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어디까지 가봤니?

정조가 머물렀던 ‘안산행궁’ 안산 관아터 객사

등산객들에겐 쉼터, 마을 사람들에겐 사랑방

지역내일 2013-08-29

조선 후기 성군으로 알려진 정조가 안산에서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왕이 행차할 때 머물던 별궁을 행궁이라 하는데 안산에도 정조가 머문 ‘안산행궁’이 있다. 안산동 수암봉 등산로 길목에 복원 된 ‘안산객사’가 바로 그곳이다.
‘더위가 한풀 꺾이며 사납던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난 늦여름 어느 날. 객사 처마에서 보는 가을 하늘 빛깔이 보고 싶어 안산동을 찾았다.

객사1

옛 안산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 안산동
수인산업도로를 따라 인천방향으로 가다보면 안산시 마지막 동네 안산동이 나타난다. 도시개발로 안산시 시청이 고잔동에 자리 잡으며 안산동은 시의 외곽으로 밀려났지만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안산동은 안산시의 중심이었다.
수인산업도로 변 수암파출소를 끼고 안산동으로 진입하면 나지막한 주택가 사이에 오래된 고목들이 동네 역사를 말해준다. 수암봉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예뜰어린이집 앞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새로 복원한 안산객사가 나타난다.
객사란 조선시대 관아의 기본 구성 건물 중 하나다.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궁궐을 향해 예를 표하는 장소였으며 어명을 전하는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곳이 바로 객사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정조 21년(1797년) 8월,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으로 가던 정조가 하룻밤을 이곳 안산객사에서 묵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정조는 하룻밤을 이곳에 머물 고 난 후 안산의 풍요로움을 칭송하는 어제시 한편을 써서 백성들을 위로했다.
바닷가에서 소금을 얻기 위해 고된 일상을 살아가던 옛 안산사람들에게 임금님의 방문자체만으로도 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임금의 어가가 도착한 날에는 모두 일손을 놓고 옷장 깊숙이 보관했던 가장 좋은 옷을 꺼내 입고 이곳 객사 주변으로 모여들었겠지. 안산동에서는 해마다 이 날을 기념해 어가행렬을 재현하고 있다. 그 날, 이 길을 걸었을 안산사람들의 들뜬 마음을 떠올리며 객사로 향했다.

관아지 발굴 한창 미완성인 복원
안산객사는 가운데 왕의 전패를 모시는 정청과 좌우익사로 구분되어 있다. 정청의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좌우익사보다 한 단계 높게 조성됐고 좌우익사에는 온돌방과 마루가 배치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인 좌우익사는 2칸만 온돌방으로 만들고 모두 마루다. 그 시대 공공건물에 사용했던 단청이 없어서인지 객사는 위엄이 없다. 넓은 마루는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등산객들에게는 무더위 쉼터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객사 뒤편은 안산관아지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경기도와 안산시는 1차 발굴에서 객사터를 확인 한 후 객사를 복원했고 현재 동헌 등 관아지내 부속건물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2차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2차 발굴로 안산 관아의 옛 모습을 복원해 낼 수 있을지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 마침 마실을 나온 한 어르신은 “주말이면 등산객들이 이 마루에서 앉아 쉬어 가는데 다들 이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워 한 후“지금은 객사만 덩그러니 있어 이 건물의 의미를 잘 모르지만 발굴 작업이 잘 끝나 사또가 호령하던 동헌도 복원하고 관아의 모습을 되살리면 좋은 역사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며 기대했다.

객사2

600년 은행나무와 비석에 이야기 숨어
마루에서 잠시 땀을 식힌 후 객사 뒤편으로 향하자 우람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리포터를 반긴다. 이 은행나무는 조선전기 무신이었던 연성군 김정경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기록에 따르면 안산읍성 내 김정경의 사저가 있었으며 그가 직접 은행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는 것. 현재 남아있는 이 은행나무는 6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열매를 맺고 노란 가을을 기다리는 중이다.
은행나무 옆 안산시가 만든 안산읍성 둘레길 표지판이 눈에 띈다. 둘레길을 걸어볼 요량으로 표지판을 따라 걸어봤지만 얼마 못가 포기하고 말았다. 안산읍성을 따라 만든 둘레길은 걷는 사람이 없어 풀 속에 묻혀 버린 것.
둘레길을 못 걸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안산동 비석거리를 찾아 발길을 돌렸다. 관아지가 있던 안산동에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수령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들이 많았다. 요즘으로 말하면 ‘감사패’의 일종이다. 수령이 쌓은 업적을 새긴 공덕비. 처음엔 그야말로 공덕을 쌓은 관리를 위해 진심으로 만들었겠지만 차츰 관례화가 되어 너도나도 공덕비를 만들었다. 비석이 많아 거리 이름이도 ‘비석거리’였다. 무리를 이뤘던 비석은 산업화를 거치며 흩어지고 없어져 지금은 대 여섯기만 마을 공터로 옮겨져 역사의 흔적을 지키는 중이다.
가을 단풍이 물들 즈음 가족들과 안산 객사 나들이를 계획해 보는 것이 어떨까? 옛 안산 사람들의 삶의 중심지였을 이 곳에서 아이들과 안산 역사이야기를 나눠보자.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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