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통골 소정언니’ 장인자 씨

천연염색 천 위에 한글 서예를

지역내일 2013-10-06 (수정 2013-10-06 오후 3:18:05)




“우~와 멋있다!”
‘수통골 소정언니’ 장인자(57?유성구) 씨 작업실에 들어서니 사방 40cm 정도 크기의 두꺼운 광목에 짙은 푸른색과 황토색이 마블링처럼 어우러져 염색되어 있고 그 위에 먹물로 멋진 붓글씨가 써져 있다.  ‘멋지다’를 연발하니 이것저것 꺼내 보여 주는데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모두 직접 염색 하고 글씨도 직접 썼단다. 방안엔 그동안 염색한 천들과 그 천으로 만든 작품들이 사방을 둘러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소정’은 장인자 씨의 호다. 수통골 소정언니는 주위에서 그를 부르는 별명이다. 계룡산 수통골 기슭에 취미 공간을 마련해 텃밭을 일구어 염색에 필요한 쪽도 키우고 소소한 야채도 키워먹는다. 꽤 너른 비닐하우스 안에 자리한 백여 개의 항아리에서는 취미로 담근 발효액과 술이 익어가고 기둥엔 언니의 서각이 걸려 있다. 

일주일에 3~4일은 이곳에 와서 염색에 몰두한다. 바쁜 와중에도 사람들이 찾아오면, 뚝배기에 바글바글 된장을 지지고 손수 담근 김치와 장아찌들로 맛깔진 한상을 뚝딱 차려낸다. 뭐라도 먹이고 들려서 보내는 천성 탓이다. 





색깔에 푹 빠져 기운을 얻다
20여 년 전 취미로 시작한 붓글씨에서 그림, 서각을 거쳐 천연 염색을 배운지 4년이 넘어 간다. 대전시 서예대전 입상 경력도 수차례다. 몇 년 전 유방암 수술 후 현재  한국유방암총연합회 대전지부장직도 맡고 있다.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 이름이 ‘핑크리본’ 이란다. 갸날픈 저 체구 어디서 저런 열정이 나오는 걸까? 

천연염색은 육체적으로 정말 고달프단다. 천마다 염색 때 나오는 색깔이 달라 많이 담가 보는 수밖에 없단다. 갖가지 염료에 삶고, 담그고, 주무르고 널어 말리고 하는 반복 과정이 너무 힘들지만 색깔이 나오는 걸 지켜보며 잡념 없이 푹 빠져 오히려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염색을 하면서 규방 공예를 접하고 요즘은 가죽공예에도 관심을 갖게 돼  충남대 평생교육원에서 가죽공예를 배우고 있다. 작년 겨울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인도를 다녀오면서 천연 염료를 구해왔다. 밝고 화려한 그곳의 색깔을 한국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색깔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연구 중이다.
매달 한번씩 ‘대전천연염색연구회’ 동아리 모임을 갖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배우며 회원 각자의 장기를 살려 내년쯤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선물하는 즐거움

취미생활로는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 혹시 사업적 비전도 가지고 있는 걸까? “돈을 생각하면 못하죠. 무엇보다 색깔이 나오는 걸 지켜보면서 행복해요. 염색해서 가족들 옷도 지어입고,  내가 만든 작품을 주위에 선물도 하고, ‘핑크리본’ 바자회 때 판매해서 수익금으로 봉사활동도 하죠.  내년쯤 이곳을 체험공간으로 해보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상품화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젊은 친구들이 이런 걸 좋아할지가 궁금해요.” ‘빈티지에 열광하는 젊은이들도 많으니 천연염색 생활소품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언니는 주위의 부탁으로 특별한 선물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제자들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게 된 교수님의 부탁으로 염색 천 위에 한글서예로 신랑, 신부의 이름을 써서 식탁 러너를 만들어 준 적도 있다.
외국인들도 무척 좋아한다. 지인의 딸이 프랑스로 여행을 가면서 그곳에서 신세 질 프랑스인 가족에게 줄 선물용 이불을 부탁해왔다. 면을 감물과 쪽으로 염색하고 그 위에 한글서예를 해서 침구류 세트를 만들어 주었다. 선물을 받은 프랑스인 부부는 여름에 한국으로 여행을 왔고, 수통골 작업장에 들러 작품들도 보고  전통주 빚는 것을 보기도 했단다. 수통골 기슭에서 조용히
우리문화의 세계화가 진행 중이다. 


이영임 리포터 accray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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