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어디까지 가봤니? - 조선 후기 실학의 산실 ‘청문당’
주인 떠난 빈 집에 모과만 주렁주렁
조선후기 남인 교류의 장 ‘실학의 산실’
청문당을 찾아가는 길은 늘 조금 서글프다. 수인산업도로 인천방향으로 가다 42번국도 위를 가로지르는 영동고속도가 나타나면 국도 오른편으로 가마골로 올라가는 길도 나타난다. 수인산업도로와 영동고속도로 거기에 서해안 고속도로로 둘러쌓인 이 동네에 옛 흔적을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는 오래된 은행나무와 청문당 뿐이다.
차라리 비어있으면 좋으련만 편리한 교통 덕분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공장들이 청문당 찾는 길을 더 스산하게 만든다. 공장 소음으로 고즈넉함은 사라지고 머리 위를 달리는 자동차로 위태롭기까지 한 청문당.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기에 청문당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조선시대를 관통한 진주 유씨 가문의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조선 후기 실학의 산실이었던 청문당. 소음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청문당 마루의 따스한 가을볕을 만나러 그곳으로 향했다.
진주유씨 세거지 가마골의 중심 ‘청문당’
도로가 마을을 갈라놓기 전 가마골은 수리산 자락이 포근히 감싼 평화로운 동네였다. 마을 앞 산이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이라 가마골이라 불리던 마을이다. 청문당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진주유씨 가문의 종가집이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 진주유씨가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선조때 부터다. 선조의 딸과 결혼 한 유적이 임금이 내리는 사패지로 받은 땅이 안산의 가마골이었다. 청문당을 지은 사람은 삼척부사를 지낸 유시회(1562-1635)선생이었다. 5000여평의 땅에 안채와 사랑채 정자와 만권의 책을 보관한 만권루와 괴석원이라는 정원까지 갖춘 멋드러진 양반집이었다.
하지만 긴 세월을 지내며 모습은 많이 변해 현재는 사랑채와 안채 아래채, 사당만 남아있다. 좁은 길가에 늘어선 공장을 비껴 올라가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가옥인 청문당이 나타난다. 주말에는 닫혀있지만 평일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개방하기 때문에 관람이 가능하다.
나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으서자 마당 한 가운데 우물이 보이고 안채와 사랑채 아래채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자리 잡았다. 중부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ㅁ자형 한옥구조다.
서적 만권으로 가득 채운 만권루 ‘실학의 산실’
마침 청문당을 관리하시는 분을 만나 안채 문을 열고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본다. 안채의 대부분은 넓은 대청마루. 대청마루 쪽문을 열면 단을 쌓아 올린 뒤뜰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벽에 그려진다. 청문당 뒤뜰엔 이 집과 역사를 같이한 모과나무가 있다. 수령 250년. 시원하게 뻗어 올라 간 모과나무에 모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사람의 온기가 가득했을 시절, 이 집 안주인은 해마다 가을이면 모과를 따다 차를 만들어 오는 손님들에게 대접했겠지. 그러나 세월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반길 사람도 없는데 올해도 모과만 주렁주렁 달렸다.
모과나무 옆에는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이 안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양반집에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며 가장 중요한 건물이다.
청문당이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받아 관리를 받는 이유는 조선 후기 이곳이 바로 실학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 기호남인 3대 가문으로 손꼽힌 진주 유씨가문. 청문당에는 만권의 책을 소장한 만권루가 있었다. 당시 조선의 만권당은 4곳 정도. 그 만큼 많은 서적을 보유하고 있어 당시 문인들과 선비들의 만남이 활발히 이뤄지던 장소였다. 청문당에 대한 기록은 안정복과 채제공, 강세황의 글에 자주 등장한다.
강세황선생의 제자 김홍도 그림 배우던 현장
청문당에 숨겨진 또 한명의 주인공은 단원 김홍도다. 이 곳은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처갓집이었다. 강세황의 글에 따르면 30세 이후 안산 처가에서 세거했으며 이 무렵 젖니가는 김홍도가 자신에게 그림을 배웠다는 기록 있다. 이 때문에 청문당은 조선 후기 대화가 김홍도가 그림을 배우던 곳이 된다. 강세황이 김홍도를 만났을 당시 어디에 살고 있었느냐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원의 고향이라 굳게 믿는 청문당 지킴이 선생은 사랑채의 한 방을 가리키며 ‘이 방에서 김홍도가 그림을 배웠다’고 자신있게 소개한다.
청문당 마루에 앉아 따뜻한 가을 볕을 쪼이며 300여년 전 이 집 마당을 오갔을 사람들을 상상해 보는 것도 큰 재미다. 꼬마 김홍도가 스승에게 그림을 배우고 시대를 한탄하는 남인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그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부엌일을 했을 여인들과 신 모과를 깨물어 먹었을 개구쟁이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오늘도 청문당의 역사는 계속된다. 그 역사 위에 우리 가족의 추억도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주말에 청문당 관람을 원하면 안산시청 문화예술과로 미리 예약하면 된다. (031-481-3438)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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