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눈이 내렸다. 제법 쌓였다. 마당이나 주변 산들과 성황림, 마을의 집들까지 어딜 보아도 잘 그린 풍경화 한 폭이고 그만큼의 운치다. 운치가 있는 만큼 처량한 것들도 있다. 가까이서 풀잎이나 나무를 들여다보면 잎사귀에 쌓인 눈이 등짐이 돼 많이 무거워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한다. 마당 끝에 선 늙은 소나무는 잎사귀에 쌓이는 눈의 무게를 못 이겨 구부정한 가지를 더욱 힘들게 누이고 지난 밤 눈을 맞았을 터다.
마을 어귀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한 쌍의 부부 장승도 흰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나마 시골길은 띄엄띄엄 드나들던 사람도 눈 때문에 발길이 뜸해졌지만, 마을 지킴이 노릇을 하는 무뚝뚝한 장승 부부의 부릅뜬 눈은 여전하다. 그 풍경들 사이에서 눈발만 호들갑스럽게 흩뿌리고 때론 속삭이듯 도로에, 나뭇가지에, 지붕에 쌓였다. 눈이 덮인 마을은 온통 고요함뿐이었다. 덩달아 마음도 고요해진다. 아랫목만 따스하다면 부러울 것이 없다. 시골 사는 맛이고 멋이다.
하지만 그런 운치도 한편에서는 불편이고 누구에게는 두려움이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도심의 교통은 마비가 되고 미끄럼 사고로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한다. 제설작업이 늦다며 역정을 내고 직장인들은 출근시간에 못 대어 종종 걸음을 친다.
시골살이에서도 눈은 꼭 목가적인 풍경만 주는 것은 아니다.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무너지는 낡은 집 지붕도 있고 애써 기른 과수의 가지도 부러진다. 값 비싼 정원수가 눈의 무게로 가지를 다친다. 눈이 그치고 나면 마당의 눈도 쓸어야 생활하기 편하다. 마을길의 제설작업이라도 늦어지면 고립되기 십상이다. 유유자적 사는 전원생활이라면 하루 이틀 고립돼 사는 것도 즐길만 하겠지만 시골에 살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고립되면 모든 스케줄이 엉망이 된다.
큰 길에서 한참 들어간 곳에 홀로 전원주택을 짓고 산다면 혼자서 길에 눈을 쳐야 한다. 마을 사람들이 누구나 쓰는 큰길이라면 면사무소에서 일찌감치 제설작업을 해준다. 아니면 마을에 있는 제설시설로 차가 다닐 정도의 길은 쉽게 뚫리지만 내가 혼자 사용하는 도로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 것도 만만치 않다.
이래서 시골생활은 늘 이중적이다. 눈이 내리고 쌓여서 만드는 아름다운 설경, 목가적인 풍경의 전원생활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보고 즐겼다면 생활을 위해 그것들을 치워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그래서 전원생활은 전원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생활이 더욱 중요하다.
김경래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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