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도 가끔씩 들러 쉬어갔다고 전해지는 700년 넘은 거대한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 전동드릴, 그늘막 텐트처럼 새로 구입하기는 아까운데 마땅히 빌릴 곳이 없을 때 SOS를 청할 수 있는 곳, 화양동 ‘씨앗카페 느티’가 바로 그런 곳이다.
버려진 공간이 북카페로 변신
9월 정식 오픈을 앞두고 4월부터 임시로 문을 열고 있는데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카페 안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산뜻한 인테리어에 2000원 내외의 착한 커피 값이 주민들 사이에 빠르게 입소문 났다. 여행, 문학, 인문학 등 다양한 책들을 맘껏 꺼내볼 수 있는 북카페의 서가도 이곳의 자랑거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화양동주민센터의 1층 로비였던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버려진 공간이었다. ‘건대 앞을 홍대처럼 만들 수 없을까?’ 오랫동안 ‘꿈’을 품어온 광진구청 공무원 정광희씨. 때마침 화양동주민센터 동장으로 부임하면서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물밑 작업이 시작됐다.
“원룸촌인 화양동은 20~30대 전체 주민의 70% 가까이 되는 ‘젊은 동네’입니다. 건대, 세종대 등 대학가에다 영화관, 백화점, 대형마트 같은 생활 인프라가 주변에 갈 갖춰져 있고 지척에 어린이대공원, 한강시민공원까지 있어요. 입지 여건이 좋죠. 유흥가로만 알려진 화양동을 재기발랄한 ‘문화예술창작촌’으로 바꿔나가기 위해 여럿이 뜻을 모았습니다.” 정 동장이 그간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책을 돌려 읽는 ‘공유 서가’ 선보여
도시계획자, 디자이너, 공연기획자들끼리 뭉친 씨앗나눔연구소가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화양동 상인들, 동네의 오랜 터주대감 등 마을 토박이들까지 가세해 끈끈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자 ‘느티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이 탄생하게 됐다. 마을 주민, 마을연구소, 주민센터 3개의 삼각 편대가 손을 맞잡은 결과였다.
“사업 수익을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마을사업에 전액 재투자할 수 있도록 ‘사회적협동조합’ 모델로 가기로 서로 의견일치를 봤습니다.” 씨앗나눔마을연구소 장은은 연구원의 설명이다.
우선 마을의 허브공간이 절실했다. 조합원들끼리 아이디어를 모으고 서울시 지원을 받아 씨앗카페 느티가 첫 선을 보이게 됐다. “바리스타도 마을주민들이고 재료도 광진구의 유명한 동네 카페에서 로스팅한 고급 원두를 사다가 커피를 내립니다. 과일, 베이커리 같은 재료도 모두 동네에서 구입하고요. 지역 상권끼리 상부상조하는 거죠.” 정 동장이 덧붙인다.
카페의 기본 콘셉트는 ‘공유’. 돗자리, 각종 공구, 침낭 등 소소한 생활용품을 이곳을 통해 빌릴 수 있다. 공유 서가도 운영 중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책장 한 켠을 임대해 주면 집에서 읽던 책을 가져와 이웃끼리 함께 돌려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제게 이 책은 아주 특별해요. 왜냐면 5학년인 제 용돈으로 샀거든요. 아껴서 봐주세요.’라는 초등생의 재미난 추천 평 등 책 주인 마다 적어 놓은 다양한 사연이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전문가 초청 특강, 요리강좌 등 문화강좌도 수시로 열린다. “도시새쟁 전문가로 유명한 김정후 박사 강의 때는 독일, 영국 등 유럽의 도시재생사업 모델을 재미있게 풀어주셨는데 마을 주민 뿐 아니라 건대,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와 학생들끼리 참여해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어요. 호응 덕분에 2차 특강도 열립니다.” 장 연구원이 귀띔한다.
소통공간이 만들어지자 마을 주민들 스스로 ‘문화기획자’로 나서고 있다. 도예가들의 작품 전이 카페에서 열리고 학부모 동아리 모임도 수시로 개최된다.
8월부터 시리즈로 열리는 가드닝 클래스도 독특한 콘셉트로 운영 중이다. “강의를 통해 식물연출가, 조경디자이너 등 여러 전문가들과 만나며 정원 가꾸기가 순전히 자기만족을 위한 취미가 아니라 내가 가꾼 식물들로 다른 사람까지 기쁘게 만드는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라는 걸 배웠어요. 신선한 발상이죠.” 안미성씨가 소감을 밝힌다.
느티카페를 시작으로 산뜻하게 출발한 화양동주민들의 협동조합은 마을밥상, 아트마켓, 동네축제도 차근차근 준비 중이다.
[씨앗카페 느티 강좌]
지혜특강 ‘좋은 마을과 건축의 조건’
-일시 : 8월22일(목) 오전 10시
-내용 : 런던대 지리학과 김정후 박사를 초청 특강과 함께 어떤 도시, 어떤 건축이 좋은 지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눠보는 시간
마을과 이야기가 있는 정원 가꾸기 가드닝 클래스
-8월24일 ''허브와 다육식물 화분작업''
-8월31일 ''내가 직접 디자인해요''
-9월7일 전원주택 생활 18년 노하우 지닌 이혜선씨와 ''함께 견학가요''
-9월14일 공동작업 ''다함께 만드는 느티 가드닝''
(매주 토 오전 10시~12시)
느티마켓
-일시 : 9월12일
-내용 : 벼룩시장 개최, 각종 문화예술 공연, 체험 프로그램 운영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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