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좀 부리는 남자들은 옷을 맞추러 소공동으로 갔습니다. 이곳은 최고급 맞춤정장 가게가 오미조밀 모인 거리로 한국의 ‘새빌로우’(Savil Row 영국의 맞춤 슈트 거리)로 불렸습니다. 기성복이 나오기 전까지 최고의 호황을 누렸는데, 지금은 몇몇만 그 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 <세상을 바꾸는 블로거>에서는 남성슈트 블로거 ‘도도남’을 소개합니다. 그는 슈트(Suit)를 만드는 테일러로 정통슈트에 대한 고급정보를 아낌없이 나누고 있습니다.
멋 좀 부릴 줄 아는 남자, 김정민
김정민씨(41세)는 남성슈트 블로거(http://gendodo.kr)다. 그는 현재 맞춤정장 ‘젠도도’에서 책임실장 및 수석 테일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맞춤 정장에 입문한 건 1998년이다. 어릴 때부터 재주가 많고, 패션에 관심이 많아 한번은 도전해보고 싶었던 분야였다.
“그전에는 컴퓨터 쪽에서 일을 했었어요. 벤처 붐이 일다가 거품이 빠지면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남성복으로 옮겨왔어요.”
처음엔 무작정 슈트 명장들을 찾아 다녔다. 뭐든 제대로 배워야 하는 성격이라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패턴이라는 게 책을 본다고 해서 익혀지는 게 아니었어요. 수학공식처럼 체계화되지 않아서 어려웠죠. 그래도 파고들어 열심히 하다 보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누구보다 습득이 빨랐던 그는 2005년 양복점을 열게 된다. 수완이 좋아 강남, 일산, 마포, 화정, 의정부 등 여러 가게를 두게 되었다. “그 무렵 일본에서 저가 맞춤정장이 인기였어요. 저렴한 원단으로 만드는 과정을 축소한 접착식 정장이었죠.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지금도 대부분 그 방식으로 만들고 있어요.”
그러나 돈을 벌수록 ‘이게 아닌데 하는’ 회의가 들었다.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 말 못할 죄책감도 생겼다. “드라이를 하면 틀어지는 옷을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 땀 한 땀 손으로 기운 정통 슈트로 다시 돌아왔지요.”
그 후 수제방식으로 슈트를 제작하는 ‘젠도도’에서 일하며, 수석 테일러로 성장했다. 지금은 겨울연가, 드라마시티, 자이언트 등 각종 영화와 드라마 의상을 제작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소통의 장이자 홍보의 창
그가 블로그를 시작한 건 2013년이다. 처음부터 ‘남성 슈트’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 지금은 젠도도를 알리는 홍보의 장이자 소통의 창으로 활용되고 있다. 블로그 덕에 드라마 촬영도 여러 번 했다.
블로그에는 주인장 ‘도도남’과 세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도도남은 가상의 인물로, 젠도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가고 있다. 공방 장인들의 이야기며, 원단이야기, 그리고 매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담아낸다.
“40년 경력의 마스터 테일러 김익호 선생님과 수석 테일러 돈키호테 김이사님, 막내 테일러 산쵸 김실장이 주인공이에요. 도도남의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요. 사실 제가 돈키호테 김이사입니다.”
요즘은 블로그를 보고 젠도도를 찾는 손님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블로그에서 미리 정보를 접하고 오시는 분들은 확실히 감각이 다르세요.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 빠르고요. 마스터 테일러 선생님이 치수를 재고, 패턴을 제작하면, 이사인 제가 재단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한 디테일이 살아있답니다.”
블로그 운영원칙은 쉽고, 재밌게, 그리고 꾸준히 하는 거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스스로 공부가 돼요. 예전이 익혔던 것들이 다시 정리도 되고요.”
마스터 테일러 김익호 선생님
정통 슈트 ‘비스포크’
그의 블로그에는 슈트(Suit) 이야기가 가득하다. 원단과 바느질 방식부터 단추, 칼라, 소매 등 부자재 정보까지. 슈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태리 명품원단 ‘아리스톤 나폴리 슈트’를 소개해 화제가 됐어요. 매 시즌 물량이 한정돼 있어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없는 희귀 원단이거든요.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테일러드 진도 여전히 인기랍니다.”
그는 특히 정통 슈트 ‘비스포크(Bespoke)방식을 강조한다. 비스포크 방식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패턴이기 때문에 ‘나만의 맞춤 슈트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일산에서는 젠도도가 유일하다. “비스포크는 ‘Been Spoken For’라는 말에서 유래했어요. 치수재기부터 패턴의 제작, 가봉, 완성에 이르기까지 테일러가 모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접착 방식의 맞춤양복과 기성복에 질리신 분들은 한번 입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의 블로그는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나 인생의 첫 슈트를 맞추는 사회 초년생에게 패션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존 맞춤 양복의 올드함을 상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내 몸을 따라 흐르는 자연스러운 슈트 라인을 기본으로 최신 디자인까지 가미해 아주 멋지답니다.”
돈키호테 김이사 산쵸 김실장
슈트 명장의 기술 이어가고파
그의 블로그는 남성슈트 안내서와 같다.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16관왕을 차지하던 명장들의 기술을 밀도 있게 다루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때의 메달리스트들이 어디로 갔는지 통감을 하게 됩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장인들은 노년층으로 접어들었고, 그들의 기술을 이을 젊은 테일러도 사라졌습니다. 남성슈트의 맥이 끊기기 전에 제가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되짚어, 새내기 테일러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슈트의 기술을 아낌없이 나눠줄 생각이다. 원단 조각이 거치는 재봉과 가공과정 하나하나를 더욱 디테일하게 기록하고, 원단의 느낌을 살리는 디자인 노하우도 꼼꼼히 알려줄 계획이다.
“슈트는 그 자체로 성공한 남자의 상징입니다. 치수를 섬세하게 재고, 디테일 하나 소재 하나 취향에 맞게 고른 맞춤슈트는 기성복에 비할 수 없는 만족감과 자신감을 주지요. 앞으로도 세련된 디자인을 기술력 있게 만드는 명장의 정신을 이어가겠습니다.”
이남숙 리포터 nabisuk@naver.co
도도남이 전하는 슈트 관리 노하우
-다림질은 하되 드라이는 너무 자주 하면 안 된다. 한철에 한번만.
-연달아 입지 마라. 옷도 휴식을 줘야 한다. 3일에 한번 정도 입어야 복원력이 좋아진다.
-자개단추는 드라이 할 때 은박지로 싸던지, 해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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