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배우로 만나다 - ‘의자는 잘못 없다’
“작품성 배우 연출력 다 갖춘 공연 선보입니다”
현란한 대중문화에 없는 ‘소극장 공연의 진수’ 느낄 수 있어
우연히 본 의자가 갖고 싶어 안달 난 실직자 강명규. 자신이 만든 의자를 공짜로 줄 수는 있어도 팔 수는 없다는 문선미. 딸이 만든 의자를 비싼 값에 팔려는 문덕수. 극구 의자를 사겠다는 강명규를 이해할 수 없는 부인 송지애.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연극 ‘의자는 잘못 없다’는 선욱현 작가의 ‘잘못 없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의자를 두고 벌이는 네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소유와 집착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연극은 유머와 무협을 가미한 절제된 언어로 웃음코드를 살리며 욕심이 지나치면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빤한 메시지를 빤하지 않은 배우들 연기로 전한다.
20년 넘게 교단에 선 교사와 제자들이 만나 이 작품을 야심차게 무대에 올린다. 그들은 세상을 향한 새로운 시도를 안고서 그 첫 번째 연극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연, 연극이 맺은 길고 아름다운 끈 =
전장곤 교사는 현재 용화고에 처음 뮤지컬단을 창단해 용화고 뮤지컬단이 전국대회 특별상까지 거머쥐게 한 장본인이다.
전 교사는 오래 전부터 제자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꿈을 꿨다. 그가 길러낸 연극부 학생 230여 명 중 전문 연극배우의 길로 들어선 20여명 제자들을 위한 배려다. 그는 연극을 통해 세상을 마주한 제자들이 젊은 예술혼으로 자부심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또한 지역공연문화가 스승과 제자 공연을 통해 활기를 얻고 제자들에게 도움 되길 바랐다.
실력 있는 전문배우가 되어 대학로를 누비는 제자들은 스승의 뜻도 고맙지만 스승과 같이 연극하는 것이 더 행복했다.
“공연을 같이 하자는 선생님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어요. ‘이건 기회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송지애 역을 맡은 황수연(23)씨는 월봉고 2학년 이과 반 때 연극반 전장곤 교사를 만난 뒤 “야자 빼먹는 재미로 시작한 연극이 이 자리까지 올 줄 몰랐다”며 추억을 더듬었다. 꿀 같은 점심시간도 극본 훑어보는 데 할애할 정도로 무대 서는 설렘이 컸다.
연극이라는 인연의 끈은 사제지간 정을 더욱 돈독하게 엮었다. 수연씨는 “‘아빠’라고 부르는 선생님과 함께해서 의미가 더 크다”며 활짝 웃었다.
전 교사와 오랜 인연을 이어온 김남호(33)씨는 홍성고 시절 전 교사가 이끄는 연극반에 몸담기 시작해 여태 연극과 살았다. 스승의 집도 거리낌 없이 들락거리며 가족과 다름없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남호씨는 강명규 역을 맡았다.
전 교사는 “남호는 끼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실력을 갖췄다”며 “지금은 탄탄한 연기력으로 영화에도 출연하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극은 내 인생의 활력소” =
김수진(21)씨 역시 꿈이 배우였기에 연극부 선택은 당연했다. 연기과에 합격하고도 영문과를 택했다. 배우가 항상 1순위였지만 취업현실을 무시할 순 없었고 영어 전공이 장래에 도움이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노래 잘하는 수진씨는 주로 뮤지컬 공연으로 대학로 활동을 해왔고 드라마 ‘자이언트’에 보조 출연한 경력도 있다. 지금은 고교 때 감명 깊게 본 공연의 주인공도 맡는 전문배우로 성장했다.
그러나 입시 준비 때 영혼 없는 대사 암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순간을 기억한 김씨는 망설임 없이 휴학을 결정했다. 이유는 “배우가 되고 싶은 나를 위해 이번 학기는 전폭적으로 투자하고 싶어서”였다.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피곤함도 신기하게 극장만 가면 싹 씻겨요.” 김씨는 “관객들 들어오는 것을 보면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싶어서 미치겠다”며 열정을 뿜었다. 수진씨는 ‘문선미’라는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며 열정을 발산하고 있다.
“연극, 내가 갈 길이었다” =
연출은 교직생활 30여년을 접고 명예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종후씨 손길을 거친다. “나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련다”며 당당히 명퇴를 선언한 김종후씨는 현재 한 달 동안 진행하는 제15회 충남학생연극제 심사를 맡고 있다.
그는 1987년 ‘파벽’이란 교사극단을 만들었고 1991년 ‘둥지’를 창단하며 줄곧 연출을 담당했다. 전장곤 교사가 처음 창단한 천안아산 교사극단 ‘초록칠판’도 김종후씨가 첫 연출을 맡았다.
김종후씨는 “실은 작품 선정부터 연출가와 의논해서 하는 건데 이번은 먼저 작품을 선정해놓고 연출 제의를 해왔다. 기분 나쁠 수도 있었지만 전 교사를 알고 있는데다 작품도 좋고 배우도 좋은데 거절할 수가 있어야지”라며 유쾌한 웃음을 날렸다.
“우리 공연은 마치 실험과 같아요. 만 원에 볼 수 없는 공연을 만 원에 내놓고 있는데 이 공연의 가치를 지역에서 얼마큼 알아줄까 하는 것이죠.”
전 교사는 사람들이 이 연극을 통해 복잡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벗어나 아날로그적 감성과 현장공연의 묘미를 찾는 기회를 갖길 바라고 있다.
스승을 철석같이 믿는 제자들은 바쁜 시간 짬을 내서 서울을 오가며 고달픈 연습에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지원금 한 푼 없이 시작했지만 제자들은 아산과 천안 소공연장을 매진시키겠단 희망을 안고 막바지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교사는 말했다. “학생은 무료입장시킬 겁니다. 문화예술을 보다 많이 접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부담 없이 향유하길 바라니까요.”
‘의자는 잘못 없다’는 미국 뉴욕문화원이 매년 진행하는 기획공연 공모전 ‘Open Stage’에 선정돼 절찬리 공연한 바 있다. ‘관객들이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연극’에 선정된 작품이다.
<공연 안내>
◆ 9월 23일(월) 오후 7시
아산시민문화복지센터(구 경찰서) 소극장
◆ 9월 27일(금) 오후 7시
천안예술의 전당 소공연장
◆예매 및 문의: 010-8958-3605 전석 1만원 (현장 티켓 구매 가능. 학생 무료입장)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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