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창덕궁 등 5대 궁궐을 시작으로 윤봉길의사기념관, 신민회터, 4?19 시위단 행진루트까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서울시내 사적지를 샅샅이 훑었다. 답사 뒤에는 유적지 정보와 사진,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고 1년 마다 연구보고서를 만들었다. 중1 때부터 5년여 동안 송파구 시민사회단체인 문화살림(구 위례역사문화연구회)의 청소년지킴이로 활동하며 깊이 있게 역사를 공부한 이예정양의 히스토리다.
5년간 답사하며 생생하게 한국사 공부
“멋모르고 활동을 처음 시작한 중1 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놀토 때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답사 다니랴 다녀온 후에 후반 작업하느라 진이 쏙 빠졌죠. 하지만 공들인 만큼 성과물이 차곡차곡 쌓이는 ‘재미’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중1 처음 시작할 때 스무명 남짓의 동기생들은 이제 그를 포함해 단 두 명만 남았다. 올해는 청소년 지도교사까지 맡아 12명의 중고생들을 리드하는 ‘선생님’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교과서나 혹은 책을 통해 활자로만 만나 별 감흥 없이 쓱 지나쳤던 곳을 지도 들고 내 발로 찾아가 역사적인 현장에서 ‘울림’을 느끼며 나만의 사관(史觀)을 정립하는 게 현장답사의 묘미죠.” 이 양이 속내를 털어놓는다. “고종황제가 머무르며 헤이그특사 파견 등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사건이 벌어졌던 중명전에서 특히 감동을 받았어요. 몇 년 전까지 방치됐던 공간이 작은 박물관으로 재탄생해 살아있는 역사교과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친구나 후배들에게 꼭 가보라 ‘강추’하는 곳입니다.”
현장에서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발견
자신의 좋은 경험을 후배들도 체득할 수 있도록 동아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올해의 테마는 민주화운동입니다. 4?19부터 1986년 6월 민주화운동까지 근현대사의 뜨거웠던 역사 현장을 찾아다니는 중입니다. 지난해 연구한 일제강점기와도 연결 선상에 있지요. 사전조사-현장답사-자료정리 3단계를 거치면서 역사의 맥을 잡아나가는 중입니다. 특히 ‘보고 느낀 것은 글로 남겨야 내 것이 된다’는 경험에서 배운 신념을 동아리 회원들에게도 강조하며 보고서 마감일마다 원고 독촉을 하죠(웃음).”
이처럼 ‘발로 뛰며 지식을 체득하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그는 자신의 적성이 ‘책상물림’ 보다는 현장체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3이 코앞인 둔 지금도 계획했던 건 꼭 실천해야 직성이 풀린다.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한 국가 간 청소년교류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다. “중3 때부터 지원했는데 2년 연거푸 고배를 마시다 올해 드디어 뽑혔어요. 열흘간 베트남 청소년들과 문화교류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출국일이 다가오니까 주변에서는 공부에 올인해야 할 시기라며 다들 말리더군요. 뚝심 있게 다녀왔고 참 많은 걸 보고 느꼈어요. 한국 문화의 자부심도 커졌고요. 공부요? 시간 아껴가며 보충하면 되죠(웃음).”
우리의 역사, 문화에 애정이 남다른 그에게 한국사 수능필수화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역사 공부는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며 맥을 잡아야 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한 학기 동안 5백 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을 뚝딱 끝내요. 진도는 빠른데 세세한 내용까지 달달 외워야 맞출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니까 학생들은 진이 쏙 빠져요. 한국사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제대로된 역사교육의 방법론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손쉽게 시험으로 통제하겠다는 안이한 발상은 적절치 않습니다.” 이양은 유럽의 역사교육 방법론까지 예로 들어가며 똑 부러지게 소신을 밝힌다.
토론의 ‘참맛’ 터득한 동아리 활동
이양은 토론 실력도 수준급이다. 고1 때 선배 권유로 학교 토론동아리에 가입하면서 토론의 ‘숨은 끼’를 발견했다. “동아리 선후배끼리 무척 친했어요. 하지만 서로 장난치고 허물없이 지내다가도 토론만 시작되면 반듯한 자세로 앉아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며 경어를 써가며 찬반 토론하는 분위기가 인상적이어서 참여하게 됐어요. 얼떨결에 서울시 토론대회에 나갔다 1차전에서 어의 없이 탈락하고 나니까 자존심 상하고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끈질기게 파고들고 모의 대회에서 숱하게 깨져가며 기술을 터득한 덕분에 교내 독서토론대회에서 1등을 차지할 만큼 실력이 키웠다.
“고교생활이 즐거워요. 공부에만 목메지 않고 관심 분야를 두루 경험하기 때문이죠. 물론 대내외 활동이 성적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나가는 기쁨이 더 큽니다.”
그는 뮤지컬 마니아이기도 하다. 일단 작품에 빠지면 용돈 탈탈 털어 같은 작품을 3~4번씩 보며 대사, 배우의 미묘한 표정 변화, 무대장치, 음악을 꼼꼼히 따져가며 음미하면서 집요하게 파고든다.
“문화 콘텐트 기획과 펀딩에도 관심이 많아요. 또 5년간 역사 유적지를 다니며 ‘내가 있고 나라가 있는 게 아니라 나라 안에 내가 있다’는 분명한 가치관도 세웠고요. 앞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는 게 내 꿈입니다.” 이양이 다부지게 포부를 밝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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