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 "수주계약서 아닌 양해각서"
올 2월 국내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에는 한국인이 투자한 기업 A사가 인도네시아의 고속도로 2727㎞ 공사를 수주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업체는 인도네시아 중앙정부 고위 관료를 한국으로 초청해 계약식 사진까지 언론에 보도자료로 보냈다. 하지만 내일신문 취재결과 이는 허구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부고속도로 6배 길이 도로공사 =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국내 투자업체 A사가 인도네시아 공공사업부와 수마트라 지역의 고속도로 건설공사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계약을 체결했다'며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입은 아체 특별자치주 재건사업 일환으로 2727㎞의 4차선 도로를 잇는 공사'라고 소개했다. 공사비만 약 113억달러(14조5000억원)로 올 3월 착공해 2019년 10월 완공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일신문 취재 결과 서울에서 열린 계약식은 '공사와 관련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사로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는 양해각서(MOU) 체결식에 불과했다. A사는 이를 수주 계약으로 치장해 언론사에 거짓 보도자료로 보낸 것이다.
정부와 건설업계가 진위를 파악한 결과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길이가 416km인 것을 고려하면 인도네시아 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6개가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한화건설이 지난해 이라크에서 수주한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사업의 공사비 77억5000만달러(수주당시 환율기준 약 9조원)보다 50% 가량 규모가 크다.
◆대형건설사, 사업참여 거부 = A사가 접촉한 GS건설의 해외수주 담담 부서는 "말도 안 되는 사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A사측에서 몇차례 찾아온 적은 있으나 자금조달이나 현지 정부의 인허가 등에 대한 내용 없이 기본계획만 내세웠다"며 "대꾸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주재원은 "인도네시아 대형 토목공사는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사업은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며 "현지 교민들을 상대로 알아봤으나 A사는 물론 회사 관계자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조사 결과 확인됐다. 대사관은 국내 건설사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한국을 방문해 계약식에 참석한 고위 관료 B씨를 접촉했다. B씨는 국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말도 안 된다며 해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B씨는 계약서가 아닌 양해각서에 사인을 했을 뿐 기사화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며 "'해당 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양해각서도 파기하겠다'는 답변을 해왔다"고 전했다. 해외건설협회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A사를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했다.
◆사무실 강제퇴거 위기 = A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한국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이 업체는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 위치해 있으며 굳게 잠겨 있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해당업체가 무역센터에 입주한 것은 맞지만 장기간 임대료를 내지 못해 강제퇴거 조치를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각국의 주요기업이나 한국인 투자기업을 전산화하고 있는 코트라도 이 기업의 실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모든 기업을 다 입력한 것은 아니지만 코트라 전산망에는 입력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A사 김 모 이사는 "수주계약이 아닌 양해각서 체결이 맞다"며 내일신문의 취재내용을 인정했다. 그는 "현지 사정을 고려해 달라"며 "현지 행정시스템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고, 대사관이나 국내 건설사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현지 대형건설사와 사업을 위한 조인트벤처(합작법인)를 만들었고 가을쯤 되면 본 궤도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근무하는 한 기업 주재원은 "이들이 정·관계, 언론과의 인맥을 과시한다는 소문에 언급하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실제 A사는 현지 중앙 및 지방정부 관료들을 한국에 초청해 국내 공기업,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정관계 인사 등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A사의 홍보 블로그로 보이는 한 홈페이지에는 2009년 A사가 주선해 현지 정부 관료들과 당시 한나라당 C 최고위원, 민주당 D 최고위원을 만나게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블로그에는 민주당 D 최고위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내일신문이 D 전 민주당 최고위원측에 A사와의 관계를 묻자, D 전 최고위원은 "너무 오래돼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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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해외수주 ‘사기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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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국내 주요 일간지와 인터넷 매체에는 한국인이 투자한 기업 A사가 인도네시아의 고속도로 2727㎞ 공사를 수주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업체는 인도네시아 중앙정부 고위 관료를 한국으로 초청해 계약식 사진까지 언론에 보도자료로 보냈다. 하지만 내일신문 취재결과 이는 허구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부고속도로 6배 길이 도로공사 =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국내 투자업체 A사가 인도네시아 공공사업부와 수마트라 지역의 고속도로 건설공사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계약을 체결했다'며 '지진해일(쓰나미) 피해를 입은 아체 특별자치주 재건사업 일환으로 2727㎞의 4차선 도로를 잇는 공사'라고 소개했다. 공사비만 약 113억달러(14조5000억원)로 올 3월 착공해 2019년 10월 완공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내일신문 취재 결과 서울에서 열린 계약식은 '공사와 관련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사로 관계를 맺는 과정'이라는 양해각서(MOU) 체결식에 불과했다. A사는 이를 수주 계약으로 치장해 언론사에 거짓 보도자료로 보낸 것이다.
정부와 건설업계가 진위를 파악한 결과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현재 이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경부고속도로의 길이가 416km인 것을 고려하면 인도네시아 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6개가 넘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한화건설이 지난해 이라크에서 수주한 비스마야 신도시 개발사업의 공사비 77억5000만달러(수주당시 환율기준 약 9조원)보다 50% 가량 규모가 크다.
◆대형건설사, 사업참여 거부 = A사가 접촉한 GS건설의 해외수주 담담 부서는 "말도 안 되는 사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A사측에서 몇차례 찾아온 적은 있으나 자금조달이나 현지 정부의 인허가 등에 대한 내용 없이 기본계획만 내세웠다"며 "대꾸할 필요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현지 주재원은 "인도네시아 대형 토목공사는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사업은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며 "현지 교민들을 상대로 알아봤으나 A사는 물론 회사 관계자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의 조사 결과 확인됐다. 대사관은 국내 건설사들의 민원이 이어지자 한국을 방문해 계약식에 참석한 고위 관료 B씨를 접촉했다. B씨는 국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말도 안 된다며 해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B씨는 계약서가 아닌 양해각서에 사인을 했을 뿐 기사화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며 "'해당 업체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양해각서도 파기하겠다'는 답변을 해왔다"고 전했다. 해외건설협회도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A사를 '요주의 대상'으로 분류했다.
◆사무실 강제퇴거 위기 = A사의 홈페이지를 찾아 한국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이 업체는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 위치해 있으며 굳게 잠겨 있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해당업체가 무역센터에 입주한 것은 맞지만 장기간 임대료를 내지 못해 강제퇴거 조치를 내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각국의 주요기업이나 한국인 투자기업을 전산화하고 있는 코트라도 이 기업의 실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모든 기업을 다 입력한 것은 아니지만 코트라 전산망에는 입력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A사 김 모 이사는 "수주계약이 아닌 양해각서 체결이 맞다"며 내일신문의 취재내용을 인정했다. 그는 "현지 사정을 고려해 달라"며 "현지 행정시스템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고, 대사관이나 국내 건설사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현지 대형건설사와 사업을 위한 조인트벤처(합작법인)를 만들었고 가을쯤 되면 본 궤도로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근무하는 한 기업 주재원은 "이들이 정·관계, 언론과의 인맥을 과시한다는 소문에 언급하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실제 A사는 현지 중앙 및 지방정부 관료들을 한국에 초청해 국내 공기업,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정관계 인사 등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A사의 홍보 블로그로 보이는 한 홈페이지에는 2009년 A사가 주선해 현지 정부 관료들과 당시 한나라당 C 최고위원, 민주당 D 최고위원을 만나게 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 블로그에는 민주당 D 최고위원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내일신문이 D 전 민주당 최고위원측에 A사와의 관계를 묻자, D 전 최고위원은 "너무 오래돼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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