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_ 밤을 즐기는 사람들

열대야는 물렀거라 ~ 여름밤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

지역내일 2013-08-07

유난히도 지루했던 장마가 끝이 나면서 열대야가 시작됐다. 긴긴 여름밤은 낮이 길어지면서 얻어낸 황금 시간, 하지만 더위 때문에 지치다보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시간대이기도 하다. 피할 수 없으며 즐기라고 했던가. 무더위로 지쳤다면 밤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공부나 운동에 열공하다 보면 어느새 열대야는 한 발짝 물러나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무더위도 울고 갈만한 한여름 밤 뜨거운 열기의 현장을 소개한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현장1. 양천구 파리공원
달밤에 체조를? 야간체조교실로 열대야 물리치기


야간체조
열대야가 무르익는 8월, 땅거미가 질 무렵쯤이면 파리공원에는 더위를 피해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국민체조가 공원에 울려 퍼지면 신호라도 알리듯이 흩어져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줄을 맞춘 듯 반듯반듯 모여 구령에 맞추어 체조를 따라한다.
준비체조가 끝나면 신나는 음악이 나온다. ‘사랑을 하면서도 후회해도 한평생을 살 사람아~~’ 음악에 맞춰 동작을 따라해 보지만 쉬운 일은 아닌 듯 강사 한 번 주위 사람 한 번 돌아보며 열심히 따라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이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 어느새 150명이 넘고 넓은 파리공원 광장에는 음악에 맞추어 야간에 체조를 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가는 길을 멈추고 운동복이 아닌 정장을 입은 채로 참여하는 진기한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할머니가 운동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손자도 할머니를 흉내 내 운동을 하기도 한다. 따라하는 사람의 동작이 제각각일지라도 모두 신나는 표정이다. 동작이야 어찌됐든 1시간 열심히 흔들고 나면 더위는 어느새 저쪽으로 물러가 버린다.


에어로빅과 생활체조, 근력강화 운동으로
양천구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야간체조교실’은 올 7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번 수업은 낮에는 무더위 때문에 운동을 하기 힘든 주민들을 위해 저녁에 체조를 할 수 있도록 월수금 오후 8시에 한 시간 동안 파리공원, 갈산공원, 양천공원에 마련한 것.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러 나온 어르신부터 주부, 직장인,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 나온 5~6살 손자 손녀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있다.
파리공원에서 체조교실의 강의를 맡은 김경조 강사. 양천구에서 10년째 아침체조교실을 강의하고 있는 베테랑이다.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나 10년 째 참가한 사람이나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에어로빅과 생활체조, 근력강화 운동을 섞어 지도한다. 김 강사는 “실내에서 하는 운동과 달리 야외운동은 비가 오면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8시가 되면 운동을 하려고 기다리는 주민들이 많다”며 “올해 처음 시작해 홍보가 다소 부족하지만 더위에 지친 분들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참가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10년째 아침체조교실을 참가하면서 김경조 강사와 인연을 맺은 곽은주(65) 어르신, “아침에 이어 저녁까지 체조를 하니까 관절염, 오십견이 다 없어졌다”며 “요즘엔 운동에 중독이 됐다”며 웃는다. 곽인복(66) 어르신은 아침체조교실에 참여한지 3년차, 저녁체조교실 광고를 듣고 함께 운동하고 있다. “허리가 아팠는데 운동을 하고 너무 좋아졌다”며 “오십견에는 운동이 최고”라고 전한다.
김경조 강사에 대한 자랑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강사님 똑소리가 난다. 카리스마도 있고 율동도 너무 예쁘게 잘 한다”며 “사실 몸매는 조금 아니지만 유연성 좋고 재미있다”고 전한다.
사실 야외에서 하다보면 비가 와서 못할 때도 많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어 운동을 하러 막상 나왔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비를 피하기를 몇 번 그래도 운동이 즐거운지 가벼운 비는 무시하고 진행되기도 한다. 
김희숙(66) 어르신은 “운동을 하면 몸을 덥혀 주어 면역력이 높아진다”며 “요즘같이 비가 많이 올 때는 하는 날보다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 아쉽다”고 전하기도 한다.
운동을 한 이후로 감기도 안 걸린다는 최성혜 어르신은 “운동을 하고 나면 맑은 기운이 올라와서 상쾌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열대야도 이기도 잠도 잘 자고 아침이 가뿐하다”고 전한다.
송혜란(58)씨는 손자 건우(7) 군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다 운동하는 것을 보고 처음 참가해봤단다. “공원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 음악 소리가 나고 춤추는 사람들이 있어 와 봤다”며 “처음 따라 하는데 재미있다”고 한다. 손자도 할머니가 운동하는 것이 신기한지 옆에 꼭 붙어 동작을 따라하는 모습이 야무지게 보인다.
강수진(76) 어르신은 “혼자 살살 공원을 걸어 다니기만 했는데 이렇게 체조를 하니까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다”며 “선생님이 너무 잘 가르쳐주어서 따라 하기도 쉽고 땀을 쫙 흘리고 나서 집에 가서 샤워하고 나면 열대야는 거뜬하다”고 전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 체조. 그것도 더위를 피해 밤에 하는 체조는 혈관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근육의 활성도를 높여 현대인들의 운동부족도 보충하고 더운 여름 열대야를 이기기에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어려운 동작을 요하는 지루한 체조가 아니라 전문 강사와 함께 신나는 음악에 맞춰 배우기 쉬운 율동과 체조 위주로 구성되어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양천구의 야간체조교실은 10월 말까지 운영될 계획이다.


현장2. 강서도서관 문화교실
니 하오~ 중국어 열공으로 열대야 물리치기


중국어 교실
열대야를 물리치기 위해 공부에 열공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야 할 곳은 당연 도서관. 강서도서관에서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강서도서관 1층 문화교실에서 중국어 강좌를 마련했다.
리포터가 중국어교실을 취재하기 위해 강서도서관에 이르자 이미 어둑어둑해진 야심한 시각이지만 책을 읽는 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以?는 주관적인 생각으로 ~인줄 알았다’인 반면에 ‘??는 객관적으로 ~라고 생각하다’입니다.” 초급반 중국어 강좌를 맡고 있는 강유리 강사는 책을 읽다 말고 중요한 부분이 나오자 학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늘어놓는다. 열심히 듣고 따라 쓰던 수강생 중 한 명이 “선생님, 그럼 ?得(ju?de)는 뭐예요?”라는 질문을 한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得는 주관적인 느낌으로 ~라고 여기다.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겨우 기초반 6개월 과정을 거치고 올라온 초급반 수준이 이 정도라니….’ 감탄을 금치 못하며 리포터도 함께 중국어 수업에 참관했다.


가까운 이웃 중국, 중국어는 할 줄 알아야
강서도서관의 중국어 초급반 교실은 다락원의 ‘중국어 마스터 Step 2’ 교재를 사용한다. 책의 수준 때문에 이미 기가 눌려 중국어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사라질 수 있겠지만 자세한 설명과 함께 여러 번 반복 학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단 수업을 듣기만 해도 중국어 실력이 날마다 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중국어를 처음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초반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강서도서관으로 오기만 하면 된다.
초급반 중국어 강좌를 맡고 있는 강유리 강사는 “중국어 초급반은 학생들보다 더 열정을 가진 직장들의 참여가 많다”며 “공부에 대한 욕심과 삶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들”이라 소개한다. 강사의 소개대로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인터뷰하면서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를 느낄 수 있었고 마땅히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중국어 카카오톡 방’을 개설해 가며 수시로 모르는 것을 질문할 만큼 열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중국어 교실의 반장을 맡고 있는 정이균(66) 회원은 양천문화원, 양천도서관, 종로도서관에서도 중국어 교실을 배우고 있고 또한 반장을 맡고 있다. ‘가까이 있는 이웃나라의 말은 좀 하고 살아야 되지 않나’하는 생각으로 중국어에 도전했다. “중국 신장 위그르 지역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려면 중국어는 좀 해야 될 것 같다”며 “도서관 마다 중국어 강좌가 있으니 마음만 있으면 배울 수 있다”고 한다.
강서도서관 중국어 교실에서 가장 어르신인 김종식(80) 회원. 중국어를 공부하는 동안 큰 수술도 했지만 다시 공부에 도전한 케이스. “딸이 중국에서 한의사를 하고 있는데 딸을 만나러 가려면 중국어를 할 줄 알아야 될 것 같아 배우게 됐다”고 소개한다.
김성수(51) 회원은 “제가 목숨 걸고 하는 것 3가지가 있는데 헌혈, 검도, 중국어”라 말한다. 그만큼 사연 많은 중국어. 취재차 중국에 갔는데 코디네이터가 통역을 해주지 않고 돈만 받고 사라져버린 것. 기사는 써야 하고 말은 안통하고 필담으로 번체를 써서 겨우 마감은 했지만 그 뒤로 중국어에 목숨 걸고 공부한다고.
고효청(47) 회원은 아이 때문에 중국어를 배운 케이스다. 과외로 중국어를 배운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서 수업을 같이 들었다. 그런데 강서도서관 강좌가 성인을 위한 수업이다 보니 아이는 자연스레 관두게 됐고 엄마만 남았다. “중국어를 배운지 3년차가 되었지만 책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 실력 향상이 눈에 띄지 않지만 오며가며 보이는 중국어가 읽혀지고 들리는 것이 신기하다”고 한다.
임은영 회원은 초급을 들어야할지 중급을 들어야할지 망설이다 교재를 보고 놀라 기초로 돌아섰지만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서 너무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고 밝힌다. 주부라 밤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지만 너무 열심히 하고 있는 회원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중국어 교실 회원들은 콩나물시루에 물주는 것을 중국어 공부에 비유하기도 한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아무 것도 남김이 없고 다 흘러가 버리는 것 같지만 콩나물은 자란다. 중국어도 일주일에 한번 듣고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콩나물시루에 물 주듯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는 실력이 나오게 된다고.
강서도서관의 중국어 강좌가 이렇게 인기강좌가 되기까지 사연도 많았다. 중국어교실은 20명이 정원. 지금은 20명이 넘게 등록을 하지만 처음 중국어 강좌가 개설되었을 때는 등록 숫자가 10명이 안되어 폐강 위기에 놓였다. 그 때 초창기 멤버들이 수업을 듣고자 식구들 이름을 넣어서 등록 인원 11명을 채워 강의를 시작했던 것. 이런 사연이 있다 보니 강좌를 듣는 회원들이 수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기만 하다.
가까운 나라 중국, 하지만 중국어는 마음만큼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중국어를 시작하고 싶다면 강서도서관으로 오라”고 회원들은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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