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김지수’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누군가 말 걸어 주기 전에는 먼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수업 시간에 발표 차례가 되면 얼굴은 빨개졌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친구도 아주 적었다. “부끄러움 많이 타는 내성적인 내 성격이 무척 못마땅했지요. 성격도 쾌활하고 사교성 좋은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친구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며 늘 동경했어요.”
성격 개조 다짐하고 180도 변신
고교 입학한 첫날. 180도 변신하리가 굳게 다짐했다. ‘성격 바꾸고 성적 올리고’ 두 가지 실천이 당면 과제였다. “초중고 통틀어 단 한 번도 학급 임원이 돼 본적이 없어요. 그래서 고1 때 반장선거부터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죠. 내게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죠.”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결과는 낙선. 실망감과 그래도 시도는 해봤다는 뿌듯함이 교차했고 2학기 때 다시 도전해 결국 반장으로 뽑혔다.
‘하니까 나도 되는 구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니까 친구들에게 먼저 말도 걸 수 있게 됐고 부끄럼쟁이 성격이 조금씩 극복됐다.
학교생활에 탄력이 붙으니까 교내외 여러 프로그램들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멀리하고 살았던 초중 시절의 ‘과오’를 씻기 위해 도서부원을 자원했고 잠실여고 특화 프로그램인 글로벌 리더 양성과정의 문도 두드렸다.
아시아권 나라를 탐방한 후 소논문을 쓰는 글로벌리더 프로그램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1학년 때 중국 북경을, 2학년 때는 일본 오사카 일대를 둘러봤어요. 출국 전에 미리 연구 테마를 정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준비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현지에서 훨씬 많은 게 보였어요. 가족끼리 여행과는 확연히 달랐죠.”
2학년 때는 일본 팀장을 맡아 일본의 실버산업 현황을 조사해 소논문을 썼다. 서론, 본론, 결론을 갖춘 논문 형식에 맞춰 내용을 정리해야 했기에 수많은 자료 더미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현장 인터뷰를 해야 했고 덕분에 공부가 많이 됐다. 특히 일본 현지 신문에 잠실여고 학생들의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기사화되는 등 뿌듯한 추억거리도 만들었다.
성적 올리기 프로젝트 가동
자신의 성격 개조 프로젝트와 동시에 ‘공부! 한번 붙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성적 올리기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중2 때 수학 성적인 40~50점대를 맴돌 만큼 기초가 형편없었어요. ‘수학의 지존’이었던 사촌오빠한테 스파르타식 과외를 받았는데 못한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지요. 기본기가 없는 터라 중1 기초부터 시작했는데 점점 오기가 생겨 온갖 문제를 다 풀었어요. 그러면서 수학의 감을 조금씩 익혔지요. 하지만 수학 선행이 안 된 상태에서 고교에 입학하니 여전히 수학이 발목을 잡더군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가장 쉬운 문제집부터 공략해 문제 적응력을 키워나갔다. 서서히 문제와 문제 사이의 상관관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에 수학의 개념도가 그려졌고 성적도 상승곡선을 탔다.
영어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터라 다른 과목에 비해 공부가 수월했다. “문장 암기 습관을 들이고, 텝스로 듣기 공부를 한 게 도움이 됐어요. 고1 때부터 하루에 독해 4문제 풀기, 영어 단어 20개씩 정리해 암기하기를 불문율로 정하고 매일 실천했어요. 실력은 누가 뭐래도 꾸준함에 나오는 것 같아요.”
독서가 뒷받침되지 않는 탓에 국어는 늘 고전하는 과목이지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중이다. “취약한 문학 분야가 늘 문제였어요. 그래서 중요한 단편 소설을 하나하나 찾아 봤어요. 남들 다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고2 때 소설 읽으니까 무모하다며 친구들이 말렸지만 끝까지 완독했지요. 그렇게 ‘문학의 산’을 넘으니까 공부가 좀 수월해 지더군요. 친구들끼리 수능 기출문제를 풀며 각자의 문제풀이 방식을 공유하는 국어스터디도 꽤 도움이 됐고요.”
그에게 ‘성적 상승의 비결’을 묻는 친구들이 꽤 많다. 그럴 때마다 ‘평범한 지능을 가진 사람은 노력 외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점, 분명한 목표는 필수라고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일단 해보자. 안 되면 말고’ 마인드가 준 선물
김양은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눈다. ‘일단 해보자. 안 되면 말고’ vs ‘안될 걸 왜 하니’. 그는 전자의 삶의 방식으로 살겠노라 일찌감치 결심했다. “속앓이 많이 했던 콤플렉스를 극복하니 ‘긍정 마인드’라는 선물까지 덤으로 얻었어요. 무조건 ‘해보자’며 모든 일에 달려드니 경험의 폭이 넓어지더군요.”
그의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 작가, 기자,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군을 놓고 고민하다 교사로 최종 낙점했다. “멘토인 아빠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분은 직장 다니다 어린 시절 꿈을 찾아 30대 후반에 다시 교대에 들어가 교사가 되신 분인데 매일매일 무척 행복하다 하시더군요. 아이들을 좋아하고 성실한 나에게 좋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될 자질이 많다며 격려해 주셨어요.” 많은 고민 끝에 장래 희망을 정한 김양의 얼굴에는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 전력 질주하겠다는 결기가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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