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토의 천국’, ‘제8요일’을 연출했던 거장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이 14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영화 ‘미스터 노바디’가 지성과 감성으로 충만한 가을날을 선사했다. 과거의 선택, 현재의 행복, 미래에 펼쳐질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아름답고도 슬픈 드라마였다.
세 번의 사랑, 아홉 개의 인생
2092년 죽음을 앞둔 118세의 니모(자레드 레토)는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한 번의 선택으로 달라진 자신의 아홉 가지 인생을 들려준다. 아홉 살 때 이혼하게 된 부모 중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기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이다.
어머니를 선택한 열다섯 살의 니모는 새아버지의 딸 안나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어른들의 반대로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아버지를 선택한 열다섯 살의 니모는 앨리스와 가슴 아픈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을 저버린 앨리스 대신 즉흥적으로 진을 만나기도 한다.
어른이 된 서른네 살의 니모는 헤어졌던 안나를 찾아 헤매는 수영장 관리인이 되기도 하고, 앨리스와 결혼한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되기도 하며, 진과 결혼한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기도 한다. 또 각각의 삶 속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마친 노인 니모는 무엇이 진짜 인생이었는지, 무엇이 더 행복한 인생이었는지 물음을 던진다. 선택의 연속인 인생, 세포재생술의 발달로 인간이 더 이상 죽지 않는 사회에서 니모는 마지막으로 자연사하는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다.
상상력 돋보이는 스토리와 천재적인 연출력
순간적인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에 몰입하지 않으면 복잡한 스토리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중요한 선택의 시점으로 반복적으로 돌아가 달라지는 스토리를 전개해 약간의 이해를 돕는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독특한 스토리로 관객들은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비둘기 상자 실험, 나비효과, 엔트로피, 상대성이론 등 다양한 과학용어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극 중 다큐멘터리 진행자 니모가 설명해주는 물리학 이론들은 복잡하게 얽힌 니모의 인생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과학적인 현상이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다소 무거운 소재의 스토리와 과학용어로 영화가 딱딱해지기 쉬운데, 천재적인 연출력으로 영화의 감성을 표현했다. 계속되는 시점 이동으로 저절로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고, 어린 니모의 재치 있는 행동과 니모 부모의 코믹한 연기에 웃음이 터지고, 니모와 안나의 섬세한 감성연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성공한 사업가에서부터 부랑자까지 다양한 인생을 절묘하게 표현한 배우 자레드 레토의 팔색조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영상과 어울리는 감성적인 O.S.T.도 감동을 더해준다. Chordettes의 ‘Mr. Sandman’과 ‘Lollipop'', Buddy Holly의 ‘Everyday'' 등과 같은 귀에 익은 경쾌한 멜로디가 친숙하게 다가온다.
어떤 선택이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아기들은 원래 미래를 다 알 수 있는데, 태어날 때가 되면 망각의 천사가 와서 미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천사가 니모의 미래에 대한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니모는 살아가면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영화 속에서 꼬마 니모는 ‘선택이 힘든 것은 다시 되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선택도 못하고 그의 이름처럼 어디에도 없는 ‘노바디’의 인생을 살진 않았을까.
영화는 다양한 선택적 삶을 보여주지만 과연 무엇이 행복한 삶이었는지는 물음표로 남긴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