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는 시키는 걸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세상 험한 일 다 하고 사는 아빠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뭐가 어렵겠냐며 한탄을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이게 참 어렵다. 알림장에 분명히 내일 리코더를 가져오라고 쓰여 있는데 챙기질 못한다.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이 말한 대로 몇 마디만 쓰면 되는데, 이걸 못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하는 아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도 이렇게 살기 힘든데, 이 아이는 나보다 더 안 좋은 미래를 가지게 될까 두렵다.
그러나 아빠는 걱정이나 두려움을 표현하기 보다는 큰소리로 화내는데 익숙하다. 아이는 위축되어 하나를 제대로 하면 또 다른 하나가 말썽을 피운다. 결국은 또 혼나게 되고,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반항심이 커져서 청소년기가 되면 아예 안하무인의 태도를 가질 수도 있다.
아빠는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걱정하거나 화내기 전에 그 원인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당연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원인을 잘 찾을 수가 있다. 월급 받고 뭐하냐고 상사한테 비난을 받아봤던 아빠는 알 수 있다. 아빠는 상사에게 백 개도 넘는 핑계를 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핑계를 일일이 상사에게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보다 나은 성과를 내곤 한다.
아이들도 백 개가 넘는 핑계를 댈 수 있다. 핑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빠에게 감히 말할 수가 없을 뿐이다.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아빠의 도움마저 받지 못한다면 문제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아이가 무언가 행동을 잘 하지 못한다면, 그건 아이가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봐야 한다. 하교 이후 스스로 숙제를 하기 위해서는 가방에서 책과 공책을 꺼냈다가 넣는 것을 혼자 할 수 있어야 한다.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가방에서 책을 빼고 넣는 과정은 일종의 조직화, 체계화가 필요하다. 책의 크기 별로 정리할 수도 있고, 다음 날의 시간표에 따라 순서대로 넣을 수도 있고, 필통을 아래에 넣을 수도 있고, 옆에 놓을 수도 있다. 엄마가 꺼내서 펼쳐놓은 숙제는 할지라도 가방 다루는 과정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결국은 스스로 숙제를 하기는 어려워지는 것이다.
숙제 안한다고 혼내기보다, 숙제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이와 같이 꼼꼼히 점검해보자.
지우심리상담센터 성태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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