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계형사들 80대 독거노인과 사투(?)에서 ‘졌다’

대전경찰청, “싼타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독거노인과 아름다운 경쟁 …주거니 받거니 결국 ‘무승부’

지역내일 2013-12-17 (수정 2013-12-17 오후 9:13:26)



대전경찰과 독거노인 사이에 벌어진 사투(?) 소식이 겨울 한파를 녹이고 있다.
지난달 대전 둔산경찰서에 폐 자동차 부품이 도난당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수사에 나선 강력 6팀은 황 모씨(82세)를 붙잡아 조사했다. 경찰은 피해액이 크지 않고 피해자도 처벌을 원치 않아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사건의 본질은, 조사과정에서 강력반 형사들이 황 노인이 거처하는 창고식 단칸방을 들여다보면서 시작됐다. 방안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본 형사들은 ‘사람이 이런 걸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다. 주머니를 턴 형사들이 쌀과 약간의 음식재료를 사서 방안에 몰래 놓고 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황 노인이 둔산경찰서를 찾아왔고, 담당 경찰관 자리에 현금 2만원을 슬그머니 놓고 갔다.
강력반 형사들은 황 노인을 찾아가 돈을 돌려줬다. 그런데 다음날 황 노인은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다시 경찰서에 나타났다. 자전거에는 사과 두 봉지가 실려 있었다. 이에 질세라 형사들이 용돈을 모아 오리털 점퍼와 옷가지를 장만해 조용히 황 씨에게 전달했다. 이걸로 상황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며칠 후 황 노인은 “형사들이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쓰지”라며 돼지갈비 15근을 경찰서에 놓고 갔다. 형사들은 정육점을 찾아가 황 노인에게 돈을 돌려주게 하고 자신들이 돼지갈비 값을 치렀다. 한민전통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황 노인이 폐지와 고물을 팔아 모은 돈 1000원짜리 지폐 120장을 돼지고기 값으로 주고 갔다”고 말했다.

대전 서구 용문동 주민센터 복지담당 공무원은 “자존심과 고집이 엄청 센 할아버지인데 남의 도움을 절대 받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고민에 빠진 형사들은 ‘이 고집불통 영감을 어쩐다냐’며 내부통신망에 직원들의 지혜를 구했다.
정용선 대전청장이 나섰다. 찢어진 군복 바지를 입고 나타난 황 노인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느냐는 질문에 황 노인은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경찰에 부담주기 싫다는 것.
돌이 지나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가정부로 돈을 벌어 초등학교까지 공부시킨 이야기도 털어놨다. 27살에 결혼했으나, 가정형편을 알고 난 부인은 곧바로 자취를 감췄다.
식사를 마치고 정용선 청장이 작은 선물과 환불한 돼지갈비 값을 쥐어주자 황 노인은 극구 사양했다. 정 청장이 “할아버지가 사오신 사과를 직원들이 감사하게 받아서 나눠먹었다”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것인데 받아들이시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잠시 후 황 노인은 “마음을 나눈다고요?” “날 불쌍한 노인네 취급하며 동정하는 줄로만 알고…” 눈가엔 웃움과 눈물이 흘렀다. 황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선물을 들고 자리를 떴다. 형사들은 “황 노인과 대결에서 경찰의 승리로 끝났다”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더 큰 시련(?)이 다음날 닥쳤다. 황 노인은 돼지갈비 30근을 자전거에 싣고 다시 경찰서에 나타났다. ‘힘쓰려면 고기를 먹어야지’ 한마디 남기고 휑하니 사라졌다.
둔산서 강력6팀은 앞치마를 둘러야 했다. 황 노인이 사는 인근 노인복지회관에서 300명분 돼지갈비 요리를 했다. 전대환 둔산경찰서 강력 6팀장은 “할아버지한테 졌다. 요리하는 게 범인 잡으러 다니는 것보다 더 힘드네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산타로 나선 대전경찰
7살 소녀와 경찰의 사랑 이야기도 감동을 주고 있다. 
대전에 첫눈이 내린 지난달 28일 새벽, 7살 소녀가 맨발로 대전 선화파출소를 찾았다.
엄마와 단 둘이 외지에서 막 이사 온 터라 일정한 거주지가 없었다. 파출소 직원들이 용돈을 모았다. 반지를 빼는 직원들도 있었다. 이 돈으로 파출소 근처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선화파출소 직원은 “어차피 겨울에 산타클로스 한번 하려 했는데 잘됐네요”라며 웃었다.
이 후 7살 소녀는 파출소 직원들과 가족이 됐다. 엄마가 일터로 나가면 숙직실에서 생활했다. 직원들은 인근 유치원에서 학습지나 교재를 구해다가 가르쳤다. 구청과 주민센터를 방문해 상담 후 모자원 입소를 부탁했다. 모자원 생활은 3년까지 가능했다. 파출소 직원들과 생활안전협의회 회원들이 나서 가전제품과 생활용품을 모았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 중소기업에서 취직을 검토했고, 16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12일 오전 엄마 손을 잡고 대전경찰청을 찾은 소녀는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 대전청 한 직원은 “대전청이 올해 추진하는 ‘ㅎㅎㅎ 운동’ 의 행복한 가정만들기에 직원들이 마음으로 활동한 결과”라고 말했다.



◆24시간 기동수색, 생명을 살리다
올 4월부터 시작한 대전청 ‘24시간 기동수색팀’ 활동이 수많은 생명을 살려 화제다. 24시간 출동대비를 하고 수색작업에 나서는 기동수색팀 운영결과 지난해보다 해결 건수가 24.5%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대전 엑스포다리에서 자살하려는 주부(48)를 유성 도룡동 지구대 112 순찰근무자가 몸을 날려 구했다. 수면제를 다량 복용했다는 신고를 받은 중부서 유등지구대 직원들이 시내 모텔을 수색, 자살자를 찾아내 병원으로 이송해 살렸다. 

밤 10시 물에 뛰어든 50대 여성 자살자를 진잠파출소 이기성 경위가 뛰어들어 구조했고, 즉석에서 심폐소생술로 살리는 등 대전경찰의 활동이 시민들의 삶속에 깊게 들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최영훈 사장(57. 서구 둔산동)은 “올해 경찰 활동이 부쩍 눈에 띄게 많아졌고, 친절해졌다”며 “시민들의 안전문제나 공동체 생활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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