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혼외는 논외다

지역내일 2013-10-08
서종택 고려대 명예교수

요즘 때 아닌 '혼외' 논쟁이 뜨겁다. 찻집에 가도 동창회에 나가도 성묫길에 동행한 형제들 사이에도 온통 혼외가 화제다. 최근 정국의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때에 '혼외자식'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처럼 낯설고 생뚱맞은 사건이었다.

전직 대통령의 은닉재산의 추적과 환수가 한참 마무리되어 가고, 현안이었던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조사가 관련자들에 대한 선거법 위반으로의 기소가 진행될 즈음에 수사 책임자인 검찰총장에게 '혼외의 아들'이 있다는 제보가 나왔다.

우리는 이미 국정원의 선거개입 문제가 터졌을 때 현장을 지키고 문제를 제기했던 야당측의 고발에 여성을 '감금한' 고발자의 처사를 맞고발하는 운석을 맞아본 적이 있으므로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 시점에서 '혼외자 논쟁' 적절한가
다만, 범죄의 현장을 덮친 것이 인권을 감금한 것으로 대체되고 의혹이 폭등하자 다시 대통령의 북방한계선 대화록에 대한 새로운 메뉴를 꺼내들어 역공을 시작했고 국민들은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잠시 혼란에 빠졌다. 그 논쟁이 길어지자 사건의 본말은 전도되기 시작했다. 운석은 우리에게 생뚱맞은 날벼락이 아니라 낯익은 거대한 바위덩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일부다처의 사회도 있고 일처다부의 사회도 있고 일인일처제가 선호되는 사회도 있고 간통죄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한 개인의 성적 정체성이나 인격의 상호성에 입각한 어떠한 논의도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의 처첩의 관계를 정당화할 수 없다. 인류가 만들어낸 제도 가운데 가장 졸렬한 것이 결혼제도라는 유머나 아이러니도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의 혼외를 변호해 줄 명분은 못된다. 우리는 그만큼 우리가 만들어낸 관습으로 개인의 자유와 억압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당대적 관습이나 규범을 어기는 일은 일단 공직자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않은 행위이므로 우리는 그를 공격할 수 있다. 혼외가 당사자에게 부여된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질과 능력과는 무관하게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 사회의 문법도 본인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덧씌워진 혐의를 부정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거두지 않는 현실을 무작정 무시해서도 안될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관습과 윤리에 저촉된 한 개인의 사생활을 들어 그를 공격하고 변호하는 논쟁에 휩싸였다. 공직자이기에 사생활일 수 없다는 논리와 사생활이 왜 공공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거도 무의미해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공직자에 대한 혐의가 사실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이 논쟁이 지금의 시점에서 적절한 것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이다. 그가 한 여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결과에 대해 얼마나 충실하였는지 그러지 못하였는지를 따지는 것 또한 지나치게 한가한 호사취미요 사생활 침해다. 사회적 물의만 아니라면 어떠한 개인적 선택도 다만 그의 사생활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패권력의 진부한 방식 절망적
한 공직자의 여성관계는 그의 개인적 윤리를 따지기에 필요한 하나의 단서가 될 수는 있지만 그에게 부여된 국가권력기관의 선거개입 수사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를 비난하는 온갖 사실과 의견의 논거들 또한 현 사태의 본질도 우선순위도 아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 대화록시비와 내란음모와 혼외자식과 사초실종으로 본말이 전도되고 본질이 흐려지고 경중이 뒤바뀌고 두서도 완급도 없어지는 동안 우리의 의식은 서서히 마비되어 간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국가적 위기란 사태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공직자 개인의 윤리적 결함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나 이념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데서 염려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이를 이용하여 부패한 권력을 비호하고 연장하려는 세력들의 진부한 방식은 절망적이다. 지금 우리에게 혼외는 논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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