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샘] 동북고 강현식 과학교사

수업2.0시대, ‘잘 배우게 하는 것’이 포인트

지역내일 2013-10-15

껑충한 키에 특유의 천진한 미소를 띠며 건네는 명함에는 ‘혜자아빠 강현식’이라고 적혀있다. 연구보고서, 인문학 서적, 교과서, 프린트물로 빽빽한 교무실 그의 책상 한 켠에 빼꼼이 보이는 딸 혜자가 그린 연필화를 보며 ‘딸바보 강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아빠 마인드’로 동북고의 학생들을 삼촌처럼, 친구처럼 보듬고 지낸 지 11년.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동북고 통합논술팀 3인방 교사(권영부, 강방식, 강현식) 중 막내다. 

강현식


환상의 팀워크로 선보인 ‘융합수업’
서울대 물리교육학과에서 보낸 청년시절 내내 그의 꿈은 물리학자였다. 그러다 교생실습에서 맛본 가르치는 ‘묘미’에 이끌려 인생의 궤도를 수정했다. 선생님으로.
원래 전공인 물리학 외에도 심리학, 건축학, 미술, 인문학 등 다방면에서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융합 코드’가 맞는 동료교사들과 새로운 수업 모델을 선보이기 위해 힘을 모았고 통합논술이라는 융합수업을 선보이게 됐다.
“혼자였다면 외롭고 지쳐 나가 떨어졌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공이 다 다른 교사들끼리 모여 각자의 ‘지식 창고’를 개방해 서로 흡수하고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 합니다. 그 과정들이 의미가 크죠.”
인터뷰가 있던 날은 때마침 독서토론 공개수업이 열리는 날이었다. 저녁 6시40분. 강 교사를 포함해 사서, 수학, 경제, 국어 등 7명의 교사가 30명의 학생들과 조지 오엘의 <1984>를 가지고 색다른 수업을 진행했다. ‘수학적 시각으로 빅브라더의 사각지대 찾아내기’, ‘오세아니아와 유토피아적 자본주의’ 등의 테마로 교사들이 번갈아 가면서 수업을 이끌어 나갔다. 생동감 있는 독서토론 모습을 여러 학교에서 온 20여명의 교사들은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수업 공개는 늘 있는 일이에요. 2006년부터 한 교실에 여러 명의 교사가 통합논술 수업을 해왔으니 이 분야의 노하우가 국내에서는 가장 많죠. 우리의 시행착오, 장점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 합니다.” 강교사가 덧붙인다.


잘 가르치기 보다 ‘잘 배우게’ 하고 싶어
‘통(通)’하는 수업에 갈증이 커 나름의 해법을 찾아가는 중인 그는 학생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학습 방식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중이다.
“아이들은 더 이상 누군가를 통해 배우려 하지 않아요. 이젠 스스로 배우려 하죠. 난 사실 ‘잘 가르치는 교사’였어요. 수업과 연계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입담 좋게 풀어내고 풍부한 영상자료 보여주며 재미있게 수업을 끌어가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죠. 하지만 이젠 잘 가르치기 보다는 학생들이 잘 배우게 하는 데 집중합니다. 학생이 변하면 당연히 교수법도 바뀌어야 하니까요. 가령 ‘파동’의 개념을 가르칠 때 예전엔 횡파, 종파 등 내가 구구절절 설명을 다 했다면 이젠 아이들이 직접 파동을 만들어 보도록 합니다. 몸을, 손을 움직이면서 배운 ‘파동’이란 지식은 학생들 머릿속에 훨씬 잘 흡수되더군요.”
이처럼 문제와 정답을 교사 혼자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수업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 중이다. 때문에 학생들이 하나의 주제를 1년 동안 연구해 논문을 완성하는 ‘동북노벨상’ 지도에도 열성적이다.


논문 쓰면서 ‘지적 성장’ 맛보는 학생들
한편의 논문을 완성하기 까지 팀워크, 일정 관리, 역할 분담, 실험 설계, 끈기 같은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이들이 부쩍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는 바쁜 시간 쪼개가며 든든한 논문 가이드가 돼 주고 있다.
“실험을 무척 좋아하는 한 학생이 적정기술을 테마로 집요하게 논문에 매달렸고 공들인 만큼 결과물의 완성도도 높았죠. 카이스트에서도 관심을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이 학생은 중하위권 성적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울산과기대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자기주도학습’의 잠재력을 논문이란 결과물로 입증했기 때문이죠. 이처럼 논문을 쓰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의 잠재력과 발랄한 창의성이 툭툭 나옵니다. 그걸 발견하는 과정이 교사로서 즐겁죠.”
물론 논문을 쓰다 보면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는 팀도 여럿 나오지만 과정 속에서 배우는 깨달음이 크다고 단언한다. “논문은 머릿속 아이디어를 실험하거나 직접 만들어 보면서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겁니다. ‘다음에 뭐하면 되죠?’라며 교사에게 기대면 안 되고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죠. 설사 실패하더라도 이런 경험은 훗날 좋은 자양분이 됩니다.”
최근에는 학생들의 연구를 돕기 위해 담임을 맡은 교실의 책상배치를 몽땅 바꿨다. “ㄷ자형 자리배치가 학습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연구하는 중입니다. 자리 배치 전후의 시험 점수를 비교하고 학생과 교사 대상 설문과 심층 인터뷰를 하며 아이들이 차근차근 연구를 진행중입니다. 이번 교육 실험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개인적으로도 흥미 있게 지켜보는 중입니다.”
영재반 지도하랴 올해부터 바뀐 물리 교과와 통합논술 수업 준비하느라 숨 가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늘 환하게 웃는 강 교사의 얼굴에는 지적 호기심이 배어 나왔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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