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상조, 해법은 없나 ③‘변종’ 상품의 함정] 상조가 여행·유학·줄기세포까지 … ‘안전장치’가 없다

지역내일 2013-09-17 (수정 2013-09-17 오후 1:14:21)
약관변경·회원이관 후 '상품없다' 나몰라라 … 할부거래법상 선수금 보전 대상 미포함, 소비자피해 확산 우려

경조사에 대비해 국민들이 상조업계에 그동안 부은 돈은 3조원에 육박한다. 그러나 불투명하고 부실한 경영, 미흡한 제도 때문에 소비자가 돈을 떼이고도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정부도 업계 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을 가라앉히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상조 위기의 원인과 정상화 해법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위기의상조#Y씨는 지난 2008년 9월 195만원짜리 상조상품에 가입했다. 이 상품에 가입하면 결혼·장례·돌·칠순 중 어떤 경조사든 치를 수 있다고 했다.

월 3만원씩 대금을 꼬박꼬박 납부하던 Y씨는 만기를 1년 앞둔 올해 2월, A상조업체로부터 기존업체를 통합했다는 안내문을 받았다. 안내문에는 '그간 납입한 돈을 보장하고 행사를 진행해 주겠다'고 돼 있었다.

Y씨는 지난 4월 초 아들결혼을 위해 A상조에 전화해 결혼상품을 이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당사 상품 중 결혼은 포함되지 않아 상조서비스만 제공이 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Y씨가 "굳이 상조서비스를 이용할 일은 없을 것 같아 결혼 행사에 사용할 수 없다면 계약을 해제하겠다"고 했지만 A상조는 "회원이관 때 선수금은 일체 이전받지 않았으므로 계약해제를 한다 해도 환급금을 지급할 책임은 없다"며 버텼다.

#H씨는 지난 2007년 6월 '명심상조'라는 업체를 통해 장례뿐만 아니라 여행도 함께 치를 수 있는 상품에 가입했다.

그런데 한창 선수금을 넣던 도중 이 회사는 폐업을 하고 '미래상조119'라는 업체에 통합됐다. H씨는 만기가 다 돼 갈 무렵 여행을 가려고 미래상조119에 연락을 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여행상품이 존재하지 않아 장례행사만 가능하다'며 '장례를 이용할 뜻이 없다면 우리회사에 납입한 돈을 돌려줄 수 있다'고 답변했다. 명심상조가 폐업한 후 H씨가 미래상조119에 납입한 돈은 4회분에 불과했다. 이전 업체를 통해 납입한 것은 돌려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명심상조가 가입했던 한국상조공제조합에서는 이달 9일에야 H씨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특별보상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상조업계가 장례뿐만 아니라 결혼, 여행, 의료서비스 부문까지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명분이지만 법망을 회피할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커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

현행 할부거래법 하에서는 장례 등 일부 상품을 제외하고 소비자가 자신이 선택한 서비스를 보장받을 수도, 해약 시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따른 환급금을 돌려받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법망 벗어난 신종상품 우후죽순 = 할부거래법은 상조(선불식 할부계약)의 상품을 '장례 또는 혼례를 위한 용역 및 이에 부수한 재화'로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정부가 법정선수금 보전을 의무화하고 있는 대상도 장례·혼례에 한정된다.

그런데 상조업체들이 최근 출시하고 있는 상품들은 이를 벗어나 여행, 유학, 의료서비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리조트, 결혼식, 여행등을 통합해 선택 가능한 서비스를 내놓은 곳이 있는가 하면 크루즈 여행상품을 출시, 대대적으로 홍보중인 업체도 있다. 어학연수, 유학, 해외대학 진학용 어학상품을 비롯해 효도관광을 보내주는 상품을 내놓은 곳도 있다.

한 중견업체는 줄기세포 시술을 준비하는 '셀뱅킹(cell banking)' 상품을 내놓고 영업중이다. 건강할 때 혈액을 채취해 줄기세포를 추출·저장해놓고 질병 발생 시 치료에 이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줄기세포 추출·저장은 의료행위가 아니지만 의료기관이 아닌 제3자가 환자를 병원에 알선하고 대가를 받을 경우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한 상조업계 관계자는 "새롭게 출시되는 신종 상조상품들은 아직까지 선수금 보전조치 대상으로 명시되지 않은 상태"라며 "자율적으로 선수금을 보전하는 곳도 있겠지만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고객 돈을 마음대로 쓰다 부실에 빠지는 폐단이 반복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상조상품 범위 명확히 해야" = 공정거래위원회는 장례·혼례 외의 서비스라도 장례·혼례와 함께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할부거래법 적용대상이라고 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상조가 소비자 선택권 확대가 아닌 할부거래법 회피를 목적으로 상품을 다각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법해석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공정위는 상조업계의 상품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방침 역시 '경고' 수준이기 때문에 변종 상조상품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가 이뤄지기까지 적지 않은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전망이다.

변종 상조상품에 대해 선수금 보전조치를 한다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Y씨나 H씨의 경우처럼 업체들이 변칙적인 회원이관을 한 후 '우리 회사에는 해당 상품이 없다'는 이유로 서비스 제공이나 해약환급금 지급을 거부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단체협의회 관계자는 "변종상품이 나오기 시작한 초기에는 대놓고, 혹은 약관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후 서비스를 거부하는 사례가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회원이관 후 서비스제공 및 환급을 거부당해 상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회원이관 폐해를 막고, 상조상품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할부거래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상민(민주당) 의원은 모든 상조상품을 선수금 보전 조치 대상으로 하는 할부법 개정 안을 지난 8월 20일 발의한 상태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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