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교사 책상 서랍 안에는 마술봉, 목소리 변조기, 비눗방울총 같은 온갖 장난감이 그득하다. 과학실 책상마다 12색 사인펜, 색종이, 가위 등 초등학생이 쓸법한 문구류 바구니가 놓여있다. 생물시간에 요긴하게 쓰이는 수업 도구들이다.
가르치지 말고 알아내게 하라
김 교사는 수업 중간 중간 음성변조기로 효과음을 주고 아이들의 집중력이 느슨해진다 싶으면 비눗방울을 날리며 분위기를 바꾼다. IT 얼리어답터이기도 한 그는 빔 프로젝트에 스마트폰 최신 앱을 연결해 멀티미디어 수업을 능수능란하게 진행한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재미없는 수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수업은 소통입니다. 지식 전달 방법에 늘 변화를 주고 아이들의 정서적인 면을 터치해야 하죠.” 김 교사는 단언한다.
교사가 무조건 많은 지식을 퍼부어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과감히 내려놓고 아이들 스스로 지식 사냥꾼이 될 수 있도록 ‘배후 조종자’를 자처하고 나선 건 강의 경력 27년 ‘세월’이 선물한 깨달음 덕분이다.
“외곽의 열악한 학교에 근무할 무렵 반 1등이 전국모의고사 3등급 수준일 만큼 아이들 학력이 좋지 않았어요. 아무리 요점 정리 프린트물 나눠주고 문제풀기를 반복해도 성적이 나아지지 않더군요. 자괴감이 몰려왔죠. 고민 끝에 스토리텔링식 수업으로 확 바꾸었어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수능문제화 하는 대신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써먹을 수 있는 교양으로 접근했죠.”
생물은 인체를 다루기 때문에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이런 ‘일상 속 과학’을 교과서 내용과 연결시켜 연속극처럼 스토리로 풀어주었더니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했고 몇몇은 1등급까지 성적이 올랐다.
“그걸 보면서 ‘가르치려 하지 말고 아이들이 알아내게 만들어야 하는 구나’ 확신을 얻었죠.” 정보가 차고 넘치는 이 시대에 그가 추구하는 교사상은 ‘유능한 MC’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과서 속 모든 내용을 교사의 입으로 줄줄 말하지 않는 ‘불친절한 교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대신 학생들이 책을 탐독한 후 이해한 내용을 정리하고 보충자료를 덧붙여 ‘아이들 입으로’ 직접 발표하는 프로젝트 수업방식을 고수한다. 그래서 그의 수업은 늘 시끌벅적하다.
늘 톡톡 튀며 에너지가 샘솟는 그를 학생과 동료교사들은 ‘못 말리는 열정인’으로 부른다. 탄탄한 전문성을 밑천으로 통합논술 지도 강사, 영재교육원 강사, 교육청 교사 연수 강사 등 멀티플레이어로 종횡부진 활약하는 가하면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수준급의 탁구 실력도 선보인다. “태생적으로 지루한 걸 못 견디죠. 뭐든 열심히 배우는 스타일이고요.”
국문학 박사학위 가진 생물선생님
호기심의 스펙트럼이 폭넓은 그는 국문학 박사학위까지 가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만난 긴 머리가 매력적인 생물선생님에게 반해 내 인생의 롤모델로 삼았죠. 동경했던 선생님 덕분에 교직에 입문한 뒤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진짜 꿈은 소설가였지요.”
더 늦기 전에 제대로 공부하자 마음먹고 대학원에 진학한 게 10여년 전. 늦깎이 문학도는 공부 재미에 빠져 내친 김에 박사학위까지 땄다. 물론 소설가가 되겠다는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문이과를 두루 아우르는 ‘통섭 교사’ 된 후 과학 글쓰기, 통합논술, STEAM교육 연구까지 그의 활동 반경은 더욱 넓어졌다. ‘아이들을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방법론’을 찾아 늘 아이디어를 짜내 실천에 옮겼던 그는 올해 수석교사가 됐다.
“내가 27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차곡차곡 쌓은 교수법 노하우를 신참내기 교사들에게 많이 알려주려고 해요. 막상 신입교사들이 현장에 투입되면 당황할 일들을 많이 겪기 때문에 선배들의 조언이 절실하거든요.”
입시를 넘어 인생을 보게 하라
시간 허투루 쓰는 걸 질색하고 뭐든 열심히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는 열혈교사인 동시에 세 아이의 엄마다. “첫 아이가 생후 9개월 무렵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어요. ‘내 아이가 소중한 존재인 만큼 나의 제자 한명 한명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이겠구나’라는 무언의 깨달음이 초보 교사시절부터 묵직하게 와 닿았죠. 내겐 성적이 행복의 보증 수표는 아니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건 내 아들, 딸에게도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잣대죠.”
사춘기앓이를 심하게 겪었던 막내아들이 중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도 쿨하게 승낙할 만큼 자유롭게 세 아이를 키웠다. 다만 ‘엄마는 너를 믿는다’는 확신을 늘 가슴 깊숙이 심어주었고 지금 대학생이 된 막내아들은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중이다.
“성적이 안정된 일자리는 보장해 줄지 모르지만 행복까지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늘 강조합니다. 입시는 인생의 끝이 아니니까 설사 실패했더라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강인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습니다. 실패에서 배우는 인생의 진리가 얼마나 많아요. 그걸 알려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죠.” 양볼의 보조개가 매력적인 열혈 선생님은 눈을 반짝거리며 마음에 품었던 버킷 리스트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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