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사람 만나는 일로 쏘다니다 돌아온 저녁이다. 불을 넣어 따뜻해진 방바닥에 등을 기대니 졸음이 몰려온다. 펼쳐 놓은 노트북을 닫는다. 심심풀이로 켜 논 TV도 끄고 방을 밝히던 형광등까지 끄고 나니 생각이 많아진다. 눈을 감았는데도 창을 넘어 온 달빛은 유난히 밝다. 세상 처음 보는 것 같은 빛이 방안까지 들어온다. 창가로 다가가 달빛을 쫓는다. 보름달이다. 빛은 추위에 얼어 꼼짝없이 잠들어 있는 마을을 비춘다. 집 앞 성황림도 비춘다. 달빛에 젖은 마을과 숲은 신화처럼 신비롭고 고즈넉하다. 이병주 소설가가 “달빛에 젖으면 신화가 된다”고 했는데 정말 마을은 신화가 된 듯 신비롭다.
한해를 시작하는 가 싶었는데 벌써 반달을 보냈다. 갑오년이라고 하고 ‘푸른 말’을 상징하는 해라고 한다. 그런 것들이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한 살 나이 먹는 것과 빛의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이 큰 의미다. 나이 때문에 조금 서글프고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자니 때론 조급하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나이가 되니 달빛도 유난스럽고 때때로 신화가 된다. 우두커니 달빛을 보고 있자니 나도 보인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그동안 펼쳐놓은 것들을 수습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때는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그것으로 갈등하던 청년기도 있었다. 꿈도 있었다. 시골서 마당 예쁜 전원주택을 짓고 농장을 하고 싶었다. 한 쪽에는 카페도 하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목가적으로 사는 꿈이었다. 결혼하며 그 꿈은 반토막이 났다. 도시가 일터였고 사람들이 경쟁상대였다. 하지만 방향은 늘 그곳으로 향해 있었다. 돌고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하다보니 주변이 너무 산만해졌다. 올해는 하나씩 정리해 추스리고 싶다. 내 꿈속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일을 하고 싶다.
달빛 때문에 잠은 달아나고 머릿속은 맑아졌다. 방금 전에 끈 TV속에서 철학교수가 “사람은 경계에 서 있을 때 가장 자유롭고 또 그런 유연성이 있어야 삶이 윤택해진다”고 했다. 노자의 사상을 얘기하면서 한 말이다. 내 꿈은 늘 도시와 시골의 경계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삶도 도시와 시골을 넘나들었다. 그것이 혼란스러웠고 힘들었지만 그래서 자유로웠다. 내가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는 보람을 조금이나마 느끼며 사는 이유도 그 경계에 있었다. 그 교수가 이렇게 써먹으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안이 된다. 올해는 그 경계에서 내 꿈을 향하는 더 큰 동력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경래 리포터 oksigol@oksig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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