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또래 보다 키가 껑충하게 크고 손발이 큼직했던 오지인양. 유치원 때부터 배운 수영은 재미있었고 코치들마다 수영에 적합한 체형이라며 선수 생활을 권하자 그는 ‘마린 걸’이 되기로 일찌감치 마음먹었다. 하지만 계단에서 다친 발목이 덧나면서 수영 선수의 꿈은 물거품이 돼버렸다.
‘너는 내가 사는 이유다’ 아빠의 한마디
“성적도 신통치 않고 유일하게 잘하는 수영 선수의 길을 접자 멘붕이 찾아왔어요.” 방황이 극에 달했던 중학교 시절 아빠의 일침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철저하고 완벽주의자인 워커홀릭 아빠는 나의 멘토였어요. ‘아빠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컸죠. 그런 아빠는 진로 때문에 흔들리는 나를 한 동안 묵묵히 지켜만 보셨죠.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불러 앉히고 ‘지인아, 너는 내가 사는 이유고 희망이다’고 말씀하셨어요. 정말 죄송했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우선 공부 공포감 극복이 급선무였다. 국영수 가운데 우선 기본기가 취약한 수학, 영어 보다 우리말로 된 국어부터 공략했다. “부끄럼 많고 내성적이지만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 나를 국어 선생님이 눈여겨보고 따뜻하게 대해주셨어요. 응원을 받게 되니까 더욱 열심히 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교사란 새로운 꿈을 품게 됐지요.”
작심하고 소심한 성격 개조 나서
그는 ‘존재감’ 없는 자신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3 때까지 임원선거에 빠짐없이 출마했지만 몽땅 다 떨어졌어요. 내게는 리더의 자질이 없나보다 자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꼭 한번 당선되고 싶었죠.”
고교 입학 후 자신의 성격을 바꿔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일부러 반에서 제일 쾌활한 아이와 친구가 돼 성격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노력과 친구의 긍정 에너지가 더해지면서 ‘오지인’만의 캐릭터가 만들어졌고 서서히 반 친구들의 주목을 받게 됐다. “난생 처음 1학년 2학기 때 부회장으로 당선되고 나니 뛸듯이 기뻤어요. ‘나도 하면 되는 구나’란 깨달음이 제일 큰 수확이었죠.”
자신감의 날개를 단 뒤로 학교 생활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우선 학교에서 진행하는 알짜 프로그램을 찬찬히 살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잠실여고에서 송파구 고교생을 대상으로 여는 토론논술프로그램에서는 1:1 첨삭까지 받으며 글쓰기 노하우를 익히고 토론실력을 업그레이드 했다. 10:1의 경쟁률을 뚫고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 장학생으로 뽑혀 난생 처음 싱가포르를 방문하기도 했다. “성적도 스펙도 나보다 월등히 좋은 지원자들이 몰렸지만 공들여 자기소개서를 쓰고 성심껏 면접을 본 덕분에 싱가포르를 견학하는 행운을 얻었어요. 간절히 원하는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니까 목표를 이룰 수 있더군요.
특히 국회청소년리더십 캠프에 참가하면서 강한 인상과 깨달음을 얻었다. 송파 지역 학교 대표로 선발된 고교생들이 팀일 이뤄 국회 곳곳을 둘러본 후 모의 국회를 열어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는 캠프였는데 1박2일간 법률 제정의 전 과정을 생생히 체험하며 리더에게 필요한 섬김과 포용의 자질을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됐다.
‘기회는 만드는 것’ 경험 통해 배워
이처럼 새로운 경험과 체험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점점 더 커졌다. “교사란 장래 꿈을 일찌감치 정해 놓았지만 다양한 전공과목을 미리 체험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 그래서 각 대학마다 고교생을 위해 마련한 전공 체험 기회를 유심히 살폈어요.”
또래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학교 게시판 정보를 꼼꼼히 메모해 중앙대에서는 국어국문학과, 국어교육학과, 문예창작학과를 건국대에서는 철학과, 숭실대에서는 고전읽기, 경기대에서는 호텔경영학과와 경영학 전공 체험 기회를 골고루 얻었다.
“피상적으로 알던 전공과목을 대학 교수님께 직접 이야기 듣고 졸업 후 진로에 대한 팁까지 얻으니 내 나름의 ‘진로 맵’이 뚜렷해지더군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직업은 역시 교사라는 걸 확인하는 기회도 됐고요.”
‘해보자, 할 수 있다’며 스스로 닦아세우며 하나씩 도전해 나갈수록 오양은 더욱 여물고 단단해졌다. 무엇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꼈기 때문에 특유의 끈기로 차근차근 성적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오답노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어요. 국영수 과목별로 문제를 풀 때 왜 오류를 범했고 정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상세히 적은 다음 두세 번 반복해서 보니까 실수가 줄고 점수가 오르더군요. 공부 자신감도 생기고요.”
중학 시절 교실 안 그림자 같은 존재인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국어 선생님 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는 오양. 자신처럼 존재감이 없이 속앓이만 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손 내밀어 용기를 북돋워주는 선생님이 꼭 되고 싶다면서 앞으로 1년을 많이 응원해 달라며 활짝 웃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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