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어 문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투자 대비 실익은 형편없으나 결코 방법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존의 방식으로 문법과 단어 암기, 문장 암기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한다. 정작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그 방법대로 해서 거의 다가 실패했으니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성공에 더 근접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면 마지못해 수긍한다. 혹시 그 불안함이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써 혹시 성공할까봐 불안한 것이냐고 말해보면 그 때서야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결국 그들이 그러는 것은 일종의 군중심리일 가능성이 높다. 다들 하는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판단해서 제대로 된 방식을 결정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기존의 방식으로 영어 학습을 시키는 학원, 교재 집필자, 유명 강사들의 책임 또한 그래서 크다. 그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방식으로 영어가 언제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끝난다고 말하지 않는다. 10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끊임없이 하는 얘기는 매일 꾸준히 공부하면 된다는 거다. 그것은 도대체 얼마나 많이 그리고 언제까지 해야 하는 지 자신들도 모른다는 얘기와 진배없다. 그들의 방식으로는 당장 어제 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고 한 달 전 두 달 전 공부한 것은 어느 새 깊은 망각의 샘 속으로 빠져 버린 것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로 문제 풀이나 묘수풀이처럼 영어를 대한다. 이럴 때는 이런 표현을 쓰고 저럴 땐 저게 정답이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그들 역시 날마다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그들의 책상 위에는 그래서 각종 영어 참고서와 영한, 한영, 영영 사전이 즐비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숙원인 영어 잘하기가 해결이 될까? 해답은 기존의 방식으로 영어를 할 때 등장하는 현상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우선 원서를 볼 때 우리글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어렵다. 그러려면 모르는 단어를 영한사전에서 다 찾아야 하고, 문법적으로 분석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차적 해결책은 모르는 단어를 버리고 아는 단어로만 이해를 도모해 보는 것이고 문법적 분석은 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한글 문장 이해도 그렇게 한다.
원어 방송이나 영화를 볼 때의 문제는 무슨 말을 하는 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조금만 들리면 바로 한국말 해석 모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느라고 다음 말은 번번이 놓쳐서 결국 다 듣지를 못하니 다 들어도 시원찮을 상황에 다 안 듣는 셈이 된다. 그래서 역시 일차적으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려고 하기 전에 일단 다 듣는 연습부터 필요하다. 그렇게 하다보면 아는 말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걸 통해 줄거리가 잡히고 그러다 보면 모르던 단어의 의미가 들어오고 다시 세부 줄거리가 잡혀 종국에는 거의 모든 단어와 표현의 의미를 알게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일련의 과정이 어릴 때 모국어를 깨치던 것과 유사하다. 사람은 태어나서 불과 5,6 년이면 모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 사이에 문법을 공부하거나 어휘 암기를 할 수 있는 아기는 아무도 없다. 그저 주변에서 들리는 온갖 모국어를 그저 듣고 옹알이를 하고 흉내를 내는 행위를 할 뿐이다. 그들이 노출되는 모국어의 수준도 대부분의 경우 거의 성인급이다. 아기가 모국어를 배우고 있으므로 왕초보 어휘와 문장을 구사해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들이나 아기들 말 배우기용 방송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방송국도 없다.
혹자는 모국어 환경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모국어가 저절로 습득되는 과정을 영어 습득에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노출의 양이 엄청나니까 비교가 안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그 논리로는 영어권 나라에 이민 가서 수십 년 째 살고 있는 교민들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이 설명되지 못한다. 사실, 아기들이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보다 자세히 보면 그들이 모국어 습득을 위해 스스로 훈련하는 시간은 놀거나 잠자는 시간에 비해 훨씬 적다. 교민들과 아기들의 차이는 그러니까 습득 방식에 대한 차이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노출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방식을 쓰느냐 이며, 공부를 해서 머릿속에 저장하느냐와 훈련과 연습을 해서 혀와 가슴에 인이 박히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영어 학습의 실패자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부터 따져 대강 6년 이상 영어를 하고 또 했지만 일상의 의사소통도 잘 안 되는 수준이면 진즉 학습법을 바꿨어야 했다. 태어나서 별도의 언어 학습 없이 5,6 년이면 모국어라는 언어를 하나 습득하는데, 그보다 훨씬 지능도 높고, 모국어라는 언어 체계도 하나 가진 상태에서 특별히 마련된 학습 과정을 통해 또 하나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이 그렇게 오래 걸릴 리도 없고, 도달한 수준이 그렇게 참담할 리도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록 새삼스럽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영어도 언어이어서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며 세상의 모든 수단은 오로지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사용법을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찬용 박사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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