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며 과일, 일상을 수수한 듯 화려하게 표현한 정물화. 초등학교 때 잠깐 배웠던 미술을 밑천으로 윤나영양이 틈날 때마다 그렸다는 수채화를 보니 심심풀이 취미 수준은 넘어 보인다.
독학하다시피 익힌 피아노도 수준급이다. 친구에게 묻고 음악선생님께 틈나는 대로 질문을 쏟아내며 쌓은 실력으로 중고교 시절 내내 음악시간마다 반주를 도맡아 하고 있다.
피아노 음색에 매료돼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매일 연습한 시간이 실력으로 쌓인 덕분이다. 고3의 녹록치 않은 요즘도 피아노가 그의 버팀목이 돼 주고 있다고. “뉴에이지 피아노곡을 무척 좋아해 짬날 때마다 쳐요. 건반을 누르다 보면 고민, 불안, 막막함이 잦아들고 마음이 편안해 져요.”
책과 피아노로 힐링
아담한 체구에 조곤조곤한 말투, 참한 미소를 지난 윤 양. 음악과 그림을 즐길 줄 아는 문화적 소양을 혼자서 갈고 닦았다는 사실이 내심 놀랍다.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저를 살뜰히 돌봐줄 형편이 안됐기 때문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자립심이 길러졌지요. 그림을 그리거나 빈 상자를 모아 리폼하고 소소한 전자제품 분해해 조립하며 손을 조물조물 움직여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했어요.”
또래들보다 철이 일찍 든 그는 심심할 때마다 집근처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지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으며 ‘삶의 지혜’를 배워나갔다. “책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 읽는 편이에요. 전체적으로 읽은 다음 마음에 닿는 부분은 밑줄 그어 가며 읽고 다시 그 내용을 메모하지요. 책 내용을 현실 속의 나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서 본받을 점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덕분에 교내 다독상, 독후감 대회 때마다 상을 휩쓸었다.
햄(HAM) 자격증 따며 항공우주에 관심
이처럼 글을 통해 ‘자가 성장’의 에너지를 얻었다는 그는 자신의 진로도 중학교 때 일찌감치 정해 놓았다. “과학 과목을 좋아했어요. 특히 복잡한 자연 현상을 수와 식만으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물리에 흥미가 많아요. 그래서 항공우주분야를 연구하는 과학기술연구원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가 항공우주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독특하다. 중학교 때 동아리 지도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아마추어 무선기사 햄(HAM) 자격증을 따게 된 뒤 자연스럽게 장래 꿈으로 이어졌다. “운 좋게 학교에 무선시설을 갖추고 있어 틈날 때마다 교신을 할 수 있었어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어른들과 무선 교신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죠. 어린 여학생과 교신하는 게 매우 드물다며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셨어요.”
이를 계기로 항공우주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더욱 과학 공부에 매진했다. 고교 입학 후 잠실여고 과학탐구 발명반에 들어간 뒤 ‘신세계’를 만나게 된다. “열성적인 과학 선생님 덕을 많이 봤어요. 교내 과학 캠프도 상당히 알차게 진행돼 두루두루 배울 점이 많았지요. 게다가 선생님께서는 서울시교육청과 여러 대학에서 여는 과학교실 정보도 다양하게 알려주며 참가를 독려하셨고 진로와 관련된 조언과 격려도 아끼지 않으셨죠.”
각종 교내외 과학캠프 두드리며 꿈 키워
특히 그는 고1 때 서울시과학전시관의 발명교실에 참여하며 과학 지식의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었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의 4개 영역을 융합할 수 있는 분야가 ‘발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어요. 1년간 쟁쟁한 선생님들께 많은 걸 배웠고 특허 관계자 등 현업에 계시는 분들의 강의도 인상적이었죠.” ‘과학이면 무조건 좋다’는 맹목적인 애정이 발명교실의 기초반, 심화반, 발명캠프까지 골고루 참여하는 동력이 됐다.
뿐만 아니라 한국외대, 서울대, 서강대, 카이스트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대상 과학 캠프도 다양하게 섭렵하며 지식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 나갔다. “전기 실험, 박테리아 DNA 증폭까지 다양한 실험을 직접 해볼 수 있었어요. 덤으로 연구 조교들과도 친해져 대학 생활에 대한 팁과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요. 무엇보다 예전부터 꼭 만나고 싶었던 서울대 이병천교수님께 돼지 난자추출 실험을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얻었어요.”
그가 내민 여러 권의 두툼한 포트폴리오 북에는 자신의 꿈을 향해 치열하게 준비해온 고교시절의 기록들이 생생하게 정리돼 있었다.
문과와 이과의 성향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융합형 기질’은 윤 양이 가진 최고 장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터득한 ‘다독’의 힘이 크다. 덕분에 과학적 지식을 글로 풀어내는 솜씨도 빼어나다. 교내 과학 독후감 대회 대상, 카이스트 과학 글쓰기 대회 우수상도 그동안 훈련을 통해 얻은 수확이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늘 ‘나를 위해 살자’며 한눈팔지 않고 노력했어요. 운 좋게도 중고교 시절 내내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많이 성장할 수 있었고요. 그 고마움을 잊지 말고 나중에 커서 꼭 우리 사회의 어려운 분들께 베풀고 살자며 매일매일 다짐합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진 윤 양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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