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언론인 강원대 초빙교수
이른바 '독서당' 건축계획을 두고 서울 금호동 아파트 주민과 성동구청이 지난달 말부터 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강변 '달맞이봉'에 인접한 D아파트의 주민들은 2100명 이상의 독서당 건축 반대서명을 받아 서울시와 구청에 최근 전달했다. 주민들은 자연공원인 달맞이봉에 건물을 지으면 녹지훼손, 우범지역화, 그리고 예산낭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구청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잠시 있었던 독서당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을 담아 건물을 짓겠다고 고집한다. 구청의 입장은 독서당 건축을 기정사실화하고 서울시의 재심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청이 세금 38억원을 투입해 건물은 지하1층, 지상1층 약 175평(580㎡) 규모다.
구청이 독서당 건립계획을 들고 나온 것은 2011년 무렵이다. 구청은 '독서당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건축을 추진하다가 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없자 '복원'이라는 이름을 떼고 독서당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달맞이봉에다 현대적 의미의 독서당을 짓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강남 압구정동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달맞이봉은 좁고 경사도가 높아 건평 175평 짜리 건물을 지으려면 녹지훼손은 눈에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접근성이 좋지 않아 건물이 지어질 경우 활용도와 야간 관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성동구청의 독서당 건축 추진에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다시금 확인한다. 우리는 빈터를 두고 보지 못한다. 빈터만 생기면 건물이나 구조물을 가능한 크게 지으려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예로 들어보자. 정부는 1997년 말 일부 주한 미군이 용산에서 빠져나가자 그 자리에 웅장한 국립박물관을 지었다.
빈터만 생기면 큰 건물 지으려 해
결과적으로 국립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소장품이 빈약할 뿐 아니라 접근성이 부족해 지금껏 사람들의 발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또 건물 규모가 엄청나다보니 우리 유물에서 왜소함마저 느낀다. 잉카전, 이슬람전과 같은 외국 유물 전시회가 그나마 박물관의 체면을 살리고 있다면 지나칠까.
서울시립박물관도 마찬가지다. 강남으로 이전한 한 고등학교 운동장 터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빈 운동장은 시민들에게 말 그대로 도심의 해방공간이었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달렸다. 하지만 시민들은 도심에서 박물관 공사가 시작되면서 그런 공간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2000년대 중반 용산 미군기지 반환이 확정된 후 각종 정부기관과 단체가 이적지에다 경쟁적으로 기념관, 박물관 등을 짓겠다고 나섰으며, 지금도 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은 그래도 낫다. 주민들의 감시가 약한 지방은 유적지 복원, 생가 복원이란 이름으로 앞 다퉈 건축물을 짓고 있다. 또 군부대와 학교가 이전한 빈터에는 지방의회 등 공공건물을 화려하게 건설하고 있다.
텅 빈 공간-광장을 두고 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모습을 '광장 강박증'이라고 부르고 싶다. 광장 강박증은 1960년대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생긴 병이다. 개발만 하면 돈을 벌고 성공한다는 신화가 탄생했다.
과거의 흔적은 무시하기 당하기 일쑤였으며 광장은 채워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토목건축족이란 말의 약어인 '토건족'이란 단어도 뿌리를 내렸다.
구청장 등에게 '구상권' 행사할 수 있게
4대강 사업이나 아라뱃길 사업은 토건족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광장 강박증은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이후 정치인들의 한건주의와 공무원들의 자리의식이 결합되어 더욱 심해졌다.
서울시 고위 공무원을 지낸 친구에게 처방책을 물었다. 친구는 "선거로 심판하라"고 말했다. 옳은 충고다. 미국은 선거 때마다 개별 지역 사업에 대해 주민의 의견을 물어 투표 항목이 수십개가 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청이 내년 선거에서 주민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 현시점에서 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그래도 구청이 강행한다면 사업 결과에 따라 이를 추진한 구청장과 담당 공무원, 그리고 전문가란 이름으로 자문에 응한 이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구상권을 행사할 길만 있다면 광장 강박증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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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독서당' 건축계획을 두고 서울 금호동 아파트 주민과 성동구청이 지난달 말부터 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강변 '달맞이봉'에 인접한 D아파트의 주민들은 2100명 이상의 독서당 건축 반대서명을 받아 서울시와 구청에 최근 전달했다. 주민들은 자연공원인 달맞이봉에 건물을 지으면 녹지훼손, 우범지역화, 그리고 예산낭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구청은 조선시대 이 지역에 잠시 있었던 독서당의 역사적 의미와 정신을 담아 건물을 짓겠다고 고집한다. 구청의 입장은 독서당 건축을 기정사실화하고 서울시의 재심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사에 들어가는 것이다. 구청이 세금 38억원을 투입해 건물은 지하1층, 지상1층 약 175평(580㎡) 규모다.
구청이 독서당 건립계획을 들고 나온 것은 2011년 무렵이다. 구청은 '독서당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건축을 추진하다가 관련 유물이나 유적이 없자 '복원'이라는 이름을 떼고 독서당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달맞이봉에다 현대적 의미의 독서당을 짓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강남 압구정동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달맞이봉은 좁고 경사도가 높아 건평 175평 짜리 건물을 지으려면 녹지훼손은 눈에 불을 보듯 뻔하다. 또 접근성이 좋지 않아 건물이 지어질 경우 활용도와 야간 관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
성동구청의 독서당 건축 추진에서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다시금 확인한다. 우리는 빈터를 두고 보지 못한다. 빈터만 생기면 건물이나 구조물을 가능한 크게 지으려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예로 들어보자. 정부는 1997년 말 일부 주한 미군이 용산에서 빠져나가자 그 자리에 웅장한 국립박물관을 지었다.
빈터만 생기면 큰 건물 지으려 해
결과적으로 국립박물관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소장품이 빈약할 뿐 아니라 접근성이 부족해 지금껏 사람들의 발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또 건물 규모가 엄청나다보니 우리 유물에서 왜소함마저 느낀다. 잉카전, 이슬람전과 같은 외국 유물 전시회가 그나마 박물관의 체면을 살리고 있다면 지나칠까.
서울시립박물관도 마찬가지다. 강남으로 이전한 한 고등학교 운동장 터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빈 운동장은 시민들에게 말 그대로 도심의 해방공간이었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달렸다. 하지만 시민들은 도심에서 박물관 공사가 시작되면서 그런 공간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2000년대 중반 용산 미군기지 반환이 확정된 후 각종 정부기관과 단체가 이적지에다 경쟁적으로 기념관, 박물관 등을 짓겠다고 나섰으며, 지금도 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은 그래도 낫다. 주민들의 감시가 약한 지방은 유적지 복원, 생가 복원이란 이름으로 앞 다퉈 건축물을 짓고 있다. 또 군부대와 학교가 이전한 빈터에는 지방의회 등 공공건물을 화려하게 건설하고 있다.
텅 빈 공간-광장을 두고 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이러한 모습을 '광장 강박증'이라고 부르고 싶다. 광장 강박증은 1960년대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생긴 병이다. 개발만 하면 돈을 벌고 성공한다는 신화가 탄생했다.
과거의 흔적은 무시하기 당하기 일쑤였으며 광장은 채워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토목건축족이란 말의 약어인 '토건족'이란 단어도 뿌리를 내렸다.
구청장 등에게 '구상권' 행사할 수 있게
4대강 사업이나 아라뱃길 사업은 토건족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작품이다. 광장 강박증은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이후 정치인들의 한건주의와 공무원들의 자리의식이 결합되어 더욱 심해졌다.
서울시 고위 공무원을 지낸 친구에게 처방책을 물었다. 친구는 "선거로 심판하라"고 말했다. 옳은 충고다. 미국은 선거 때마다 개별 지역 사업에 대해 주민의 의견을 물어 투표 항목이 수십개가 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구청이 내년 선거에서 주민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 현시점에서 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그래도 구청이 강행한다면 사업 결과에 따라 이를 추진한 구청장과 담당 공무원, 그리고 전문가란 이름으로 자문에 응한 이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구상권을 행사할 길만 있다면 광장 강박증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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