀어내는 박사를 견디지 못한 이전의 파출부들과 달리, ‘나’는 매일 아침 똑 같은 질문을 하는 박사를 통해서 일상의 숫자들이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신선한 기분으로 즐기게 된다.
어느 날 ‘나’에게 10살짜리 아들이 있음을 알게 된 박사는 집에 혼자 있는 아이를 걱정하여 자신의 집에 와 있으라고 한다. 아들을 처음 만나던 날 박사는 애정이 넘치는 미소로 두 팔을 한껏 벌려 포옹을 하며‘루트’라는 애칭을 지어준다.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세 사람은 우연히 루트와 박사가 한신 타이거스의 팬임을 알게 된 후, 17년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팀의 어제와 오늘의 선수를 응원한다. 박사는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비록 80분밖에 안되지만 그 시간동안 만큼은 루트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낸다. 세 사람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가던 시간도, 박사의 80분짜리 테이프가 망가지고 기억이 17년 전에서 조금도 꼼짝하지 못하게 되면서 1년 만에 끝나게 된다.




이 책에는 우애수, 완전수, 과잉수, 부족수, 쌍둥이 소수, 삼각수, 오일러 공식 (책에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등 교과서를 통해서는 접해보지 못한 개념들이 자주 나온다. 수학적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도 숫자를 자연스레 연결해주는 박사의 설명 때문에 책을 읽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수학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세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이야기와 투명한 감동에 흠뻑 빠져보자. 




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제목도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동일한 영화가 일본에서 2005년에 제작 되었다. 책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한 번 감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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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광고등학교 신인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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