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문 앞에 표시된 이상한 표식을 둘러싼 ‘숨바꼭질 괴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숨바꼭질’이 한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준다. 공포심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오프닝 장면으로 시작해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흥미진진한 영화였다.
우리 집에 낯선 사람이 숨어서 살고 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영화 초반부에 단란한 가정의 가장 성수(손현주)와 두 아이가 집에서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술래인 성수는 벽장 속에 숨은 아이를 쉽게 찾아내고 이내 화목한 웃음소리가 온 집안에 퍼진다. 영화 ‘숨바꼭질’은 제목에 걸맞게 성수가 실종된 형의 소식을 듣고 수십 년 만에 형을 찾아 나서게 되는 설정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숨바꼭질 놀이와는 달리 숨은 형을 찾아내는 일은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다.
성수는 형이 살고 있던 허름한 아파트에서 집집마다 표시된 이상한 암호를 발견하고 그 표식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성별과 사람 수를 뜻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그것이 범인이 표시해 놓은 암호임을 직감한다. 형의 아파트와 이웃해 살고 있는 주희(문정희)는 어린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데, 아파트에 숨어 살면서 자신의 집을 훔쳐보는 누군가의 존재를 느끼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갈피를 잡을 수 없어 어수선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성수는 형의 아파트에서 봤던 표식이 자신의 아파트 현관문 옆에 새겨진 것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형과 있었던 어린 시절의 사건을 떠올리며 그는 육감적으로 범인이 형이라고 생각한다.
논리보다는 연기력으로 승부를 건 영화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한 스릴러치고 ‘숨바꼭질’의 논리는 엉성하다. 초반에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던 수수께끼 암호는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그 실체가 흐려져 복선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범인의 실체가 너무 일찍 밝혀진다는 점도 중반 이후 관객들의 공포심을 떨어뜨린다. 범인의 집에 대한 집착만큼 성수 가족의 삶에 대한 집착도 남다르다. 범인이 가격한 한 방에 쉽게 쓰러지는 다른 희생자들과 달리 성수 가족은 여러 번 맞고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반복이 지나쳐 스토리가 늘어지는 느낌이 든다. 긴장과 공포 속에서도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다.
반면, 연기파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소름 돋는 연기는 논리적인 허술함을 메우고도 남는다.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며 드라마와 영화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현주는 성수의 결벽증을 지나침 없는 절제된 연기로 더욱 실감나게 표현했다. 공인된 연기자로서 손색없는 연기였다.
성수와 마지막까지 대적하는 주희 역할의 문정희는 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보여줄 수 없는 연기를 선보였다. 허름한 아파트에 어울리는 꾀죄죄한 분장, 어딘지 나사가 풀린 듯한 표정, 광녀로서의 집착과 과격한 격투장면까지 정말 제대로 망가지며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재난영화 ‘감기’에서 끝까지 투명하고 맑은 얼굴을 보여주었던 수애와 대조적이지 않을 수 없다.
‘내 집’에 대한 광기(狂氣)어린 집착이 비극을 낳다
열악한 환경에서 어린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주희의 ‘내 집’에 대한 집착은 광기로 나타난다. 빈민들이 살고 있는 낡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다짐에는 비뚤어진 모성애가 담겨있다. 사람들은 보통 원하는 것과 현실상황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원하는 것을 통제한다. 하지만 주희라는 인물은 이룰 수 없는 현실 상황을 왜곡하고 원하는 것을 얻은 후 그것을 스스로 정당화한다. 심지어는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퇴행의 모습도 보인다. 소외된 계층에서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인 비극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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