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한국문화 강요도 불화 원인 … "남편·시댁, 다문화이해 교육 절실"
지난 5일 오후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긴급전화상담실. 전화벨이 쉼없이 울렸다. 상담원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상담하는 소리만 듣고 있으면 마치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곳에는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12개국 출신 30여명의 상담원들이 일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생활상담에서부터 부부갈등, 이혼문제에 이르기까지 365일 24시간 이주여성의 고충을 상담하고 있다.
대부분의 상담원들은 고국 출신 이주여성들의 어려움을 돕겠다며 봉사로 시작했다가 이제 전문 상담원이 됐다. 이들 또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다른 이주여성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언어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14년전 태국에서 온 말리카씨는 "시댁가족들이 한국말로 속닥거리면 왕따당하는 기분이었다"며 "특히 아이 때문에 병원에 가 상담할 때 너무 답답했다"고 털어놓았다. 캄보디아에서 온지 6년 된 판속티씨는 "처음에는 '배 아파요' '배 고파요' 같은 다섯 개 문장밖에 몰랐다"며 웃었다.
한국에 온지 17년이나 된 베테랑 버나딘씨는 "말이 통하지 않아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긴급전화로 통역을 신청하면 된다"며 "요즘 싸울 때마다 전화로 통역 부탁하는 부부가 있는데 통역하려고 전화기를 주고받다가 부부싸움이 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알코올중독자 남편이 폭력 휘둘러 = 센터는 지난해 부부갈등과 관련된 내용을 1만3044건, 가정폭력을 8417건 상담했다. 가정갈등과 관련된 상담은 생활상담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상담원들은 "가정폭력이 계속 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말리카씨는 "어린 이주여성 아내는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 왔는데, 나이 많은 한국인 남편은 일도 안 나가고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정폭력은 남편이 가난한 데다 알코올중독일 경우 많이 발생한다.
이 밖에도 공장 사장과 결혼해 아이도 낳았지만, 일만 시키고 돈도 안주는 경우, 바람을 피우고 오히려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 등 가정폭력의 종류는 다 헤아리기 어렵다.
베트남에서 온지 10년이 지난 정다울리씨는 "결혼 초인 경우는 한두 달 참으면서 남편과 시댁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라고 권한다"며 "계속 남편과 살고 싶은 경우에는 부부가 같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고 말했다.
또한 무조건 "이혼해라" "계속 살아라"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경우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어날 수 있는 사례들을 알려주면서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학생자녀 차별 대우에 민감한 반응 = 대부분의 상담원들은 한국정부의 다양한 다문화지원사업에 대해서는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버나딘씨는 "한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은 고국에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럼에도 아직 아쉬움이 많다. 특히 다수의 다문화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차별받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문제로 상담을 해 온다는 것. 특히 학생 자녀 차별에 대한 상담이 많다고 했다. 상담원들은 "자녀들은 한국에서 한국인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한국인과 똑같이 대해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학부모인 상담원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인 셈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일방적 강요'도 중요한 상담내용이다. 판속티씨는 "많은 이주여성들이 한국음식만 먹어라, 한국어만 말해라, 한국생활방식만을 따라야 한다는 강요에 불만을 표시한다"며 "20~30년 동안 생활해 온 방식을 못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고 말했다.
센터의 상담원들은 "다문화가정의 화합을 위해, 이주 여성의 안정적인 적응을 위해 남편·시댁도 다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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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긴급전화상담실. 전화벨이 쉼없이 울렸다. 상담원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상담하는 소리만 듣고 있으면 마치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곳에는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 12개국 출신 30여명의 상담원들이 일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생활상담에서부터 부부갈등, 이혼문제에 이르기까지 365일 24시간 이주여성의 고충을 상담하고 있다.
대부분의 상담원들은 고국 출신 이주여성들의 어려움을 돕겠다며 봉사로 시작했다가 이제 전문 상담원이 됐다. 이들 또한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만큼 다른 이주여성들에게 자신들의 경험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언어 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14년전 태국에서 온 말리카씨는 "시댁가족들이 한국말로 속닥거리면 왕따당하는 기분이었다"며 "특히 아이 때문에 병원에 가 상담할 때 너무 답답했다"고 털어놓았다. 캄보디아에서 온지 6년 된 판속티씨는 "처음에는 '배 아파요' '배 고파요' 같은 다섯 개 문장밖에 몰랐다"며 웃었다.
한국에 온지 17년이나 된 베테랑 버나딘씨는 "말이 통하지 않아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땐 긴급전화로 통역을 신청하면 된다"며 "요즘 싸울 때마다 전화로 통역 부탁하는 부부가 있는데 통역하려고 전화기를 주고받다가 부부싸움이 풀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알코올중독자 남편이 폭력 휘둘러 = 센터는 지난해 부부갈등과 관련된 내용을 1만3044건, 가정폭력을 8417건 상담했다. 가정갈등과 관련된 상담은 생활상담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상담원들은 "가정폭력이 계속 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말리카씨는 "어린 이주여성 아내는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 왔는데, 나이 많은 한국인 남편은 일도 안 나가고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가정폭력은 남편이 가난한 데다 알코올중독일 경우 많이 발생한다.
이 밖에도 공장 사장과 결혼해 아이도 낳았지만, 일만 시키고 돈도 안주는 경우, 바람을 피우고 오히려 주먹을 휘두르는 경우 등 가정폭력의 종류는 다 헤아리기 어렵다.
베트남에서 온지 10년이 지난 정다울리씨는 "결혼 초인 경우는 한두 달 참으면서 남편과 시댁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라고 권한다"며 "계속 남편과 살고 싶은 경우에는 부부가 같이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고 말했다.
또한 무조건 "이혼해라" "계속 살아라"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경우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어날 수 있는 사례들을 알려주면서 스스로 선택하게 한다.
◆학생자녀 차별 대우에 민감한 반응 = 대부분의 상담원들은 한국정부의 다양한 다문화지원사업에 대해서는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버나딘씨는 "한국 정부의 다양한 지원은 고국에서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럼에도 아직 아쉬움이 많다. 특히 다수의 다문화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차별받는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런 문제로 상담을 해 온다는 것. 특히 학생 자녀 차별에 대한 상담이 많다고 했다. 상담원들은 "자녀들은 한국에서 한국인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한국인과 똑같이 대해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학부모인 상담원들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인 셈이다.
'한국문화에 대한 일방적 강요'도 중요한 상담내용이다. 판속티씨는 "많은 이주여성들이 한국음식만 먹어라, 한국어만 말해라, 한국생활방식만을 따라야 한다는 강요에 불만을 표시한다"며 "20~30년 동안 생활해 온 방식을 못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고 말했다.
센터의 상담원들은 "다문화가정의 화합을 위해, 이주 여성의 안정적인 적응을 위해 남편·시댁도 다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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