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육청이 올해 도입한 고교평준화 제도가 시행 1년을 맞고 있다. 무시험 추첨을 통해 학교를 배정 받는 평준화는 춘천과 원주에서는 각각 21년 만에 부활했고, 강릉은 사상 처음이다. 갑작스런 변화로 일선학교 현장이나 학부모들은 다소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 하지만 최근 해당지역 3곳의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나듯, 평준화에 대한 만족도는 대체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타 지역 사례분석에선 오히려 평준화가 성적 높아
갑자기 평준화로 바뀌면서 나타나는 변화들의 중심에는 적지 않은 학부모들의 근거 없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비평준화 시절 선호와 비선호로 극명하게 갈렸던 개별학교들에 대해 가져왔던 기존의 인식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녀들의 성적이 동료 학생이나 학교 분위기에 따라 하향평준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내 아이가 비평준화 가면 성적이 올라갈 텐데, 평준화 가서 자칫 떨어질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의 견해는 어떨까? 지난 2000년부터 6개 지역의 고교평준화 도입과정에 참여해온 가톨릭대 성기선 교수는 이 같은 우려를 일축한다. “처음 1~2년은 혼돈과 약간의 의구심이 있을 수 있는데, 대개 3~4년 지나면 정착이 됩니다. 5~6년 지나고 보면 학교의 순위와 명성이 완전히 뒤바뀌어져 있는 경우를 많이 봐왔어요.”
성 교수는 그간 국책연구기관을 비롯해 공신력 있는 주체에 의해 연구돼 왔던 데이터를 근거로 제시한다. “평준화에 대한 우려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지난 70년대 말에 연구를 해봤는데, 결코 평준화고가 비평준화고에 비해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이때 이미 나왔어요. 또 2000년대 들어와서 결정적으로 작용했던 연구결과가 있었죠. 실제 학생들의 성적을 통해 놀라운 사실이 입증됐습니다. 하위 10%에서 상위 10%까지 성적대별로 전 구간에 걸쳐서 국어, 영어, 수학 성적이 오히려 평준화가 높게 나왔어요. 다만, 상위 3~5% 이내 최상위 그룹의 수학성적은 비평준화가 1~2점 정도 높은데 이 부분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지만,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떨어뜨린다는 견해는 틀렸다는 것이지요.” 성 교수는, 오히려 역으로 본다면 평준화가 중간 또는 하위 그룹 학생들의 성적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음을 강조한다.
평준화는 해당 지역사회의 미래와도 밀착된 문제
이제, 자녀의 성적은 물론 각 학교의 분위기나 교사 수준 등에 대해 학부모들이 가져왔던 근거 없는 우려는 평준화를 계기로 점차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소위 ‘명문고’에만 집중됐던 지역사회의 인식도 보다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원 성적에 따른 서열화로 인해 대표적인 비선호 학교로 분류됐던 원주 육민관고. 그간 학교시설 개선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대학과 연계해 멘토링을 하는 등 맞춤형 진학지도에 힘을 쏟아왔지만, 비평준화 제도 하에선 사람들의 편견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다.
“학부모의 걱정을 잘 알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 교사들 역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아쉬웠는데, 평준화를 계기로 참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교사의 말처럼 이 학교에서는 실제로 교원동아리나 교사 연수가 이전보다 활발해졌고, 입학 초부터 진로중심의 계열 편성으로 학생들의 적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각 학교에서 고루 배출된 인재들이 사회의 중심에 진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은 불가능했죠. 평준화로 인해 이제는 달라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장병식 교장은 나아가 고교평준화 제도가 지역사회 발전과 중요한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교평준화 후 지금은...>
평준화 첫 해, 성적순이 아닌 추첨 배정을 통해 만난 1학년 아이들은 제게 봉의고 배정받고 며칠을 울었다는 말들을 전했습니다. 저는 “너희들이야말로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니, 이제 각자 노력하는 만큼 모든 것을 또한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며 격려해주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봉의고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을 맨 앞에서 바꾸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또 너희들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일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이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아이들은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매사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니 변화의 바람은 곧 불어왔습니다. 춘천시 관내에서는 “봉의고가 달라졌대!” 라는 반응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단 한 건의 학교 폭력 사안도 일어나지 않음은 물론, 선생님께 대들거나 함부로 하는 학생 하나 없이 학생, 선생님 모두가 즐겁게 웃으며 학교생활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또 다시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봉의고에 다니는 거 어때?” 아이들은 대답합니다. “좋아요!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들도 좋고!” 물론 평준화가 정착되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들을 중학교 성적으로만 낙인을 찍은 채,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보고 싶은 의지마저 꺾어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똑같은 출발선에 선 아이들, 그들이 자신의 힘찬 미래를 향해 비상할 수 있도록 저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권현선(춘천 봉의고 교사)
제 아들은 상위권 성적이었기에 처음엔 평준화에 대한 우려가 없잖아 있었습니다. 아들은 육민관고에 배정 받게 되자 많이 울었습니다. 창피해서 학교를 안가겠다는 말도 하더군요. 저는 일단 한번 해보고, 정 안되겠으면 검정고시나 유학도 고려해보자고 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현재의 생활에 너무 만족하며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스스로도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만족도가 90%이상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엔 저 역시 공부와는 먼 학교 분위기면 어쩌지, 2,3학년 선배들이 괴롭히면 어쩌지 고민했는데, 제 생각이 빗나갔던 거지요. 육민관고 아이들, 정말 순수하고 착하고 인성적으로도 됨됨이가 좋아요. 저는 이것 또한 평준화의 긍정적인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비평준화고로 갔을 경우, 아이가 한 친구를 밟고 올라서야 내가 올라갈 수 있음에 스트레스가 심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선의의 경쟁 속에, 대인관계에서 특히 너무 여유 있고 좋은 것 같습니다. 서열로 줄 세우는 것보다는, 같이 배우며 더불어 가는 것이 아이 인성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춘선(원주 육민관고 1학년 학부모)
공부를 너무 잘하는 학생들만 몰려있으면 입시에서 내신부분이 결국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저는 처음부터 평준화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분위기도 좋고 여기서도 결국은 공부하는 애들은 공부하는 애들끼리 어울려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학교의 노후적인 시설부분에 있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성적 구분 없이 평등하게 분포하고 있다면, 학교의 시설적인 부분도 어느 한 학교에 치우치지 않게 평준화되어, 원주시의 모든 학생들이 균등하게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유경(원주 상지여고 1학년)
저는 성적이란 잣대로 아이들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부정적이란 생각을 해왔습니다. 청소년기에는 비슷한 친구들이 아닌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 함께 생활하는 것이 훨씬 더 삶에 대한 경험치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 육민관고 배정을 받았을 때는 거리도 멀고 학교 실적도 별로 없어서 부정적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우리를 위해 많은 프로그램도 만들고 각별하게 신경써주시는 부분이 느껴져 친구들은 참 고맙다고 합니다.
다양한 입시설명회와 특강도 많고 1학년 담임선생님들이 진학진로 프로그램도 직접 진행해주셔서 입시대비 면에서도 만족합니다. 또한 별도 심화반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하는 분위기나 여건 또한 기존의 비평준화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박수현(원주 육민관고 1학년)
중학교 때 저는 춘천고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입장에서 ‘평준화’라는 논의에 순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평준화가 시행되었고, 저는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성수고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저는 지금의 학교생활에 너무 만족합니다. 고교시절,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친구관계야말로 중요합니다. 교실에서 분위기 띄어주는 활발한 친구들 덕에 웃는 일도 많고, 2,3학년 선배들도 친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최종목표는 평준화건 비평준화건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현재 우리학교의 환경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휴식공간이 부족하고 운동장이 좀 협소합니다. 이런 환경에 대한 평준화도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천준호(춘천 성수고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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