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험이라 긴장했는데, 성적이 나쁘지 않았어요. 아이들 대부분 다 맞거나 1개 정도 틀렸더군요. 하지만 시험을 잘 봤다고 해서 아이의 실력이 좋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한 명도 없을 거예요.”
이수민(가명 39)씨의 초등학교 3학년 딸은 기말고사에서 영어 100점을 맞았다. 하지만 이씨는 시험은 시험일 뿐 100점이 아이의 영어실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학원수업은 물론 원어민 화상영어까지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 이수민씨는 여름방학 기간 아이의 영어공부를 위해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어캠프에 등록했다.
초등 3학년부터 교육과정에 영어가 포함된다. 중학교부터 영어를 시작했던 엄마 아빠에 비해 아이들은 더 일찍 영어와 만난다. 아예 초등 전 유치원, 더 빠르게는 유아 시기부터 영어에 접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영어를 아무리 일찍 접하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영어공부에 투자해도 불안한 마음이다. 학교시험을 잘 봐도 그건 기초적인 수준일 뿐 아이의 영어실력은 멀었다고 생각한다. 천안시내 한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 영어평균이 90점에 가깝다. 천안 전체를 본다 해도 80점 이상일 거다. 다른 과목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지만 그에 만족하는 학부모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늘도 내내 영어를 공부한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내용은 워낙 쉬운 수준이라 여기고 그보다 앞선, 유창하게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간다. 끊임없이 영어공부를 하면서도 불안한, 안 하면 더 불안한 굴레를 맴돈다.
하지만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동안 정작 초등 시기 영어 학습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 지 생각할 기회는 있었을까. 초등 시기 우리 아이가 갖추어야 할 영어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고 무엇을 우선에 두어야 할 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 천안시 국제화교육특구 영어체험센터는 초등 5~6학년 아이들이 영어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중앙초등학교와 소망초등학교에 설치돼 있다. 사진은 중앙초등학교 영어체험센터
<사진제공 중앙초등학교>
100점 맞아도 영어 실력 갸우뚱 … “왜죠?” =
지난해 12월 31일 교육과학기술부의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성취기준이 발표되었다. 기준에 따르면 초등 3학년 영어과목은 ▷ 알파벳과 낱말의 소리를 듣고 식별하기 ▷ 친숙한 단어를 듣고 이해하기 ▷ 일상생활의 간단한 표현을 듣고 이해하기 등이 제시되어 있다. 초등 5~6학년의 경우 조금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서의 표현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학교 영어수업은 이 성취기준에 맞게 운영하기 때문에 이미 충분히 영어를 접한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온다. 크게 걱정할 바가 없다.
하지만 초등 이후를 생각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중학교에 들어서며 입시과목으로 다가오며 차원이 다른 영어가 펼쳐진다. 천안중앙초등학교 국제화교육특구 영어체험센터(이하 중앙초 영어체험센터) 김년호 팀장은 “유치부에서 초등까지 원어민과 대화하고 게임 체험 등을 통해 재밌게, 언어로 접근했던 영어가 중학교만 가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사이 아이는 언어로 습득한 영어를 잊는다”고 말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영어를 바라봤던 엄마들 중 상당수도 이 과정에서 점차 입시를 위한 과목으로 영어에 대한 생각을 바꾼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수업에, 100점 영어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앞선 학습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미로 접근해 충분한 읽기로 배경 쌓아야 =
전문가들은 그럴수록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초등 시기는 아이가 처음 영어를 접하는 만큼 흥미를 잃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 많은 읽기를 통해 앞으로 이어질 영어학습의 배경을 쌓아야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김 팀장은 “초등 시기는 영어 읽기를 가장 폭 넓게 할 수 있는 시기”라며 “저학년의 경우 단어, 문장 한 줄부터 시작해 아이의 수준을 고려해 점차 수준을 올리면 성취감을 느껴 영어에 대한 흥미를 높인다”고 말했다. 이때 단순히 읽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표현하도록 이끌면 쓰기와 말하기까지 연계할 수 있다.
천안 백석초등학교 영어전담 김수연 교사는 “학교 수업은 교과과정이 제시하는 성취기준에 따라 수준이 저마다 다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률적인 다독이 이루어지기 어럽다”며 “읽기는 가정에서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교사는 “아이들의 영어 읽기가 의미 있으려면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야 한다”며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자신문 등을 포함, 아이 흥미에 맞는 책을 찾아서 많이 읽게 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이때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재미에만 몰두해 자칫 실력 쌓는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실제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고 텍스트가 많아지며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는 아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파인힐어학원 김현정 원장은 ‘중간단계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김 원장은 “처음 재미있게, 흥미를 이끌 수 있도록 접근했다면 아이 수준에 맞게 조금씩 수준을 높이는 중간단계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한다”며 “중간단계 시스템 없이 갑자기 수준이 높아지면 아이들이 영어에 거부감을 갖게 된다”고 조언했다.
김나영 리포터 naym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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