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고등학교 이미성 교사

지역내일 2013-06-23 (수정 2013-06-23 오후 10:52:47)


다름을 인정하는 지혜, 인문학을 통해 배웁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 우리네 부모들. 모두를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았는지도 모른다. 부모세대에 비해 정말 많은 것을 가진 우리 아이들이 부족함이 없었기에 배울 수 없었던 그 것은 바로 다른 이에 대한 배려와 관용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교사라면 모름지기 입시성과를 내는데 집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인문학’이라는 화두를 꺼내든 선생님이 있다.
올해로 교직 10년차인 서현고 이미성 교사다. 2010년 시작한 이 교사의 이 낯선 시도는 서현고에 인문학 붐을 일으켰고, 그가 개설한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달인>’은 방과후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좌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입시준비에 바쁜 학생들에게 더디디 더딘 인문학이 먹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생의 답은 결국 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말은 우리 아이들은 보면서 제 머리 속에 늘 떠오르는 말이었어요. 재주와 학식은 많지만, 그에 비해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덕성이 부족한 학생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입시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관 형성이라고 생각했고, 방과후 강좌로 인문학강좌를 개설했다. 수업은 소설류부터 시작해 인문 사회 과학 서적을 망라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학생 스스로 발제하고 요약하고 토론하는 대학강의 형태로 진행했다.
“사실 입시공부를 해야하는 학생들이 『국가론』, 『이기적 유전자』, 『신곡』과 같은 책들을 읽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수업에 열정을 쏟아부으면서 문제풀이식 공부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학문하는 즐거움을 알아가더군요.”


사고의 확장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  



“제 스승이신 노 교수님은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 힘들때마다 『국가론』를 꺼내 읽으신다고 하십니다. 그 분의 평생을 잡아 준 책이 바로 『국가론』이었답니다. 그땐 잘 몰랐는데 이제 제가 그걸 느끼고 있어요.
10대에 읽은 『국가론』과 30대에 읽은 『국가론』은 분명히 다릅니다. 50대 60대엔 또 다르겠죠. 강좌를 운영하면서 『이기적 유전자』는  4번 읽었는데 매번 달라요. 안보이던게 보이고 그 때마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라고 이 교사는 말한다. 처음엔 10% 정도만 받아들였던 학생들이 2번 3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20%, 30%를 받아들이면서 놀라울 만큼 사고가 확장되어간다는 것.
“『이기적 유전자』는 동물학 유전학 분야의 책인줄 만 알았는데, 생물학이면서 인류학이고, 그 속에는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까지 아우르고 있더라고 아이들이 말하더군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지만 스스로 성찰하는 존재이기도하다. 그 이타성이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독해하고 토론하면서 아이들은 이런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더 나아가 자연스럽게 우리 삶과 연계해 사례를 찾아보는 작업으로 이어진답니다. 진짜 공부를 하는 것이죠.”


더 큰 공부의 벽에 부딪히고 깨지면서 ‘겸손’과 ‘부끄러움’ 배워
이 교사는 ‘인문학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삶에 스며드는 인문학을 지향한다. 인문학이 문과생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고  실제로 <달인>강좌는 자연계열 학생들이 꽤 많다.
“책을 읽고 문제를 발견하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학문적 성향으로 바뀌어갑니다. 1년차 다르고 2년차 달라요. <달인>을 2년 이상 들은 학생들은 대학 수준의 논문을 쓸 만큼 학문적으로 많이 성장했어요. 아전인수격 사고방식에다 공격적인 성향이던 학생들도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알게 되고, 남과 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을 배우게 되었다.
“문제풀이식 공부로는 갖기 힘든 정서와 인성 그리고 학문적인 능력을 갖춘 아이들이 많아요. 인문학을 입시와 연결시키는 것이 달갑지는 않지만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렇게 틀이 큰 공부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공부에 최적화된 학생들이 되더군요.”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나의 선생님들
입시중심 교육에 매몰되는 것이 안타까워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입시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내신 2.5등급에 별다른 스펙이랄게 없는 학생이 서울대 1차에 합격했는가 하면, 많은 <달인> 친구들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당당히 합격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은 그대로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라고 할 수 있어요. 그 힘이 바로 융합이에요. 과학과 인문을 융합한 새로운 학문분야가 생겨나는 것처럼 인문학은 오히려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더욱 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국영수 중심의 문제풀이식 공부로는 도달하기 힘든 그런 경지가 바로 인문학에 있습니다.”
누구보다 우울하고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이 교사. 그 때마다 자신을 붙들어 준 것은 ‘책’이었고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을 닮고 싶어서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 때 받은 것을 아이들에게 돌려주려는 하나의 몸짓이 바로 <달인>이다.
“이렇게 잘 컸다는 것이 저조차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저의 청소년기는 정말 엉망이었어요. 세상은 늘 나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침잠과 반항뿐이었죠. 늘 웅크리고 노려보듯 살았는데, 그런 저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신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이제 제가 그분들의 역할을 할 차례입니다.” 
이춘희 리포터 chlee1218@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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