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또 한 번의 수능이 치러졌습니다. 전 국민이 수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공부의 끝에 대학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그렇게 안달복달 공부시키는 이유는 바로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경쟁력을 얻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공부의 목적이 대입경쟁력이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수능 식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대입에서 가장 큰 변별력을 가진 수학의 경우, 최근의 추세는 ‘사고력유형’입니다. 수능에서 어려운 문제는 계산이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사고력을 요하는 문제라는 겁이다.
수능수학의 변별력은 사고력유형 문제
매번 수능에서 드러나는 점도, 수험생들이 수학에서 고생하는 이유는 단순 반복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까지 포함하는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다수 출제 됐기 때문입니다. 암기식으로 하는 수학 공부로는 현행 사고력이라는 추세에 적응하기가 힘들어 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수학공부 행태는 아직도 이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학교는 물론이고 많은 학원에서 조차 수학을 암기과목처럼 가르칩니다. 소위 ‘선행’이라 불리우는 진도위주 학습과 패턴 연습이라는 미명하에 무한 반복학습을 시킵니다.
진도와 반복적인 문제풀이는 ‘외형’과 ‘양’을 의미합니다. 이런 공부의 끝은 분명합니다. 배운 건 많은데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학생의 양산, 단순유형은 풀지만 조금이라도 응용이 되면 모르겠다고 손 놓아 버리는 학생의 양산이 바로 그것입니다.
특히나 수학 공부는 ‘내실’과 ‘질’이 중요합니다. 수학을 진짜로 이해했다면 표현이 가능해야 합니다. 스스로 설명하거나 서술이 가능해야 합니다. 배웠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겼느냐가 중요합니다. 진도는 학습능력의 부산물입니다. 남들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있는 학생이라면 남들이 서너 시간 걸릴 분량을 한 두 시간에 수행 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진도는 자연스럽게 빨라집니다. 선행은 학습능력의 결과이지 그 역은 아닙니다.
수능에 임했던 전국의 고등학생에게 물어보십시오. 배운 게 부족해서, 다시 말해 진도가 부족해서 수학문제를 못 푸는 것이냐고요. 실제로는 진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려워서 못 푸는 것입니다. 실력이 아직 그런 정도로 깊이 있게 형성되지 못 해서 못 푸는 것입니다.
진도위주의 수업이라는 소모적 수렁
그렇다면 답은 뻔합니다. 수학공부를 막 시작하는 초등학생들의 경우 진도위주 학습이 아니라 성취도 위주 학습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이렇듯 간단하고 자명한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원 입장에서 학생이 질적인 수준, 실력 향상을 증명하기는 대단히 힘듭니다. 하지만 양으로 보여 지는 건 아주 간단하고 쉽습니다. 진도를 빨리 나가주면 됩니다. 초등학생에게 중학교 문제를 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치 앞서나가는 듯한 착시현상도 동시에 불러일으킵니다. 더 큰 문제는 부모입니다. 아이들이 정상적인 발전 경로를 통해 깊이 있는 학습 습관을 형성하는 것보다는 빨리 앞서나가는 모양새를 보고 싶어 합니다. 기다려 주지를 않습니다. 자녀를 위한다는 선한 의도가 남들보다 앞서나가고 싶은 욕심과 결합하여 외형위주 학습이라는 진창으로 자녀를 몰아넣고 있습니다. 성취도가 전제되지 않는 소모적인 선행은 도덕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실력향상이라는 본연의 목적에서도 소모적인 행위일 따름입니다.
이러한 외형위주 학습습관과 반복적인 문제풀이를 통해 형성된 실력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저학년 정도에서는 통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고등수학이 등장하는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한계를 드러냅니다. 이때부터 대부분의 아이들의 입에서 수학이 어렵고 못해 먹겠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때 사용하는 해결책이 또 다시 선행입니다.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진도라도 충분히 나가자는 의도랍니다. 그래야 시간 여유가 생겨서 한 번 더 훑어 볼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성취도 중심의 수학으로 전환해야
하지만 분명히 말하지만 수학은 훑어보아서는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한 문제라도 꼼꼼히 살펴보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이 틀린 문제를 왜 틀렸는지 원인을 찾아내어 해결하는 끈기와 근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공부한 게 실력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수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계산이 복잡해서가 아니라 사고가 막혀서입니다. 그리고 넘겨짚고 때려 맞추는 습성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수학은 두고두고 아이들을 괴롭힐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본 게임인 수능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게 요즘 그렇게 수학 공부를 시키고도 여전히 수학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의 핵심입니다.
최영석 원장
송파청산수학원
전 타임교육 사고력수학 사업본부장
‘99%학부보가 헛고생하고 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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